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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최소 1만 754채, 대구는 서울 다음으로 한옥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다. 이 가운데 보존 상태가 양호한 A등급은 948채로 중구와 달성군에 밀집돼 있다. 특히 중구는 근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한옥과, 한옥에 대한 기존의 고루한 인식을 던져버릴 수 있을 만큼 세련된 현대식 한옥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골목 구석구석, 도시 속에 묻힌 한옥과 그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기는 어렵다.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가 알지 못한 한옥들을 찾기 위해 기자는 대구의 도시한옥을 연구해 온 본교 조재모 교수(공대 건축)와 가을 길을 동행했다●

동산동, 도심 속 옛 성
성명여중 옆의 골목길을 길게 걷다 보면 기와를 얹은 대문이 눈앞에 보인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아하게 뻗은 처마지붕을 얹은 한옥이 커다란 마당을 품고 서있다.
달성 서 씨의 문중서원인 구암서원이 북구 산격동의 연암공원으로 이전하자, 그곳에 폐허로 남아있던 서원 건물 자체를 (사)대구문화유산에서 받아 전통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옛 구암서원’으로 불리는 곳은 한복 입어보기 체험, 다도체험, 전통혼례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100여 년 된 오래된 건물이나 (사)대구문화유산 측에서 수리해 한옥숙박시설로도 운영하고 있다.
옛 구암서원에서는 검은 암키와(평기와)와 수키와(둥근기와)가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어내며 사뿐히 들린 처마 끝으로 이르는,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한 한옥을 볼 수 있다. 암키와는 큰 원통을 4분의 1정도 크기로 끊은 오목한 모양의 기와고, 수키와는 두 암키와 사이의 틈 위에 엎어 기왓등을 완성하는 기와다. 이들과 달리 가볍고 넓적한 일체형 기와도 있다. 조재모 교수는 “암키와와 수키와의 형상이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기와의 형상”이라며 “집의 구조가 탄탄하면 무거운 기와를 써도 버틸 수 있으니, 집이 가지고 있는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대구문화유산 허동정 대표는 “전통 한옥은 쓰지 않으면 훼손이 더 빨리 된다”며 “옛 구암서원은 중구청에서 실시하고 있는 근대골목투어의 한 코스로, 많은 관광객들이 오고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옛 구암서원이 위치한 동산동 지역은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한옥 60여 채가 모여 있다. 옛 구암서원으로 가는 골목 곳곳에도 세월의 때가 묻은 작은 기와집들이 있다. 그 골목들을 따라 3분 정도 걸으면 고아한 대문 하나와 그 뒤로 2층 건물이 보인다. 낯설지만 아름다운 모양새의 2층 건물은 마찬가지로 머리에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주)도시와 풍경 종합건축사 사무소’의 노성식 대표(43)는 1년 전 대구시의 한옥진흥사업에서 지원금을 받아 사무소와 사무소 뒤편의 안채를 세웠다. 이 건물은 건축 전에는 10년 동안 방치됐던 한옥이었다. 노 대표는 처음 방치된 한옥을 봤을 때 “개발되고 있는 도심 가운데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성 같았다”며 “한옥들이 밀집돼 있는 장소 자체가 아깝고, 살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노 대표는 건축 시, “전통 한옥이 가지고 있는 단점인 약한 방한·방수를 보완하기 위해 시공과정에서 자재에 신경을 썼고, 창호를 사용할 경우에도 단열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시공했다”고 설명했다. 한옥의 전통적인 구조 자체는 바꾸지 않되, 현대 기술로 그 단점을 보완해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 노 대표는 “아파트는 기능만을 위한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뿐 한옥은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는 빈 공간을 갖고 있어, 손님이 오실 때는 마당에서 파티를 열기도 한다”고 말했다.

