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수서발 KTX 반대를 위한 파업이 한창이었을 때다. 엄마는 나에게 “저 중에 북한에서 보낸 사람들이 있어,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려고 시위를 주도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구독하던 동아일보에서도 ‘시위 노동자가 잘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그런갑다’했다. 같이 노동자들을 면박했다.

# 2015년 나는 고3이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싶었다. 기숙사에 있느라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본가에서 오랜만에 뉴스를 봤다. 무슨 뉴스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엄마가 누구를 지지하는지. “난 예전부터 박근혜 지지했는데?” 뭘 새삼스럽게 묻느냐는 듯한 답이 돌아왔다. 나는 휴대폰으로 간간이 오마이뉴스를 보고 있었다. 조금 의아했다. 

# 입시가 끝나고 걸어서 30분 거리인 이모댁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마침 채널A에서 뉴스를 방영하고 있었다. 1차 민중총궐기가 영상으로 재현되고 있었다. 이모부는 “저 시위하는 놈들 다 때리잡아야 돼!”라 호응했다. 나는 며칠 전 논술시험을 위해 갔던 서울을 기억했다. “저 사람들이 왜 시위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해요”라고 항변했다. 옆에 있던 이모, 이모부, 엄마로부터 ‘장난섞인’ 눈총이 날아왔다. 거기서 한마디 더 하고 싶었지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걸 알고 있었다.

# 2017년 미쳤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용돈을 헌납해 조선일보, 한겨레신문을 구독했다. 하루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탄핵심판이 절반 정도 흘렀을 때였다. 정규재TV에 박근혜가 출연했다. 신문을 보기 위에 정규재TV의 인터뷰 내용이 나오는 면을 펼쳤다. 엄마는 정말 흐뭇한 얼굴로 “저렇게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라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마 대구에서 살았거나, 부모님이 대구·경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위에서 나열한 장면을 보는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보통 이렇게 갈등이 생기면 침묵으로 끝난다. 더 이야기했다가 싸울 거란 걸 알기 때문이다. 서로 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건 금기가 돼버렸다.   

하지만 지난 4개월은 그런 갈등이 시내로 표출됐던 기간이었다. 촛불과 태극기는 서로 자리를 잡고 도로를 통제하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잘잘못이 드러난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오는 일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마냥 욕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이 누군가의 가족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물론 그들에게 사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밉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은 ‘경계모드’를 풀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광희 기획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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