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겨울 극장가를 생각해 본다면 떠오르는 두 작품이 있다. 최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을 달군 데미언 셔젤 감독의 <라라랜드>, 오랜만에 한국 극장가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다. 언뜻 쉽게 관계 짓기 힘든 두 영화지만, 두 작품의 힘이 ‘이어짐’과 ‘상실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둘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라라랜드>의 서사는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 분)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이 함께, 혹은 각자 만들어나가는 열정과 꿈을 따라 진행된다. 영화 초중반부가 둘의 사랑으로 시작됐다면, 중후반부는 그 위에 꿈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워 한층 더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 서사는 사랑, 생활과 꿈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 그리고 양립 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는데, 이를 이끌어나가는 주요한 요소가 바로 ‘이어가려는 의지’다.

한편 <너의 이름은>은 초반부 잘 드러나지 않던 특정한 부분들이 하나하나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얼핏 두 주인공의 사랑으로 채워진 진부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으나, 결국 영화 내의 사건과 주인공들의 만남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은 ‘이어짐과 그에 대한 의지’이다. 그러한 의식 위에 서로의 이름을 되묻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행함으로써 두 주인공은 ‘타인이자 나’인 서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두 서사의 꿈과 사랑은 자신, 혹은 나와 관계된 타인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에서 나온 결과다. 사람의 삶의 근간에 꿈과 사랑이 있음을 생각한다면 ‘상실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우리 삶의 중요한 전제가 된다. 그러나 상실의 상황을 인지하기 위해선 상실될 대상인 나, 혹은 타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신념을 확고하게 가짐으로써 현실이 그의 삶에 변화를 강요할 때에 대항할 수 있었다. <너의 이름은>의 두 주인공은 서로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확인할 때, 반복적으로 이름을 물을 때 삶의 외부적 저항에 대응이 가능했다. 이 두 영화는 ‘나 혹은 타인에 대한 정확한 인지’와 그로 인해 ‘상실되지 않을 수 있는 나 혹은 타인’을 조화롭게 구성함으로써 극적인 성취를 달성한다.

이러한 극적 성취를 우리 삶에 투영해 봐도 같은 결론이 도출된다.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끊임없는 물음과 나에 대한 정확한 인지로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잃어간다. 그것이 꼭 거대한 외부적 환경 때문이 아닐지라도, 취향의 문제에서부터 인정(認定)의 문제에까지 그 범위는 전방위적이다. 이러한 상실의 문제가 그저 사소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2017년 초의 겨울까지 ‘한 개인이 자신을 잃어버린 채 질문을 되풀이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초래된,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서늘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다가오는 봄에는 나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이어짐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전형록 (사범대 영어교육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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