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2분간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는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사과함과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를 기점으로 정치권, 언론 모두가 대통령을 적극 비판하기 시작했다. 보수·진보세력도 이념을 불문하고 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비판을 매시간 쏟아내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이념으로, 이권으로 합의를 보지 못했던 두 주체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디딤돌로 오랜만에 한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은 한편으로 씁쓸하게 느껴진다. 여론 역시 ‘최순실 게이트’의 열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7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26일의 대통령 지지율은 17.5%에 불과했다.

국민의 반의 반도 지지하지 않는 대통령, 그는 연설문뿐만 아니라 군사기밀을 비롯한 중요 사안들도 민간인 신분의 한 개인과 논의했다. 이 상황에서 많은 국민들은 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하나씩 곱씹어본다. 철도 및 의료의 민영화, 세월호 침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문제 협상, 테러방지법, 미세먼지 관리 특별 대책, 사드 도입까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정부의 입장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때 일면을 장식한 이 사건들의 방향성이 어떻게 됐었는지, 결과는 어떻게 된 것인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떠올리지 못한다. 그것은 정치에 대한 포기와 무관심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의(代議)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그 사안을 담당하고 있으니, 적어도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우려할 만한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당연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련의 사태를 통해 대의에 대한 신뢰가 깨졌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전문가라고, 우리의 의견을 대신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과연 주요 사안·사건 해결에 적극적이었는지에 대한 의심도 버릴 수 없게 됐다. 맨 처음 비선실세에 관한 언론·여론의 의구심을 루머라고 일축한 대통령의 해명 탓에 행정부의 발언은 더 이상 신뢰를 잃어버렸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은 연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평범한 대학생 또래의 나이에 부모를 총탄에 잃고, 권력과 부를 탐하는 존재에게 속았다는 점에서는 불쌍한 사람이다. 그러나 국민의 의견을 대신 전하는 국회의원, 특히 대통령의 자리는 연민으로 묻어둘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를 구현하는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볼 때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라는 말처럼, 혼란 속에서 다가오는 다시 한 번의 신뢰, 대선을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백철민

(사회대 정치외교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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