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 속 ‘정의’를 외친 경북대

지난달 31일, 500여 명의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 및 대구 시민들이 본관 앞에 모여 1차 경북대학교 시국대회를 진행한 데 이어, 지난 8일 북문에서 진행된 2차 시국대회에도 400여 명의 학내 구성원들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대학자율성 침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일과 11일 대구 시내에서 진행된 1차·2차 대구시국대회에는 총학생회의 주도 하에 본교생들이 참석하기도 했다. 이에 정의를 외치는 본교생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발화점을 넘어섰다, 끓어오른 대구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난 후,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도 시민들이 현 시국에 대한 분노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본교에서는 총학생회의 주도 하에 이뤄진 시국선언, 교수회의 시국선언문 발표, 학생 1인 시위 등의 활동이 전개됐고,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동성로에서는 1차·2차 대구시국대회가 진행됐다. 이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담긴 집회 현장을 방문하고, 본교 시국서언에 참여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 사태에 대해 대구는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들어봤다●

2016. 11. 05. 토요일, 1차 시국대회

토요일 저녁 6시 대구 시내, 평소와 같이 많은 인파로 북적였는데 이날은 이유가 달랐다. 민주화에 앞장섰던 대구를 상징하는 2·28기념 중앙공원(대구의 고등학생들이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하여 일어난 2·28민주운동을 기념하는 공원) 옆 거리는 2천여 명의 시민들로 가득했다. 대통령의 지지기반 지역에서 진행된 ‘박근혜 퇴진 1차 대구시국대회’에는 엄마 손 잡고 나온 어린이부터 중·고등학생, 독재정권을 겪었던 중·장년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행사 초 자유발언으로 지역 사회단체를 비롯해 교육자, 학생, 주부 등 수십 명의 시민이 연단에 올라 국정농단을 규탄했다. 본교 제48대 ‘SODA’ 총학생회장 박상연(사범대 물리교육 10) 씨는 “제가 생각하는 시국선언은 우리의 철저한 반성과 다짐, 행동”이라며 “우리가 주인이기에 (이 사태는) 우리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먼저 분노할 때 그 모든 사실을 ‘정치질’이라 포장하며 멀리하지 않았냐”고 되물으며 “이제는 우리가 앞장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연단에 오른 80대의 시민은 “대구와 경북은 이 정부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며 “대구시민도 대통령을 만드는 데 일조한 만큼 벌을 받고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 송현여고에 재학 중인 조성해 학생은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 대부분의 언론은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 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것이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56년 전, 2월 28일 바로 이 땅에서 대구학생들이 불의를 규탄하여 민주주의를 지켰듯이 또다시 대구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일궈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후 시민들은 삼덕지구대, 반월당네거리, 중앙네거리 구간 2차선 도로를 행진했고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등을 외치며 지나가는 시민들에 동참을 호소했다.

2016. 11. 11. 금요일, 2차 시국대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1차 시국대회에 이어 지난 11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2차 대구시국대회 자유발언 중 한 여학생이 외친 말이다. 경산에 사는 16살 중학생 정미리 학생은 “지난주 1차 시국대회에서 고등학생 언니가 자유발언을 한 것을 보고, 나도 내 입장을 표현하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미리 학생이 말한 ‘고등학생 언니’는 지난 1차 시국대회에서 자유발언을 했던 조성해 학생이다. 조성해 학생의 자유 발언은 인터넷에서 큰 화제가 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딸을 키우고 있다는 40대 남성 진경원 씨 또한 조성해 학생의 자유발언을 듣고 자리에 올랐다. 진 씨는 “내 딸과 똑같은 나이의 학생이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밝히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다”며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어 오늘 자유발언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인원은 주최측 추산 5천여 명에 달했다. 시국대회를 주관하는 ‘박근혜 퇴진 대구비상시국회의’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김영숙 대표는 “대구시국대회는 매주 토요일 오후 5시 동성로에서 열린다”이라며 “어른들의 재미없는, 미리 준비된 발언이 아니라, 10대·20대 젊은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목소리가 광장에서 분출될 수 있도록 하는 열린 집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집회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다수 모여 있었다. 시국대회 시작 1시간 전에는 2·28 기념공원 버스정류장에서 대구 청소년 시국선언 기자회견도 진행됐다.

1차 시국대회와 같이 2·28 기념공원, 삼덕지구대, 반월당네거리 구간의 2차선으로 행진한  행렬 중간에서, 청소년들은 ‘청소년 모여라’라는 피켓을 들고서 가장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대건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손세원 학생은 “전문성도 없고 경력도 없는 민간인이 우리나라를 주무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학교 친구들 100여 명이 함께 (오늘 집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본교 시국선언·시국대회

총학생회는 지난달 26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SNS 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러나 해당 선언문이 상황에 맞지 않은 가벼운 내용이라는 비판적 반응이 일자, 총학생회는 이에 대해 사과하고 지난달 28일 새로운 시국선언문을 작성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학생회장 박상연 씨는 “지난달 25일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이후 학우들로부터 시국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이에 지난달 26일 긴급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서 만장일치로 시국선언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후 박 총학생회장은 지난달 28일부터 16일 간 단식 농성을 벌였고, 이와 함께 지난달 31일 본관 앞에서 1차 본교 시국대회가 진행됐다. 5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본관 계단에 피켓을 들고 서서 1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다. 1차 시국대회는 총학생회장의 발언과 학내 구성원 및 일반 시민들의 자유발언, 단식 농성에 참여했던 손광락 교수(인문대 영어영문) 발언문 대독, 그리고 임승택 교수(인문대 철학)의 발언 순으로 이어졌다. 손 교수는 글을 통해 “더 이상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자유와 정의, 진리가 넘치는 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함께 손에 손을 맞잡고 앞으로 나아가자”며 뜻을 전했다.