진골목, 부호들의 독특한 한옥
‘긴 골목’을 뜻하는 진골목은 대구 제일의 부호 집안이었던 달성 서 씨 일가의 집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현재 진골목의 한옥들은 대부분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길지 않은 길목을 따라 이어지는 붉은 담벼락과 기와지붕에서 옛 위세를 엿볼 수 있다.
진골목의 한옥들은 달성 서 씨라는 한 일족이 살았던 곳이지만 집집마다 건축유형이 매우 다채롭다. 한옥 식당 ‘진골목식당’, ‘송정식당’ 등은 대부호 서병원의 저택 부지에 자리한 곳이다. 특히 조 교수는 “‘진골목식당’의 경우, 천장이 굉장히 특징적인데 한옥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골목 깊은 곳에 위치한 진골목식당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높고 커다란 천장이 눈에 띈다.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은 모양새로, 굵은 서까래들이 천장에 뼈처럼 박혀 천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조 교수는 “진골목에 위치한 ‘정 소아과의원’, 화교협회 건물이 모두 달성 서 씨 집안의 것이었는데도 양식 가옥으로 지은 것도 있고, 중국 기술자들이 쌓은 벽돌집도 있는 등 다양하다”며 “개별 건축주들이 건축가에게 의뢰해서 지은 형태로, ‘집장사’들이 일괄적으로 매입해서 낸 집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천동, 도시한옥 속 대구의 근대
1930년대 급격한 도시화로 주택부족문제가 심각했고, 이에 ‘상품’의 형태로 한옥이 대거 건축되며 ‘도시한옥’이 등장했다. 일명 ‘집장사’라고 불리는 주택공급업자들에 의해 도시에 군집형 한옥이 대량 생산됐다. 그러다 1960년대부터 점차 도시 주거난 해결을 위해 양옥과 아파트 등이 주택시장을 주도하면서 한옥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소멸되기 시작했다.
이는 전국적인 현상이었으며, 대구는 서울보다는 좀 더 늦게까지 한옥 건설이 활발했으나 현재에 이르러서는 부지불식간에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조 교수는 “도시한옥의 가치는 그것들이 건축됐던 시절의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며 “기층생활에 관련된 유산으로서, 상류층 위주의 기록으로 확인할 수 없는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도시한옥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한옥은 도시의 발달과정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조 교수와 기자가 찾아간 이천동의 한 군집개발 한옥 밀집 지역이 그 예다. 얼핏 보기로는 낡고 평범한 주택이 모여 있는 곳으로 보이나, 실제로 주택들의 지붕을 살펴보면 서까래와 기왓장이 얹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한 주택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 블록에 있는 모든 주택들의 일정한 크기와 높이, 구조를 가진 한옥들이라는 것이다. ‘집장사’가 토지를 일괄 매입 후 한옥을 대량 건축해 판매한, 군집개발 한옥들로 추정되는 것들이었다.
또한 1963년 개정된 건축법에 따르면, ‘폭 3m 미만의 도로일 경우 그 중심선으로부터 1.5m 후퇴한 선을 건축선으로 지정’하도록 했다. 이러한 법 규정은 한옥의 처마선이 짧아지고, 외벽이 처마 쪽으로 돌출되는 왜곡 현상을 발생하게 만들었다. 이천동 지역의 한옥에서도 한쪽의 처마 길이가 다른 쪽보다 짧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산동 2504번지, 한옥진흥정책에 대해
대구시에서는 한옥진흥조례를 제정해 작년부터 한옥 건축이나 보수비용을 지원하는 한옥진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옥진흥조례 제정 배경에 대해 대구시 건축주택과 김명수 주무관은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개발위주의 도시정책으로 상당수 도심 한옥들이 이미 멸실되었거나 얼마 남지 않은 도심 한옥들 또한 경제논리로 인해 현대식 건축물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한옥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한옥의 신축을 통해 한옥건축문화를 확산시켜 나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대구만의 역사성이 있는 도시경관을 연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한옥진흥조례에 의해 등록된 한옥에 대해 공사비용 3분의 2, 신축의 경우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까지, 전면 수선의 경우 2천만 원에서 4천만 원까지 보조금이 지원된다. 노성식 대표는 “상업공간을 한옥으로 건축할 시, 건축주들이 유리창을 선호하나 조례에는 전통창을 써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실정에 맞게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는 취재를 위해 군집개발 한옥 구역인 ‘남산동 2504번지’를 찾아간 바 있었다. 그러나 사전에 알고 갔던 것과는 달리, 한옥은 모두 허물어지고 아파트 공사장이 대신 자리 잡고 있었다. 조 교수는 “보존가치가 있으나 사라지는 한옥들이 부지기수”라며 “철거되지는 않았지만, 계산성당 근처에 미소시티가 들어서면서 이상화 고택 등의 주변상황이 악화된 사례가 있고 남산동 일대에도 재개발로 인해 많은 한옥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한옥진흥조례에는 철거에 대한 자세한 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김명수 주무관은 “철거 신고 시 관할 구군에서 최대한 수선해 사용하고 수선 시 보조금 제도도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소유자가 철거를 원할 경우 강제할 수 없으므로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옥, 도시에서 숨쉬다
최근 대구 지역 내 한옥의 이용 경향에 대해 김명수 주무관은 “신축의 경우 주거용이 많고 수선의 경우 주택, 카페, 음식점, 공방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중구 도심지 안의 경우 한옥 음식점이나 한옥 카페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답했다.
대봉동의 한옥 카페 ‘모가’의 경우, 오래된 한옥을 수선해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또한 삼덕동에 위치한 ‘임재양 외과의원’은 유방암전문의원으로, 한옥과 일식 가옥으로 이뤄져있다. 한옥은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상담공간으로, 일식가옥은 건강한 식이요법을 전수할 수 있는 교육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한옥은 전통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도시 속 현대인의 곁에서 숨쉬고 있다.
조 교수는 “한옥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존해야 하는 건 아니나, 주택시장을 아파트가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건축 유형이 도시 속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한옥에 대해 최소한의 보존을 위한 지원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한옥에 대한 비용 지원 및 규제 완화 등이 효과적으로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서현 기자/ksh15@knu.ac.kr
사진: 이한솔 기자/lhs/15@knu.ac.kr


자문·동행취재
조재모 교수(공대 건축)



 진골목의 식당 ‘종로숯불갈비’.
 날아갈 듯한 처마 뒤로 도심의 건물이 보인다.


옛 구암서원의 출입구인 경앙문 너머.
건물 관리인이 손님을 위해 차를 내가고 있다.


 창 너머로 본 서원 건물.




 1930년대 집장사(주택공급업자)들은 좁은 땅 
   위에 ‘ㄱ자’ 한옥을 서로 빈틈없이 건축해 팔
   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처마길이 한쪽이 짧은 
   것이 보인다.


임재양 외과의원.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안뜰로 나올 수 있는 구조다.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진 군집개발형 한옥의 지붕


한옥 카페 ‘모가’.


 (주)도시와 풍경 종합건축사 사무소와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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