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저링 2’에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기묘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그 중 하나 주인공 '주디'가 십자가가 걸린 방에 둘러싸여 있는 장면이다. 방 가운데 있는 주디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십자가는 귀신의 존재를 알리듯 거꾸로 돌아간다. 우리가 사는 일상 속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은하의 세계에선 이와 비슷한 일이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귀신같은 존재를 ‘암흑물질’이라고 설명한다. 도대체 암흑물질이 무엇일까●

암흑물질, 넌 누구냐

1930년대 초, 스위스인 천체물리학자 프리츠 츠비키(Fritz Zwicky)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법으로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질량을 관측했다. 하나는 은하단이 내뿜는 빛을 근거로 삼는 ‘광도 질량’, 하나는 은하단 속에 있는 천체의 이동속도를 근거로 삼은 ‘역학 질량’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론상으로는 두 질량의 값이 똑같이 나와야 했지만, 실험 결과 전혀 다른 값이 나왔다. 광도 질량보다 역학 질량이 400배 이상 더 높게 나온 것이다. 그는 이 차이가 눈으로 감지할 수 없는 어떤 물질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중력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 이 물질을 가리켜 ‘암흑물질’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여성 천체 물리학자인 베라 루빈(Vera Cooper Rubin)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암흑물질의 존재를 감지했다. 그녀는 안드로메다 은하 속 가스의 속도를 관측하고 있었다. 중력 이론에 따르면, 중력의 중심에서 멀어진 물체의 이동속도는 느려져야 한다. 하지만 관측 결과는 이론과 달랐다. 거리에 상관없이 은하 속에 포함된 가스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인 것이다. 베라 루빈이 관측한 현상은 마치 에어컨은 우리집 안방(은하의 중심)에서만 틀어뒀는데, 아파트 한 동(은하) 전체가 에어컨을 틀어놓은 방의 온도와 같은 것이다. 

베라 루빈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추가적인 힘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은하 외곽으로 갈수록 그 ‘미지의 물질’의 힘이 커지기 때문에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암흑물질이 벌이는 ‘쇼’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암흑물질을 확인한 이후, 이를 규명하려는 연구가 활발해졌다. 

여러 연구 결과 암흑물질이 우주 전체의 질량에서 약 23%를 차지한다고 밝혀졌다. 또한 암흑물질은 우주 초기 은하의 형성에 관여했다고 추정된다. 암흑물질이 중력을 형성해 다른 물질이 모여들게 하고, 이 모여든 물질이 별과 은하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암흑물질은 우주 형성의 기원을 풀 열쇠로 여겨지고 있다. 아직 암흑물질의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추측되는 물질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후보들을 살펴보면 암흑물질의 성질을 알 수 있기도 하다.  

탈락의 고배를 맛본 후보들

‘MACHO’와 ‘중성미자’

MACHO(Massive Compact Halo Object)는 갈색왜성, 중성자별, 블랙홀 등과 같이 별이 죽어서 남기는 시체 같은 것이다. 이들은 은하 안에서 꽤 늙은 축에 속하지만, 여전히 어느 정도의 중력을 가지고 있다. 지구에서 봤을 때 MACHO가 다른 곳에서 오는 빛을 휘게 하는 ‘중력렌즈 효과¹’를 보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것들이 은하 외곽으로 몰려 있다면 암흑물질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하고 기대했다. 또 MACHO는 확실한 물질이라 탐사도 쉬웠다. 

과학자들은 중력렌즈 효과가 생기는 공간에 MACHO가 있다는 것을 이용해, 우리 우주에 MACHO가 얼마나 있을지를 추측했다. 그러나 MACHO는 암흑물질이라고 치기엔 우주공간에서 차지하는 질량이 터무니없이 작았다. 

