이곳은 2.28 공원 앞의 작은 도로변입니다. 한 소녀가 노란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채 빈 의자 하나와 함께 나란히 앉아있네요. 3월 초, 아직 추운 날씨인데 소녀는 왜 집에 가지 않고 이곳에 앉아있는 걸까요?

올해 국내와 해외에 설치된, 혹은 설치 예정인 ‘평화의 소녀상’들은 무려 100개 이상에 달합니다. 생김새가 다른 여러 소녀상들, 뱃지·무드등과 같은 자그마한 소녀상들까지 합치면 수를 헤아리기도 어렵습니다. 이 많은 소녀들은 무엇 때문에 맑은 날에도, 궂은 날에도 오도카니 앉아 자리를 지키는 걸까요? 대구에 두 번째로 세워진, 2.28 공원의 도로변에 앉아있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1. 대구에 온 소녀

소녀가 공원에 서기까지

‘대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범시민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가 태동한 것은 지난 2015년 말,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된 직후다.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위안부 피해자들인 할머니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협상이었다. 일본 정부 측의 직접적인 사과 의사 표명도 없었기 때문에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효 논란에 휩싸여있는 상태다.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수요시위에서 만난 몇몇 대구 시민들은 반 년 동안 논의한 끝에 2016년 6월 중순 추진위를 결성했다. 이정찬 추진위 공동위원장(이하 이 위원장)은 “계층, 정치 성향으로 따질 게 아닌 민족과 국가의 문제라고 판단했기에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년층에게 소녀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 지난 3월 1일 2.28기념 중앙공원(이하 2.28 공원) 도로변에 세워진 소녀상의 큰 목적 중 하나다. 2015년 광복절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 안에 대구의 첫 번째 소녀상이 설치됐었지만 교정 안에 건립된 조형물이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접근성이 낮았다. 그래서 추진위는 동성로 중앙무대가 위치한 대구백화점 앞에 소녀상을 건립하고자 했다. 이 위원장은 “대구백화점 앞은 대구 시민,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기에 소녀상을 설치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위안부 문제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길 바랐다”며 “동성로 내부에 소녀상을 설치해 일제강점기부터 대구의 근현대 시절을 거친 동성로의 역사적 의미를 함께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구백화점과 중앙무대가 있는 곳은 도로법에 따라 광장이 아닌 도로로 규정돼 소녀상을 설치할 수가 없었다. 또 상권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인근 상인들의 반대 목소리도 컸다. 설치 장소에 관한 오랜 논의 끝에 지난 2월 28일 대구광역시, 중구청, 추진위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2.28 공원에 인접한 도로변을 임시 설치 장소로 지정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도로점용허가를 받아 설치한 것이기 때문에 이전할 장소를 시와 시민들이 함께 추후 논의할 예정이다. 대구광역시 공원녹지과 전채영 주무관은 “소녀상 훼손 방지를 위해 CCTV 설치·청결 유지 등 시 차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하기로 추진위와 합의했다”며 “소녀상 이전 장소에 대해서는 추진위 측과 만나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이전 장소에 대한 확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본교 김창록 교수(법전원)는 “소녀상은 보편적 여성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기리고 그와 같은 아픔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하기 위해 전 세계 시민들이 정성을 모아 세운 상징물”이라며 “따라서 공공장소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은 권장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기존 법령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면 법령의 개정이나 새로운 법령의 제정을 통해 해결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2.28 공원의 소녀상은 추진위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내에서 관 주도로 소녀상이 관리되는 사례는 강원도 원주시와 충청북도 제천시뿐이다. 원주와 제천에서는 소녀상을 공공 조형물로 등록해 공유재산으로서 관리한다. 제주도, 경기도 안양시, 서울 종로구도 지역 내 설치된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할 예정이다. 이외에는 전부 시민 단체가 주체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왜 관 차원의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김 교수는 “일본과의 외교 갈등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를 통해 ‘최종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약속을 해버린 것이 우리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결과가 됐다”며 “한국 정부의 외교실책이 소녀상에 관한 소극적 태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2.28 공원 앞 소녀의 자리

2.28 공원의 소녀상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자리를 찾게 됐다. 그나마도 아직은 임시인 터라 지속적인 논의와 빠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건립 예정일이었던 3월 1일 전날, 2월 28일에 대구광역시와 중구청, 추진위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비록 임시이기는 하지만 소녀상이 머물 자리를 찾았고, 삼일절에 맞춘 ‘대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 제막식’ 행사도 무사히 진행됐다. 

3월 1일 제막식 당일, 중앙무대에서 진행된 제막 문화제 행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10대 고등학생들의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발언 ▲20대 대학생들의 합창과 공연 ▲대구 평화의 소녀상 현황보고 ▲무용·풍물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이날 무대에서 율동 공연을 진행한 대안대학 ‘청춘의 지성’ 소속 신은진 씨(26)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현 20대들은 취업 등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위안부 문제와 같은 역사 문제에 관심을 갖기 어렵다”며 “접근성 높은 대구 시내에도 소녀상이 세워졌으니 모두에게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학생 김순현 씨(16)는 “소녀상의 의미를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감명 받았다”며 “2.28 공원보다는 대구백화점 앞이 유동인구가 더 많기 때문에 소녀상을 이곳에 세우면 더 알려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행사에 참석한 시민도 있었다. 30대 직장인 최명호 씨는 “회사에서 소녀상 제막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행사에 참석하러 왔다”며 “아이들에게 이런 것(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에 담긴 의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함께 나왔다”고 말했다.

