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빈약한 실정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면서 대구의 마을공동체가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면 지역민의 정서를 반영한 이야기도 급격하게 사라질 수밖에 없다. 대구 지역의 설화는 주로 1980년을 전후하여 조사·채록되었다. 이 때문에 이야기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편적인 설화를 조사·채록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도시화가 진행된 후에 채록되었지만 대구의 설화는 지역성과 상상력을 파악하는 데 꼭 필요한 자료이다.

대구 지역의 설화는 전설보다 민담이 훨씬 풍부하다. 전설은 지역의 증거물을 동반한 이야기인데 반하여 민담은 지역성을 상실한 떠돌이 이야기이다. 대구 전설은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지역민은 특정한 공간에서 구체적인 증거물을 기반으로 전설을 구비 전승한 것으로 보인다. 대구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이 반영된 전설이 사라지면 세계를 인식하는 상상력도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다. 여기서는 대구의 지명유래 전설을 통해서 지역성과 상상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대구 전설의 지역성과 세계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달성공원 유래>는 대구 지역민의 지역성과 상상력을 내포한 산이동 전설로 유명하다. 산이동 전설은 어느 날 밤에 산이 구름처럼 이동하던 것을 본 여인이 산이 떠온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 자리에 산이 멈춘 이야기다. 대구 지역민은 평지에 우뚝 솟은 ‘달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산이동 전설을 활용하고 있다. 이 전설은 분지 지형인 대구에 우뚝 솟은 ‘달성’에 대한 지역민의 상상력과 세계인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더욱이 ‘달성’이 자리한 ‘비산동’의 지명에도 산이동 전설이 등장하고 있어 지역민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높여주고 있다. 대구의 지명유래 전설을 내포한 ‘달성’은 지역민의 공동체적 상상력을 통한 세계인식의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

<달성공원 유래>는 전국적 분포를 보이는 산이동 전설을 수용하면서도 산을 멈춘 사람이 ‘아기’로 변모되어 있다. 대구의 중심지를 방어하기 위해 쌓은 ‘달성’에 동물원이 들어서면서 산이동을 멈추게 한 장본인이 ‘여성’에서 ‘아기’로 변모한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달성’에 동물원이 생기면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방문하는 놀이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달성공원 유래>에는 ‘달성’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산이동 전설과 함께 그곳에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원이 들어오며 공원으로 변모한 이야기가 적층되어 있다. 따라서 <달성공원 유래>는 산이동 전설의 지역적 토착화와 상상력을 통한 세계인식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둘째, 대구의 지명유래 전설을 통해서 역사적 사건의 전설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팔공산과 앞산 자락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된 <파군제>, <은적사와 은적굴> 등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반영한 지명유래가 풍부하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후삼국 시대 견훤과 왕건은 팔공산 자락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경주에 침입한 견훤을 물리치기 위해 왕건은 급하게 팔공산 자락으로 군사를 이동시켰으나 견훤의 매복에 걸려 대패할 수밖에 없었다. 팔공산 자락에서 펼쳐진 왕건과 견훤의 공산전투는 견훤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전설은 역사적 승자보다 패자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구 지역민은 공산전투에서 승리한 견훤보다 패배한 왕건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주고 있다. 견훤에게 대패한 왕건이 무사히 피신한 이야기는 팔공산과 앞산 주변의 ‘해안’, ‘안심’, ‘반야월’, ‘왕산’, ‘왕굴’ 등의 지명유래 전설에 다양하게 등장한다. 대구 지역민이 공산전투에 패배한 왕건을 옹호한 까닭은 경주에 침입한 견훤을 물리치기 위한 왕건의 과감한 행동을 긍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지역민이 공산전투의 승자인 견훤보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명유래 전설은 역사적 전쟁의 승패보다 천년고도 경주를 침략한 견훤을 비판하는 지역민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공산전투의 역사적 사건을 반영한 지명유래 전설은 전쟁의 승패보다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대구의 지리적 조건과 기후에 대한 전설의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구는 팔공산과 비슬산이 남북을 감싸고 있으며 금호강과 신천이 도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조건은 지역민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대구에는 홍수와 가뭄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승되고 있다. 대구는 대륙성 기후로 인하여 강수량이 비교적 적어 가뭄이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용재산 용의 승천>, <용소>에서는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그런데 <홍수를 막아준 느티나무>, <당산나무>는 수맥이 흐르는 곳에 나무를 심어 홍수를 예방한 이야기다. 낙동강 홍수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지역민은 나무를 심었다. 그랬더니 홍수가 발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때 심은 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가뭄과 홍수 전설에는 대구의 기후와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는 지역민의 다양한 노력이 반영되어 있다.

