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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대구 인문주간, 새롭게 만나는 도시

인문학(人文學)은 사전적으로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영역으로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도심 속에서도 얼마든지 인문학의 소재를 찾을 수 있다. 지난 주, 대구는 도심 속의 이야기를 가지고 경쾌한 사색에 빠졌다●
 
대구 속 풍부한 이야기 
지난 24일부터 29일, 대구 도심 곳곳에서는 ‘인문주간’ 행사가 열렸다. 인문주간은 교육부의 인문학 대중화 사업의 일환으로, 10월 마지막 주를 ‘인문주간’으로 지정해 행사를 열고 있다. 2014년부터는 본교 인문학술원이 ‘인문도시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중구와 함께 인문주간을 주관해왔다.
2007년부터 인문주간을 진행한 대구는 ‘인문도시’로도 불린다. 도시의 인문학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대구는 역사적으로 국채보상운동, 지방분권운동 등 근·현대사의 큰 사건들이 처음 일어난 곳이다. 계산성당, 동산병원과 같이 100년이 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도 많다. 특히 한국전쟁기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피난길을 따라 대구 향촌동으로 옮겨왔다. 당시 외신은 향촌동을 보며 “폐허에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전할 정도였다.
이번 대구 인문주간은 다양성, 창의성을 지향했다. ‘미래도시 colorful 대구’라는 주제 아래로 사회 속의 약자를 돌아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24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주요 행사에는 ▲100분 토론-분권을 넘어 로컬리티로 ▲시민인문학 강연 ▲도시교류포럼이 펼쳐졌다. 시민들과 함께 도심 속 길을 걸어보는 ‘길 위의 인문학’은 ▲자갈마당 ▲히든 플레이스 ▲전태일을 테마로 진행됐다. 길 위의 인문학 후에는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콘서트 ‘설왕설래’가 있었다. 
인문학술원은 3년 동안 인문도시 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달라지는 도시의 모습을 지켜봤다 인문학술원 원장 허정애 교수(인문대 영어영문)는 “시민 중에 강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고, 수준 높은 질문을 하는 ‘인문학 마니아’도 생겨났다”며 “이번 인문주간 행사는 시민이 주인이 되는 인문 축제를 만들고자 기획했다”고 말했다.

