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대한건축사협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건축은 문화다’라는 화두와 함께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건축사협회지에 실린 이 관직 교수의 글에는 이 화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문화는 ‘한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면 당연히 건축은 문화인 것인데 왜 우리는 이러한 주장에 노력을 해야 하는가? 정부와 함께 사업을 진행할 정도면 이는 분명 이전까지의 건축은 대중에게 문화로 분류되지 못하였다는 뜻일 것이다. 건축은 왜 문화로 인식되지 못한 것일까?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 건축이 걸어온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서양식 건축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 근대건축의 시작은 일제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이다. 1950년 당시의 건축은 어떠한 문화라기보다는 재건의 의지였다. 폐허 속 한국은 재건과 서양화의 이름으로 국제스타일의 빌딩문화를 전개했다. 한국은 지역적 특질을 포기하는 대신에 재건의 상징으로 ‘새로움’의 멋을 택했다. 서구의 모더니즘은 ‘양식으로부터 해방’을 뜻한다.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에서 장식과 양식의 탈피는 인간 정식의 성숙을 의미하며,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에 더 큰 가치를 가진다고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건축은 모더니즘을 “양식”으로써 택했다. 서구의 모더니즘이 추구하는 조형은 자유공간이며 정신적 가치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 모더니즘의 조형은 상징성 있는 볼륨이며 시각적인 가치였다. 패스트팔로워가 만든 국제주의양식의 건축물이 도시를 채우면서, 도시 속 공적 영역과 개별 영역의 관계는 경색되었다. 실내까지 아우르지 못하는 모더니즘의 아류작들이 사람의 생활까지 침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고, 생활이 되지 못한 것은 문화가 될 수 없었다. 성숙하지 못한 모더니즘의 관성은 다음 세대, 그 다음다음 세대까지 영향을 미친다. 

196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은 지역성과 근대성을 결부시키기 시작한다. 국수주의, 형식주의와 같은 일련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건축가들은 비로소 공간을 사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한국의 공간’‘물성을 통한 한국적 정서의 실현’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건축계가 한국건축 모더니티를 정립해갈 무렵, 한편에서는 정부가 주도하는 양적 성장이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 모던건축이 사람들의 생활이 될 수 없었던 반면,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건설과 공급은 사람들의 생활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1962년 완공된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새로운 주거환경으로써 아파트가 제시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새로운 주거형태의 실험적 모델이었다. 현대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아파트가 건축이 아닌 건설로 대표되는 것은 그 가치가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대중에게 문화가 되어야 했던 건축은 몇몇 공공건축물에 지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낮은 기술수준, 실내공간에 대한 무심함, 관료주의와 보통성의 타협으로 인해 대중들에게 그 이상의 생활로 다가가지 못하였다. 대중들에게 생활이 될 수 없는 것은 문화가 될 수 없는 법이었다.

구봉진

 (공대 건축 11)

▲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 ‘마포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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