게다가 ‘관측장비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 외에 암흑물질의 새로운 조건이 발견되면서 MACHO는 후보에서 완전히 탈락하게 됐다. 바로 ‘어떤 물체와도 충돌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이는 탄환 은하단 충돌을 관측하면서 밝혀졌다. 암흑물질이 어떤 물체와 충돌할 수 있다면, 두 은하단이 충돌하는 접점은 외곽에 있던 암흑물질에 의해 둘러싸이게 된다. 그렇다면 거기에 있는 물질은 연못처럼 고인 신세가 돼야 한다. 그렇지만 충돌부의 물질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흩어졌다.

이후 원자로 존재하는 물질들은 더 이상 암흑물질이 될 가능성이 없어졌다. 다음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물질은 중성미자였다. 중성미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소립자’의 일종이다. 중성미자의 특징 중 하나는 ‘원자 형태의 물질과는 충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기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중성미자는 어떤 물체에도 부딪히지 않는다. 만약 암흑물질이 중성미자로 이뤄졌다면, 앞서 나온 탄환 은하단 속 물질의 움직임도 설명된다. 또 중성미자는 소립자 중에서는 가장 많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암흑물질의 엄청난 질량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됐다.

이에 과학자들은 중성미자를 암흑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중성미자 역시 암흑물질이 되기에는 부족했다. 일차적으로 질량의 문제였다. 우주에서 중성미자가 차지하는 질량은 암흑물질로서 필요한 질량의 1/15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중성미자가 암흑물질이 아닌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속도가 거의 ‘0’에 가까운 ‘차가운 물질’이라는 암흑물질의 특성이다. 암흑물질은 최초의 별이 형성되기 위한 중력을 만들었다고 추정된다. 그러기 위해선 암흑물질이 서로 우연히 뭉쳐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질의 속도가 빠르면 서로 모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활동성이 별로 없는 ‘비활성 중성미자’를 암흑물질로 가정하는 과학자들도 있지만, 아직 뚜렷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가능성을 인정받는 물질들

이렇듯 여러 후보들이 탈락했지만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암흑물질’이라고 추정되는 물질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WIMPs(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s, 이하 윔프)이다. 그대로 해석하면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무거운 입자’이다. 윔프로 추정되는 물질들은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당연히 빛에도 잘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도와 전체 질량이 암흑물질의 조건에 맞는 것으로 추정된다. 

윔프를 찾기 위한 시도는 수십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다양한 실험방법이 마련됐다. 그 중 하나는 지하 관측이다. 제논(Xenon)과 저마늄(Germanium)과 같이 윔프와 반응할 것으로 예상되는 물질들을 아주 예민한 관측장비와 함께 넣어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부에서 오는 우주선(방사능)을 배제한 채, 윔프의 반응만을 추적하기 용이해진다. 

또 하나는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하드론² 충돌형 가속기)와 같은 입자가속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LHC는 스위스 제네바 지하에 있는 실험 장치로, 양성자 두 개를 광속과 가깝게 가속시켜 서로 충돌시킨다. 충돌된 입자는 마치 빅뱅처럼 고에너지 상태가 되는데, 이때 암흑물질이 생성될 것이라고 본다. 암흑물질이 우주 초기에 빅뱅 에너지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윔프는 암흑물질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여겨져, 이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 각지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리고 윔프 검출기에선 매일 ‘검출기가 자극 받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뉴스에서 암흑물질을 포착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는 없다. 통계적 요동, 검출기의 오류 등 방해요소로 인해 암흑물질이라고 확신할 만한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실험실에서 윔프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긴 하지만 아직 검증되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거론해 볼 수 있는 후보는 엑시온(Axion)이다. 엑시온은 WISPs(Weakly Interacting Slim Pariticles, 약하게 상호작용하는 가벼운 입자)의 일종이다. 엑시온도 윔프처럼 그 존재가 예견됐지만 발견되진 않았다. 엑시온의 질량은 양성자의 100조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속도가 빨라 후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엑시온은 다른 물질과 전혀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속도를 낼 만한 에너지를 받을 수 없다.  

엑시온은 굉장히 특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바로 강한 자기장을 쬐면 광자³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 1989년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ADMX(엑시온 암흑물질실험)을 실행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엑시온의 존재를 발견하진 못했다.

