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취업난 속 취업 최전선에 위치한 사람들 중 하나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일 것이다. 고시로 청년들이 몰리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대학도 고시반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힘든 고시의 길을 걷는 수험생들의 삶을 고시반의 모습을 통해 담아낸다. 또한 대학의 고시반 운영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까지 살펴보면서 취업난에 빠진 대학사회의 현실을 돌아본다●

졸업생 A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뛰어 들었다. 사회에 나가보니 공무원만큼 안정적인 직장은 없다는 것을 느껴서이다. 하지만 적어도 백만 원이 든다는 사설 학원을 택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결국 그는 졸업생도 입실할 수 있는 대학 고시반을 택했다. 일주일 중 쉬는 날은 단 하루, 나머지 날은 도시락 두 끼를 챙긴 채 아침부터 밤까지 오롯이 공부에 전념했다. 줄어드는 것은 메신저의 친구 수다. 이제는 백의 자리 수에서 십의 자리 수로 줄어들었다. 먼저 연락을 하기에는 너무나 바쁜 생활이다. 십여 명을 뽑는 시험에 한 반에만 40여 명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때 부담감이 들었다. 더 무서운 것은 고시 준비는 스펙으로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오는 4월 올해 첫 시험을 앞두고 있다. 

취업난 속 고시로 몰리는 대학생들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극심한 취업난이란 위기에 몰려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청년 실업률은 9.8%로 이전 기록이었던 2015년 9.2%를 넘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취업난 속에서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국가고시로의 지원이 늘고 있다. 

공무원에 대한 인기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7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는 작년 22만 1,853명을 넘은 역대 최다인 22만 8,368명이 접수해 그 인기를 보여주었다. 그중 14만 6,095명(64.0%)이 20대로, 공무원을 준비하는 주요 지원자 층이 청년들임을 알 수 있었다. 작년 3월 21에 발표된 취업사이트 ‘사람인’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 중 83%가 ‘공무원 시험 준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늘어나는 대학가 고시반 

고시를 지원하는 대학생이 늘어남에 따라 대학들도 고시반을 늘리고 있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 유기홍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2013년 대학 고시반, 자격증반 운영 현황’에 따르면 고시·자격증반은 전국 48개 대학, 225개가 운영 중에 있다. 이는 2006년 22개 대학에서 99개의 고시반이 운영되는 것에서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고시반들이 대학에 들어서고 있다. 

단순히 고시 지원자가 늘어난 것만이 대학이 고시반을 만드는 이유는 아니다. 고시 합격자의 배출이 대학의 명성에 주는 영향도 대학이 고시반을 만들도록 유도한다. 이에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고위공무원이나 언론인은 사회에 영향력 있는 직업군이기에 대학 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본교 인재개발원 김기동 취업지원팀장도 “일반인의 경우 대학을 평가할 때 고시 합격자가 몇 명인지로 판단하기도 한다”며 “고시 합격자 수가 심리적인 대학 순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고시 준비에 들어가는 사교육 비용에 대한 부담도 학생들을 고시반으로 이끈다. 본교 홍인재에서 공부하는 정지영(인문대 한문 08) 씨는 “인터넷 강의 과목 하나에 십여 만 원, 학원에 등록한다면 최소 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며 “대학 내 고시반에 들어가지 않고 고시를 준비하는 것은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본교 고시반의 현황

본교에도 여러 고시반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 한 곳인 홍인재에서 고시반을 체험하면서 고시반의 실상과 수험생들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학군단 건물 3층에 위치한 홍인재는 졸업생과 재학생 상관없이 지원이 가능한 고시반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Ⅰ·Ⅱ 반이 존재하고 노무사, 세무사, 공인회계사 등의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반도 하나 존재한다. 이곳에서 기자는 홍인재의 협조로 공시 Ⅱ반 16번 자리를 배정 받았다.

