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정 사상 현직 대통령이 입건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날마다 새롭게 터져 나오는 대통령에 대한 보도는 우리 귀를 의심케 한다. 급기야 대통령에 대한 수많은 의혹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던 ‘박근혜 지지층’마저 무너졌다. 국민 개개인은 실망과 절망으로 분노하고, 광화문에서 도서벽지까지 주말마다 촛불의 물결이 넘쳐나고 있다. 나라가 흔들리고, 국정은 혼란에 빠져있다. 

대한민국이 이런 지경에까지 빠져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사회에 팽배한 권위주의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실세들의 행태를 보면, 권위주의가 가지고 있는 온갖 부정적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대통령은 자신의 지위에서 나오는 힘을 맹신하고, 공사(公私)에 대한 이성적·합리적 판단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최순실과 비선실세들은 대통령의 내면의 불안과 한계를 간파하고, 그의 지위와 권위를 이용하여 사익을 위해 국정을 농단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면서 국민들에게 가장 많이 회자되고, 뇌리에 각인된 것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문이 어찌하여 그토록 우리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을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을 정체로 삼고,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을 헌법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현실은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아니,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와 권력에 빌붙어 사는 실세들에게는 국가와 국민보다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와 그 권위를 이용한 개인의 안위와 영달이 최우선이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를 취하면서 속으로는 일개인 혹은 일부 집단이 특권을 이용하여 주권자인 국민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상태를 권위주의국가라고 한다. 현실을 보면,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호가호위’의 고사가 딱 들어맞는다. 더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은, 호랑이마저도 여우의 나쁜 짓을 제지하고 징계하기는커녕 정작 자신이 앞장서서 여우를 부추기고 분탕질을 쳤다는 사실이다. 

만일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위험에 빠뜨린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사과하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책임지고 물러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 대한 도리이자 상식이다. 그런데 법치주의국가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검찰의 수사 결과를 폄훼하고, 끝까지 버티고 있으니 참 나쁜 대통령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고 지지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고, 자책하면서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겨있을 수만은 없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제2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아서는 아니 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리는 ‘박정희 시대’와 결별해야 한다. 그 시대는 권위주의시대였다. 경제발전과 국익을 이유로 국민의 기본적 권리 제한을 당연시하는 권위주의국가가 지배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평가는 그 개인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향수’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국제사회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주시하면서 국내사회의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환부를 도려내는 뼈를 깎는 개혁 대신 과거를 선택하였다. 진보와 혁신이 아니라 퇴행과 수구를,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속박과 차별을, 연대와 평화가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선택하였다. 일반대중과 대화와 소통이 없는 ‘불통 대통령’을 원칙과 소신 있는 지도자로, 세월호 참사로 자식과 가족을 잃은 피해자의 눈물과 고통을 외면하는 ‘대통령’을 능력 있는 지도자로 추켜세우고 지지하였다. 물론 그런 대통령을 뽑고 지지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 박근혜’에게 국정 수행을 책임지도록 권한을 위임하였다. 우리가 위임한 권한을 벗어나 이를 남용하여 국정 혼란을 초래한 대통령에게 우리는 주권자로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권리가 있다.  

지난 주말에도 성난 민심이 촛불로 피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뒤덮었다. 대한민국 유사 이래 이토록 다양한 계층과 나이를 뛰어넘어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던가? 유모차에서 곤히 자고 있는 유아부터 십대 청소년은 물론 청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을 가리지 않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이게 민심이고, 천심이다. 국정을 유린한 대통령과 정치인, 그리고 최순실과 비선실세들에 대한 주권자의 준엄한 명령이다.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더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즉시 하야하라. 주권자로서 우리들의 권한을 위임한 대통령에게 주는 주권자 국민들의 마지막 충고이자 자비이다.  

채형복 교수

(법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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