골목 속 숨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히든 플레이스’
지난 26일 오후 5시 인문주간 행사 ‘길 위의 인문학’ 중 도시에 숨어있는 장소를 함께 찾아다니는 ‘히든 플레이스’가 진행됐다. 이날 코스는 대구역-교동 보석상가-교동시장-북성로였다. 가이드는 ‘대구영상서랍’ 박지혜, 이영민 공동대표가 맡았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도심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장소를 찾고, 영상 속에 담아왔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이자, 대구역에서 투어가 시작됐다. 북성로를 등지고 1분 정도 걸어가자 건물이 사라진 빈 공간이 보였다. 빈 공간 옆 건물의 벽은 때가 타고 타일이 뜯어져 있었다. 박 대표가 “이 건물 역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함께 참가했던 시민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물은 대부분 벽돌로 이루어졌다”며 “예전에 이 근처에 있던 KBS 건물도 벽돌로 만들어졌었다”고 말했다. 그제야 타일이 벗겨진 곳에 드러난 벽돌들이 보였다. 박 대표는 “히든 플레이스를 함께 찾는 이유 중 하나는 개인의 경험이 증언으로 나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골목으로 들어와 교동 보석상가 깊숙이 들어가자 보석세공사인 원음전자 입구가 보였다. 입구라고 하기는 문도 달려있지 않았다. 이 대표는 “보석 상가라고 하면 깨끗해야 할 것 같지만, 이곳의 건물들은 모두 오래됐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통로로 들어가자 낮인데도 불구하고 조명을 켜야 할 정도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세공작업장으로 들어가니, 2층과 3층이 뚫려 있는 공간이 나타났다. 지붕 근처에 창문을 설치해 위쪽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박 대표는 이곳을 ‘교동 아케이드’로 불렀다. 그 와중에도 세공기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원음전자에서 나와 북성로 방향으로 5분정도 걸어, 흔히 ‘양키골목’이라고 부르는 교동시장으로 이동했다. 그 속의 태창복장사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 벽면은 걸린 옷으로 가득했다. 한쪽 벽에 있던 옷들을 치우자 원래 보이지 않던 계단이 드러났다. 계단 위에는 한때 실제 방으로 쓰였던 일본식 목조 건물이 숨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북성로 속 이름 없는 건물은 외벽에 하얀 페인트가 덕지덕지 붙어있어,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된 내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 역시 일제강점기 이후 여자기술학교와 무술 훈련소로 쓰이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4층에는 특별공연으로 무용이 준비돼 있었다. 무관심 속에 괴로워하는 건물을 대변하는 콘셉트였다. 박 대표는 “모든 장소들이 히든 플레이스다”며 “하지만 도시 속의 숨겨진 공간에 있는 이야기들은 방치돼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함께 참가했던 시민 김영식(65) 씨는 “일반 시민으로서 히든 플레이스에 온 것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행사가 과거를 보고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기억을 걷고 
언어로 재생하다
지난 27일 ‘길 위의 인문학’ 마지막 순서인 ‘전태일 로드’가 진행됐다. 전태일 로드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를 비롯해 1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중구 남산로에 위치한 명덕초등학교에서 시작된 전태일 로드는 열사 전태일이 아닌 인간 전태일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명덕초등학교(이하 명덕초)는 전태일 열사가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 회상하는 ‘청옥고등공민학교(초등학교·공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 중학교 과정 교육을 실시하는 공민학교)’가 자리해 있던 곳이다. 당시 청옥고등공민학교는 목조로 된 건물로 2층 슬레이트·양철지붕으로 교사가 있었다. 별채에 있는 건물에서 공민학교를 운영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인조잔디로 덮인 명덕초 운동장 앞에서 전태삼 씨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전태삼 씨는 “지금과 달리 담장이 없었고 울타리 사이로 탱자나무가 듬성듬성 뻗어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동장에서 아무나 마음껏 뛰어놀며 학교 뒤쪽으로는 도랑이 흘렀고 그 주변에는 새파란 무와 배추밭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했다.
명덕초에서 출발해 전태일 열사가 지나다니던 골목에서는 가이드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상임이사 김찬수 씨로부터 전태일 열사의 생애에 관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1948년 출생인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까지 열다섯 번의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출생 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온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서울로 이사해 전 열사의 부친 전상수 씨는 작은 봉제 사업체를 차렸다. 이후 전 열사는 남대문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학년으로 편입하는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그해 부친의 사업부도는 곧 전 열사의 가출로 이어졌다. 부산으로 다시 내려온 그는 구두닦이 일을 하며 생활을 이어나가지만 기존 구두닦이들의 텃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게 됐다. 그러다 영천에서 잘못 내려 대구의 외갓집을 찾아갔고, 가족이 대구에 와있음을 알게 된다. 그곳이 바로 청옥시절 전 열사의 가족이 거주했던 남산동 2178-1번지이다.
현재 청옥시절 남산동 생거지로 가는 길목은 좁은 골목길로 이어진다. 전태삼 씨는 골목길을 걸으면서 시민들과 함께 걷는 길이 도랑이었고 도랑 위 판자를 밟고 건너다녔다며 1960년대 풍경을 현재의 모습과 함께 설명했다. 전태삼 씨는 당시 집들이 있었던 장소와 돌산이 있었던 위치를 섬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남산동 생거지에 도착했을 때 전태삼 씨는 지난해까지 보존돼 있던 대문과 담장이 골목 정비 사업으로 허물어진 것을 안타까워 했다. 전태삼 씨는 “주인네가 들어가던 이끼가 낀 낡은 대문과 삼각으로 된 담장이 있었고 우리 가족이 드나들던 대문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전태삼 씨는 남산동 생거지가 ‘가족의 운명이 결정된 장소’라며 기억에 남는 장소라 했다. 부친이 들여온 미싱 2대와 선반 위 세간을 올려놓고 여섯 가족이 누우면 딱 맞았던 방에서 구호물자로 들어온 옷을 다시 봉제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다 각자의 생존을 책임지고 뿔뿔이 흩어진 곳이 바로 남산동 생거지이기도 하다.
남산동 생거지를 지나 길을 따라 걷다보니 전태일 열사의 생가인 남산동 50번지를 방문할 수 있었다. 번지수는 그대로지만 외형은 완전히 바뀌어 버린 그곳에서 전태일 열사의 추모노래를 들으며 길 위의 인문학 셋째 날 전태일 로드가 마무리됐다.
이어진 토크콘서트 ‘설왕설래’에서는 뉴스민 천용길 기자의 ‘전태일 다시읽기’를 들을 수 있었다. 천용길 기자는 전태일 열사가 남긴 이야기를 상식, 노동의 가치, 연대로 요약하며, 대중들이 노동에 가지는 인식과 유리천장(여성과 소수민족 출신자들의 고위직 승진을 막는 조직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까지 이야기를 넓혀갔다. 마지막으로 천용길 기자는 “전태일 열사는 또 다른 전태일이 나오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패널로 참여한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이건희(28) 씨는 “현재 제대로 된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전태일 열사와 같다고 생각한다”며 “전태일 열사에 대해서 슬프지만 내 일은 아닐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적으로 이에 대한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며 “모두가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 노동자이기에 연대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이슬기 기자/lsg14@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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