수업을 끝낸 저녁, 홍인재 독서실에서 쓸 슬리퍼를 챙기고 학군단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독서실에 들어갔을 때 입구 양쪽에 각종 수험서와 참고서가 놓여 있었다. 홍인재의 예산으로 구비한 이 책들은 필요 시 대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기둥에 걸린 게시판에는 출석체크를 해놓는 종이가 빽빽이 차있었다. 홍인재는 일주일 공부 시간 30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벌금이 매겨지고 그것이 쌓이면 퇴실까지 당할 수 있다. 개인 책상에 앉는 과정은 소리와의 전쟁이었다. 슬리퍼 끌리는 소리, 외투를 벗을 때의 소음, 가방의 지퍼를 여는 것까지 방해하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섰다. 뒤따라 들어온 사람을 통해 이 문제의 해답을 알 수 있었다. 문 밖에서 외투를 벗고 가방 지퍼를 연 채 들어오는 매너를 갖추는 것이다. 

수험생들의 책상은 남는 공간이란 없어 보였다. 책상 위 책장은 수험서로 가득 놓여있었고 공부를 위해 놓은 책과 스탠드, 할 일들을 채워 좋은 여러 장의 포스트잇, 게다가 가방 등을 거는 걸게까지 책상이 하나의 생활공간 같았다. 

잠깐 쉬기 위해 들어간 휴게실에서는 즉석밥과 냉장고 안에 있는 도시락과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먹으러 나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휴게실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수험생이 많아 보였다. 휴게실의 옆방 두 개에는 스터디룸이 위치해 있었다. 홍인재 조교는 “독학으로만 공부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스터디를 꾸리는 추세다”고 말했다. 홍인재에서 공부 중인 졸업생 정지영 씨는 “모의고사, 영어 단어 등의 스터디가 있다”며 “스터디룸의 일정은 계속 꽉 차있다”고 말했다. 

홍인재를 포함해 본교 예산을 지원받는 고시반은 ▲백학재 ▲청운재 ▲양현재 ▲호현재 ▲함현재 ▲언론고시원 ▲홍인재 ▲수연재 ▲미금전, 총 9개가 있다. 본교는 일반사업비 중 국가고시지원인력육성사업과 국가고시지원사업을 통해 고시반에 대한 지원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비 외에도 본교에서는 국가고시 1차 시험 합격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고시반들은 공통적으로 독서실을 제공하고 시험 관련 인터넷 강의도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최근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돼 이번 학기부터 정원이 48명에서 최대 60명으로 늘어난 백학재는 2학기 중반 본교 출신 최종합격자가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청운재는 작년을 마지막으로 사법시험이 폐지됨에 따라 올해부터는 변호사 시험으로 그 목적을 바꾼다. 또한 호현재는 농생대 발전기금을 통해 자체적인 장학금을 수여한다. 언론고시원은 방중에 외부강사를 초빙하여 작문 특강을 실시하고 있다. 상주캠퍼스에서는 도남재 설치가 논의 중이며, 작년에 선정된 국립대학지원 혁신지원사업(PoINT사업) 예산 중의 3천 만원 정도를 확보한 상태다. 본교 상주캠퍼스 통합교육지원본부 정용화 팀장은 “오는 4월 상주캠에서 실시 예정인 공무원 강좌 설명회에서 반응이 좋으면 도남재 설치를 고려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대학 내 고시반의 위치 

타 ]대에서도 고시반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에는 고시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부서인 국가고시지원센터를 본관에 두고 있다. 아예 고시반 건물을 짓는 경우도 있다. 서강대학교는 2012년 휴게실, 수면실, 샤워실 등의 복지시설을 갖춘 토마스 모어관을 설립해 고시반 학생들을 수용하고 있다. 전북대학교에서도 우림인재등용관이라는 고시반 전용 건물을 운용하고 있다. 서울대를 제외하고는 지역거점국립대학교 중 고시반이 없는 곳은 없다.

하지만 고시반의 운영이 항상 환영받는 것만은 아니다. 대학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것이 대학의 본분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고시반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이 특혜가 되어 형평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도 있다. 임 연구원은 “결국 고시반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지원은 다른 학생의 등록금이다”며 “지원을 하더라도 형평성과 기회균등을 고려한 배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팀장은 “2억 6천만 원에서 1억 9천만 원으로 올해 고시반 예산이 줄어든 것도 형평성의 맥락에서다”며 “고시가 아닌 다른 진로를 택한 학생에 대한 지원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언론고시원의 한 학생은 "현실적으로 공채 위주의 취업시장에서는 고시반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현실에 맞는 대학의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kmh16@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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