1차 시국대회의 열기를 이어 지난 8일 2차 시국대회가 본교 북문에서 진행됐다. 400여 명의 참가자들은 ‘박근혜는 하야하라’, ‘대학자율성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과 함께 북문 인근 상권가를 행진했다. 

교수회 시국선언

본교 교수회 또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지난달 31일 개최된 단과대학 교수회 의장단 간담회에서 시국선언 안건이 제안됐고, 참여한 모든 의장들이 만장일치로 이에 동의함에 따라 대통령 하야 요구가 합의됐다. 이에 지난 3일 교수회는 기자회견을 갖고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대구·경북 지역의 대학 교수회 중에서는 최초 발표였다.

제21대 교수회 의장 윤재석 교수(인문대 사학)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이 극에 달했고, 나라가 참담한 지경에 이르러 교수회 차원의 시국선언의 필요성을 느꼈다”며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국교련) 의장에게 시국선언을 해야 한다고 건의했고, 의견 수렴 과정에서 국교련 전체명의의 시국선언을 하기 전에 개별 대학마다 시국선언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선언을 발표하게 됐다”고 선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교수회는 국교련 소속으로서 지난 10일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이하 사교련)와 함께 서울 광화문에서 공동으로 발표된 시국선언에 동의하기도 했다.

본교 학생실천단

- 이것이 민주주의다 ‘이.민.주’

본교 학생실천단 ‘이것이 민주주의다’(이하 이민주)는 총학생회의 주도 하에 이뤄진 경북대 1·2차 시국대회 업무를 함께 도왔다. ‘이민주’ 대외업무팀장 박진원(사범대 생물교육 10) 씨는 “본교 총장 임용 사태에 대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 하고 모여서 고민하던 학생들이 시작이었으나, 최근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며 다양한 의견을 가진 학생들이 모였다”며 “해당 사안이 본교 총장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많은 학우들이 분노하고 있는 걸 느꼈기 때문에 두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표출하자는 의도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약 60명의 학생들로 구성된 이민주는 본교 방문 새누리당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침묵시위, SNS를 통한 학우들의 대자보 게시, 현 사태와 관련한 특별강연 진행, 학생총회 개최를 위한 연서명 운동, 대구 시민 공동행동 참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민주’ 실무총괄 정순형(글로벌인재 12) 씨는 “학생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최고의 의결기구가 학생총회”라며 “현재 본교생들이 집중하고 있는 총장 문제, 비선실세 국정농단 문제에 대해 큰 목소리를 내고자 학생총회 개최를 위해 서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본교 총학생회칙 제14조 1항에는 500명 이상의 소집 요구가 있을 때 학생총회를 소집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민주는 지난 10일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1,687명의 학우들이 서명에 참여해 학생총회 소집 요건을 충족했음을 알리고, 오는 18일 개최될 학생총회에 많은 학우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파란 장갑 릴레이 시위

‘파란 장갑’은 시위는 이지현(사회대 신문방송 15) 씨가 시작한 학우들의 릴레이 시위다. 이 씨는 “같은 과 선배들이 동성로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신다고 해 함께 참여했었다”며 “그날 어느 시민분이 다음부터는 이것을 끼고 하라며 파란 장갑을 주고 가셨는데, 이를 통해 느낀 것이 많아 ‘파란 장갑’ 시위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준 물건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그에 공감한다는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씨는 학우들과 본관 및 북문 등 학내 장소에서 지난달 31일부터 약 일주일 간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시위에 참여한 학우들에게는 이 씨가 파란색 장갑과 음료 등을 나눠주었다.

임지영(사회대 신문방송 16) 씨는 ‘카카오톡’ 채팅 화면을 응용해서 만든 피켓을 들었다. 임 씨는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처음에는 큰 이슈로 떠오르다가 점차 식어가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꼈다”며 “이번 사건만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 직접 행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태현(사범대 화학교육 16) 씨도 파란 장갑을 끼고서 시위에 참여했다. 신 씨는 “미래에 교사가 되길 꿈꿨기 때문에 ‘교사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중립을 어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현 시국에 중립을 지키는 것,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이 과연 교사가 진정 지켜야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신 씨는 “잘못된 사건·상황에 무관심으로 대처한 탓에, 더 일찍 바로잡지 못하고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까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며 “1인 시위와 같은 작은 표현들이 모여 큰 힘이 된다면 현 상황의 극복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의 자율성 또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조현영 기자/jhy16@knu.ac.kr

최지은 기자/cje14@knu.ac.kr

▲지난 11일 진행된 ‘박근혜 퇴진 2차 대구시국대회’의 모습이다.

▲지난달 31일 본관 앞 ‘1차 경북대학교 시국대회’에서 개인시국선언문을 낭독한 (맨 앞 줄 왼쪽부터) 조혜성(사회대 심리 14) 씨, 오영준(사회대 신문방송 12) 씨, 변지민(예술대 음악 13) 씨와 최신명(사회대 신문방송 12) 씨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파란 장갑 릴레이 시위에 참여한 임정기(사범대 체육교육 16) 씨와 신승민(사범대 물리교육 16) 씨. 추위에도 불구하고 늦은 시각까지 자리를 지키며 시위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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