낙동강, 금호강, 신천 등의 유역에 자리한 대구는 홍수의 피해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홍수 전설은 이러한 지역의 강수량과 지리적 입지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소바위에 얽힌 전설>, <소바위>에서는 비가 많이 내렸지만 부부와 여동생이 모내기한 논에 물을 빼기 위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홍수로 인하여 제방이 붕괴되어 이들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린 오빠가 흙탕물 속에 떠내려 오던 아내는 구했으나 여동생은 구하지 못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이 동네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인근 마을 처녀들이 죽은 여동생의 혼을 달래려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한다.

“능청휘청 저 비륵 끝에

무정하다 우리 올배

  나도 죽어 후생가서

낭군님부터 심길라네”

이 노래는 모내기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불려지는 노동요이다. 홍수로 인한 절박한 상황에서 오빠는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여동생은 오빠를 원망하는 대목보다 자신을 구해줄 낭군의 부재를 한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동생은 저승에 가서라도 사랑하는 낭군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출한다. 자신을 사랑해줄 님의 부재를 한탄하는 여동생의 애틋한 사연은 모심기 노래에 삽입되어 노동의 현장에서 자주 불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심기 노래에 삽입된 이 이야기는 지역민의 다양한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예컨대 아내와 여동생 중에서 오빠가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윤리적 논쟁이 거듭 발생한 것이다. 남성은 여동생을 먼저 구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다고 주장한 반면에 여성은 아내를 먼저 구해주기를 소망하고 있다. 유학을 공부한 고학력의 남성일수록 여동생을 먼저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아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여동생은 다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력이 낮은 남성일수록 아내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내가 없으면 아기를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홍수 전설에 대한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누구를 구해야 하는지 가족 간의 윤리적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구 지명유래 전설을 통해서 지역성과 상상력을 살펴보았다. <달성공원 유래>는 평지에 우뚝한 ‘달성’에 대한 궁금증을 산이동 전설을 수용하여 세계를 인식하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이 전설은 ‘달성’에 대한 상상력과 세계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곳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원이 설치되면서 산이동을 멈춘 장본인이 ‘아기’로 변모되었다. 후삼국 시대 공산전투를 반영한 <파군제>, <은적사와 은적굴>은 역사적 사건의 전설화를 보여준다. 지역민은 왕건과 견훤의 전투 승패보다 경주에 침략한 견훤을 비판하는 공동체 의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리적 입지조건과 기후에 대한 전설의 대응도 주목해야 한다. <소바위에 얽힌 전설>, <소바위>는 모심기 노래에 삽입된 홍수 전설 속에 가족 간의 윤리적 논쟁을 유발하고 있다.

이렇게 대구 전설의 전승집단은 지역의 증거물과 관련된 공동체 의식과 세계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대구 지명유래 전설의 지역성과 상상력에는 이야기판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역민은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적 사건 및 사회·문화적 배경에 의해 대구 전설의 변모와 구비 전승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구 지명유래 전설의 지역성과 상상력은 이야기를 구비 전승하는 지역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구의 지명유래 전설에는 지역민의 세계인식과 상상력이 오랫동안 적층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의 역동성과 끈질긴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다.

"대구 지역민의

 전설이 사라지면 

세계를 인식하는

상상력도 함께 사라진다

대구 지명유래 전설의 

지역성과 상상력에는 

이야기판 구성원들의 

공동체 의식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되고 있다."

<사진출처: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관리사무소>

<사진출처: 대구광역시 팔공산 자연공원 관리사무소>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소장중인 18세기 대구 달성도

▲왕건이 은신했던 은적사의 은적굴

<사진제공: 김재웅 교수>

김재웅 교수

<기초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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