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다투다가 왕에게 판정을 의뢰했다. 왕은 서로 자기 자식이라고 우겨 진실을 알 수 없으니 아이를 둘로 나눠 반씩 가지라고 판결한다. 병사가 아이를 칼로 둘로 나누려 하자 한 여인이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을 철회한다. 왕은 자기 자식이 아니라고 한 바로 그 여인이 아이의 엄마라는 판결을 내린다.” 

 위 이야기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 알고 있는 ‘솔로몬의 지혜’의 한 사례이다. 서로 다투는 당사자를 중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시비비를 가려 두 당사자가 승복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도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가릴 솔로몬의 지혜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에 대한 친권을 절반씩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이 한 해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법은 문제 해결의 유일한 근거인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에 대한 진실 입증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해결보다 유보에 가깝다. 동시에 친권을 온전히 인정받아야 할 아이의 엄마에게는 절반의 권리를 박탈하는 폭력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진실을 가릴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경우 이런 방식의 봉합이 은근히(?) 사회적으로 선호된다. 오판에 대한 부담을 미래의 피해자(아이의 엄마)에게 미루는 책임 전가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아이의 엄마가 아닌 여자를 엄마로 판단하는 최악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사회현실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때도 이런 행태의 봉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사회적 갈등 사안을 대하는 전략은 중립성이다. 정치적으로 갈등하는 두 당사자는 어느 한 쪽이 전적으로 옳다고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양측의 입장을 균형 있게 다룬다는 취지다. 그래서 언론은 정치적 사안을 다룰 때는 양측을 물리적으로 동등하게 다루는 ‘기계적 균형’이라는 관습을 정착시켰다. 그런데 기계적 균형은 공평하지만 공정하지 못한 ‘영혼 없는 중립’, ‘표면적으로 중립을 가장하며 정치적 편향을 은폐하는 수사학’, ‘정치적 판단에 따른 저항의 부담을 피해가는 직업적 편의성’ 등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다. 지금은 언론의 중립성은 기계적 균형을 넘어 사회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을 전제하는 개념으로 상정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가 합의한 사회계약의 규범을 근거로 옳고 그름의 판단이 가능한 부분은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도 언론이 입장을 분명히 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해 보자. 지금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기계적 균형에 따라 동등하게 보도하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달리 말하면 촛불집회의 주장과 태극기 집회의 주장은 언론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인가? 특검 수사가 종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남은 현재 시점에서 일부 언론의 프레임은 “민(民 )-민(民) 대결”, “탄핵 찬-반 광장 충돌” 등 대립의 구도만 부각하고 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양측 주장의 정당성에 대한 언론의 입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구경꾼인 뉴욕타임스는 2월 19일자에서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는 가장 인기 없는 지도자로 꼽혔으며, 80%에 달하는 응답자가 그가 청와대를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여전히 종교 신도 같은(Cult-like) 사람들의 추종을 받고 있다”고 보도해 갈등의 본질이 ‘민-민’대결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해외언론이, 그것도 탄핵반대를 외치는 보수단체들이 태극기와 나란히 성조기를 내걸 만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미국 언론이 태극기 집회를 정당한 문제제기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가? 민주주의 사회의 상식으로 볼 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충분한 사유가 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솔로몬의 지혜가 없어도 촛불집회의 주장이 옳은지, 탄핵반대 집회의 주장이 옳은지에 대해 언론이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검의 수사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을 뇌물죄의 공범으로 결론 내렸고, 여론조사결과는 70% 이상의 국민이 탄핵에 찬성하고 있다. 법이 유죄를 인정하고, 대통령을 뽑은 주권자인 시민이 탄핵을 요구한다. 더 이상 탄핵의 정당성에 대한 어떤 추가적인 논거가 필요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장의 시위 열기에 위축돼 탄핵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드러내 보이기를 회피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를 중립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시시비비가 명백한 다툼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촛불집회의 정치적 의미를 희석시키려는 교묘한 수사학에 불과하다. 이런 보도태도는 직무유기이며, 또 다른 불의일 뿐이다. 이런 보도에 현혹되지 않는 시민들의 분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남재일 교수(사회대 신문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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