암흑물질 탐색전, 한국도 예외 아냐

CERN(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2012년 힉스 입자⁴ 발견 후, ‘다음으로 발견해야 할 것은 암흑물질이다’고 했다. CERN이 현존 최고의 실험기구를 가지고 있는 만큼, 암흑물질 발견을 위한 실험에 박차가 가해질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암흑물질 연구 현황은 어떨까? 암흑물질은 탐색하는 물질과 가정해놓은 표준모형에 따라 실험 종류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실험하는 곳 자체는 많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몇 곳을 꼽아볼 수 있다.

먼저 국내 최초로 암흑물질 탐색을 시작했던 KIMS(Korea Invisible Mass Search)연구단은 윔프 탐색을 위해 2004년 강원도 양양에 검출기를 설치해 검출실험을 시작했다. 특히 검출기에 제논이나 저마늄이 아닌 CsI(크리스탈의 일종)을 사용한 것으로 주목받았다. CsI를 사용하면 실험 기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어 윔프 검출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현재는 기초과학연구원(이하 IBS)의 지하실험연구단에서 KIMS를 이어받아 계속 진행하고 있다. KIMS연구단의 일원이었던 본교 김홍주 교수(자연대 물리)는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는 연구비가 잘 수주되지 않았다. 하지만 KIMS연구단이 연구를 시작하면서 암흑물질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IBS에서는 엑시온 탐색을 위한 실험을 준비 중이다. 스퀴드(SQUID, 초전도양자간섭체)를 이용한다. 스퀴드는 엑시온이 내는 광자와 전자기파를 증폭시킨다. 주변 제반 시설이 갖춰지게 되면 2018년쯤에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검출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왜 지금 암흑물질인가?

암흑물질 연구는 약 70년 동안 진행됐지만, 발견을 위해서 가야할 길이 멀다. 앞서 나온 윔프와 엑시온의 경우 실제 물질이 발견됐다 해도 여전히 난관이 남아있다. 발견된 물질의 총량과 밀도가 암흑물질이 가져야 하는 것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암흑물질을 발견한다고 해서 당장 이를 이용한 특허나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암흑물질 연구에 몰두하는 것일까?

먼저 암흑물질이 과학계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다. 암흑물질은 현재 우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고, 그만한 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을 새로 발견한다는 것은 ‘노벨상으로 직행하는 길’로 여겨진다. 게다가 암흑물질의 특성상, 발견 시 우주 형성과 관련된 미스터리를 확실하게 풀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암흑물질 연구가 이론적 물질을 가정해 놓고 발견하려 하기 때문에 새로운 물질의 발견과 암흑물질의 증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암흑물질은 물리와 천체 등 다양한 과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이 발견할 물질을 상상하면서 후보들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암흑물질은 입자물리와 

천체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우주의 기원과 관련한 

아주 중요한 주제

<용어해설>

1) 중력렌즈 효과: 

질량이 무거운 천체 때문에, 무거운 천체 뒤에서 지구로 오던 빛이 휘는 현상. 프리츠 츠비키가 측정한 광도 질량값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온 이유는 암흑물질이 중력렌즈 효과를 일으켜 중간에서 오던 빛을 숨기거나 구부렸기 때문이다. MACHO도 이런 현상을 일으키긴 한다. 

2) 하드론: 

강한 핵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원자의 총체. 강입자라고도 한다. 

3) 광자: 

빛은 에너지(입자성)와 파동(파동성)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빛을 입자로 보았을 때, 광속으로 이동하는 빛의 입자를 광자라고 한다. 

4) 힉스 입자: 

물질에 질량을 부여한다고 알려진 소립자. 발견되기 전에는 ‘신의 입자’로 불리며 이론상으로만 논의됐으나, LHC가 입자가속기 실험을 통해 그 존재를 증명해냈다

 이광희 기자/lkh16@knu.ac.kr

자문

김홍주 교수(자연대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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