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글터 작가모집 사업 - 소설 부문

코스모스

-지난(1585)호에 이어

마취 때문에 몽롱한 머릿속을 더듬었다. 신문의 광고, CRI, 그리고 7단계의 실험. 마지막 실험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았지만 어떤 실험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 전에 있었던, 어렴풋이 기억나는 일들도 조각조각 흩어져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워진 노숙자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옆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보고 더욱 어리둥절해하던 그는 이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여기 내가 두 명이 있다! 소란이 일자 간호사가 바로 박사를 호출했다. 박사는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7단계는 사람을 정확히 세로로 2등분하여 재생시키는 실험이었습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새로 생성된 뇌는 복구되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뇌의 반쪽은 신생아의 뇌와 마찬가지라는 거죠. 아마 기억력 등에 장애가 있을 수 있으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실험 참가비 6억은 둘로 나눠 여러분 명의로 된 통장에 넣었습니다. 자, 통장 받으세요.」

노숙자들은 통장을 받아들면서도 귀를 의심했다. 분명 꺼림칙한 실험을 거쳤지만 3억이라는 금액을 받았다는 생각이 그들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노숙자들은 각기 생각에 빠졌다. 저 기생충 같은 놈만 없으면 내가 6억을 몽땅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기억력, 인지력 테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까 병실에서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뭣하면 두 분이서 말씀 좀 나누셔도 됩니다.」

간호사가 한 노숙자에게는 0, 다른 노숙자에게는 1의 도장을 손등에 찍어주었다. 간호사는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도장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고 테스트가 종료되면 병원에서 직접 얼굴, 지문을 서로 다르게 수술시켜 준다고 말했다. 실험 참가비를 독차지하려면 일단 병원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두 노숙자를 지배했다. 간호사가 자리를 비운지 얼마 되지 않아 0이 찍힌 노숙자는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CRI 시설 밖으로 나가버렸다. 돌아온 간호사가 곧 그를 찾으러 나갔고 그 사이에 1이 찍힌 노숙자도 도망가 버렸다.

노숙자 0은 바로 옷가게를 찾았다. 옷을 골랐지만 가격이 얼마인지 읽을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길의 간판, 표지판, 버스 번호조차도 읽을 수 없었다. 모든 글자가 뒤섞여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글을 읽는 능력이 소실됨을 알게 된 노숙자 0은 옷을 사자마자 인력시장에 어렵사리 전화를 걸어 덩치 좋은 남자를 한 명 고용했다. 보디가드 역할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신 대신 글도 읽어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해야 했다.

노숙자 1도 옷가게를 찾았다.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그는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얼굴이 어그러져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가관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치밀어 대충 계산을 마치고 거리로 뛰쳐나올 수밖에 없었다. 왜 지금껏 알아채지 못한 거지? 비로소 그는 사람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을 알았다. 도저히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어 땅을 보며 걸었다. 힘없이 공원을 향해 걷던 그는 큰 체구의 남자와 부딪혔다. 큰 체구의 남자는 그를 후미진 골목으로 끌고 가 통장을 빼앗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 다음 호에 이어

박상훈 

(공대 건축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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