제막 문화제 행사가 끝난 후, 추진위와 중구청·대구 시청 관계자 및 일부 시민들은 2.28 공원 정문 인근의 소녀상 설치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 추운 날씨였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어린아이들은 빨갛게 언 볼을 하고서도 저만한 키의 소녀상을 만지고 쓰다듬으며 관심을 보였다.

각 관계자들의 축사와 짧은 현대무용 공연 이후 소녀상에 덮여있던 노란 천막이 걷어졌다. 2.28 공원의 소녀상 곁에는 모금에 참여한 시민 2천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 이를 뒤에서 받치고 있는 남성·여성·아이 조각상이 함께 서 있었다. 추진위 측은 “‘나무’는 고목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사시사철 소녀상을 지켜주는 대구 시민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며 “겹쳐져 있는 남성·여성·아이 조각상을 통해 소녀상과 함께 호흡하는 대구 시민의 의지와 뜻을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2. 한국의 소녀, 이용수

이용수 할머니는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1943년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갔었던 이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로서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해 25년 동안이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Q. 소녀상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A. 거울로 보면 지금의 내 모습은 보이지만 옛날의 모습은 보이지 않잖아요. 소녀상을 보면 내 어린 시절 생각이 나서 슬플 때도 있고, 때로는 위로가 되기도 해요. 소녀상이 있으니 ‘내가 저럴 때도 있었는가’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소녀상을 보면 그때 그 모습 같고, 그때 생각이 나고, 그래서 때로는 가엾기도 하고 그래요. 소녀상과 서로 위로하며 사는 것이죠. 소녀상을 자세히 보다보면 다른 할머니들의 얼굴이 막 떠올라요. 그래서 어느 곳에든지 소녀상을 세워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Q. 2.28 공원이라는 소녀상 임시 건립 장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대구 시민들이 모금해서 소녀상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대구백화점 앞에 세우기로 했었는데 그곳 상인 분들이 장사하는 데에 지장이 간다고 반대를 하셨어요. 대구의 주인은 대구 시민이 아닙니까. 동성로 시민인 상인 분들이 지장을 받았다고 하니 놀랍고 마음이 아팠지요. 그렇다고 또 모금한 시민들의 의견에 안 되겠다고 반대할 수도 없었고요. 의견 대립도 있었고, 시내 한복판에 설치하면 훼손이 쉽게 될 것도 같아서 오래 이야기한 끝에 2.28 공원에 소녀상이 임시로 세워지게 됐지요. 시민들에게 다만 고마운 생각뿐이었습니다. 

Q. 다음 정부에게 위안부 합의 문제와 관련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이전 정부는 피해자인 내가 버젓이 살아있음에도, 역사의 산 증인이 이렇게 있는데도 저희들끼리 합의를 했어요. 이건 무효이지요. 노인들이라고 업신여기는 거 아닙니까? 우리는 진심어린 사죄를 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25년 간 수요일마다 앉아서 그렇게 외쳤는데… 국민이 있어야 대통령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따르는 게 대통령이잖아요. 마음대로 합의해서는 안 되지요.

Q. 20대 청년층에게 소녀상,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해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A. 이번에 2.28 공원에 세워진 소녀상을 보러 혼자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여러분도 근처를 오갈 때 소녀상을 보고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 엄청난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고 꼭 일본에게 사죄를 받아야 해요. 여러분들이 옳은 역사를 알고 나라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요. 역사를 잊지 마세요. 소녀상을 보면서 기억하세요.

3. 소녀의 곁에 선 대학생들

대구 평화나비 경북대학교 지부(이하 평화나비)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성은(인문대 사학 15) 씨는 1학년 때부터 평화나비에서 활동해왔습니다. 성은 씨가 활동하는 평화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는 대학생 동아리입니다. (본지 1570호 ‘모두에게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기사 참조) 평화나비 학생들은 서울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를 따라 본교 북문에서 수요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성은 씨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억인 서명과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서명 운동 등 여러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수요일 저녁마다 회원들끼리 모여 인권과 평화, 국제 정세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가지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평화나비는 2.28 공원 앞에 소녀상이 세워지기까지 많은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성은 씨는 “추진위와 같은 시민단체가 소녀상 설치에 관한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면, 평화나비는 본교와 시내에서 캠페인을 열어 시민들에게 소녀상 설치에 대한 내용을 알리고 관심을 유도하는 등 서포트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말했습니다. 평화나비 회원들은 3월 1일에 열린 제막 문화제에도 참석해 합창 무대를 꾸미기도 했습니다.

청년층의 역사 인식이 미약하다는 일간의 지적이 있지만 성은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때에도 마냥 뜨거운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반은 평화나비 회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모금에 참여했습니다. 성은 씨는 “정부에서 시도한 역사왜곡과 일본의 우경화 등으로 분노한 청년층들이 한층 성장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성은 씨는 “앞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에 남기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노력에 달렸다”며 “청년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보내줬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녀상은 세워졌지만 평화나비 회원들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평화나비는 이번 학기에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 등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은 씨는 “‘소녀상 지킴이’의 역할을 함께하는 서포터즈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조현영 기자/jhy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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