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1. 개교 70주년을 맞은 본교와 대학의 본질에 대해

2. 해외 대학과의 비교를 통한 새로운 방향 모색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전 세계를 삼켰다. 진리의 상아탑, 대학도 세계화와 그에 따른 무한경쟁체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개교 70주년을 맞아 본교를 비롯한 6개 대학의 교수들이 모여 신자유주의 속 대학에 대해 조사하고 토론한 내용을 기록했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대학의 효시인 독일 훔볼트대학부터 미국·중국·일본 등 해외 대학의 구조와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한국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지난 호에 실린 ‘기조발표: 대학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 요약본은 기자의 정리 과정에서 발표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이번 호에 발표자의 요약본을 게재합니다.

기조발표 : 대학의 본질과 시대적 소명

김석수 교수(인문대 철학)                             

'대학(大學)’은 그야말로 크게(大) 배움(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대학은 부분에 대한 앎을 넘어 전체(universitas)에 대한 앎에 이름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은 이론적으로는 현상적 앎을 넘어 근원적인 앎인 ‘진리’ 추구로, 실천적으로는 자기만의 옮음을 넘어 모두에게 옳음이 되는 ‘정의’ 실현으로 향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은 세계에 대한 지혜의 추구로 이어져야 한다. 실제로 서양의 근대 철학자 칸트도 대학은 “세계지혜(Weltweisheit)”, 즉 철학의 탐구로 향해 있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세계지혜”로서의 ‘철학’보다는 현상에 대한 앎이나 이를 활용하는 기술적 앎에 더 치중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대학의 이와 같은 상황은 오늘날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중세와 근대의 대학에서도 이런 상황은 부단히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학문 활동의 자율성 확립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 확립에도 어려움을 안겨주게 된다. 그래서 칸트도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학부간의 논쟁』에서 학문 활동의 자율성을 너무나 강조하였다. 그는 대학의 기초학부인 철학부는 현실 삶의 유용성에 참여하는 상급학부, 즉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와는 다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기초학부인 철학부는 세계지혜를 탐구하는 학문 본래의 정신에 충실해야 하며, 학문의 쓰임새에만 집중하는 유용성 추구를 넘어 인간이 지향하는 옳음의 가치를 제대로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통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철학부는 국가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 하며, 또한 유용성을 추구하는 상급학부에 대해서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철학부는 이들 학부가 제대로 학문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할 때 이를 엄정하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대학이 제대로 된 대학이라면 기초학문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서도 자율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이런 자율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이 시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면서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초학문들은 점차 무력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 기초학문에 근간이 되는 인문학은 존립마저도 어려울 지경이다. 정부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학 내의 인문학 연구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학자들도 성과적 분배 시스템의 압박 아래 교육보다는 연구에 몰입해야 할 지경이며, 학생들도 취업 불안에 시달려 교수들의 학문적 가르침에 귀 기울일 겨를이 없다. 이로 인해 학문 연구의 본령인 대학원도 점차 존재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특히, 순수 학문분야의 대학원들 중 일부 대학원은 이미 붕괴되었거나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날 글로벌 자본이 인터넷을 통해 더욱 빨리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대학의 이와 같은 어려움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물론 인간이 물건을 거래하며 먹고 살아야 하는 이상, 국가도 대학도 이런 글로벌 시장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의 학문 연구와 교육도 이런 시장과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대학도 학문 연구를 통해 지식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활동과 이를 현실에 활용하여 유용성을 추구하는 활동 사이의 조화를 잘 이루어내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대학 학문 활동은 이런 조화를 제대로 마련해오지 못했다. 우리의 대학은 한편에서는 우리의 빈곤한 현실로 인해 학문 내부에 침잠하기도 하였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아예 현실에 타협하거나 현실에 이끌려 학문을 도구화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경향은 서구의 학문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였던 수입학의 경우에는 더욱 더 심하였다. 더군다나 학문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지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우리에게는 현실의 빈곤이 학문의 빈곤을 낳기도 하고, 학문의 빈곤이 현실의 빈곤을 낳기도 하였다. 이런 악순환으로 인해 우리의 대학과 현실은 서로 겉도는 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도 자신들이 처해 있는 현실 문제에 대해서 대학이 어떤 답을 제시해주리라고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학문이 현실‘에서’ 나와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벗어나서도 안 된다. 학문은 어디까지나 현실과 ‘함께’ 해야 한다. 따라서 현실이 변하면 학문도 거기에 화답하여야 한다. 이 화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 방법도 새롭게 발전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와 교육 방식은 상당 부분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탈경계, 이른바 유목의 시대이다. 이런 시대가 안겨주는 현실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 학문이 답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연구방식, 교육방식이 요구된다. 그것이 이른바 학제적 연구이자 교육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와 교육은 단일 학과 중심이나 단일 전공 중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제적 연구는 학제적 교육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교육 역시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과의 과목들 중 적지 않은 과목들이 변화하는 현실에 부응하지 못하는 형태로 머물러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교과과정은 소수의 대학원 지망생을 위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 현장으로 나가려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사회의 대학의 과다 존재 이유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학을 나와야만 취직을 하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가 된다는 우리 사회의 통념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대학을 가야 하도록 만들었으며, 그래서 우리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대학이 과다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이와 같은 상황은 부모에게 교육비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대학은 학문탐구의 목적보다는 현실 속에서 서로가 인정받기 위해 필요로 하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였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도구적 성격을 지닌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젊은 청춘을 바쳐왔다.  

그렇지만 이는 국가적으로도 소모적일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과도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학문탐구와 기술연마를 엄격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대학 역시 이런 구분에 기초하여 학문연구대학과 기술연마학교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들 사이에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어느 길을 가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학문과 기술이 상생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기술이 권력이나 자본으로만 향할 경우 학문은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하며, 반대로 학문이 공허한 주장으로 흐를 때 기술은 이를 현실로 가져와 비판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 빅데이터가 작품을 쓰고, 로봇이 상담을 하는, 그래서 마침내 인간과 기계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제 대학의 학문 연구와 교육의 주체인 교수들도 단순히 더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는 자신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빅데이터나 알파고는 이미 우리의 개인지성이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한 앎의 소유자로 점차 성장해가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들 대학의 학문 연구와 교육도 알파고에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의 도래는 대학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변혁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이 다가오는 이런 현실에 대해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다면, 대학은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전자공학, 뇌과학, 신경과학이 산출하는 온라인의 세계, 인공지능의 세계가 또 다시 절대 권력을 지닌 존재로 출현할 경우, 우리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될 수도 있다. 몸이 사라지고, 이 몸이 관계하는 감각이 사라지고, 이 감각을 통해 상상하는 미감이 사라지는 날, 우리의 몸은 둔감해지거나 마비가 되어, 결국 이웃을 잃게 되고 ‘추상적 보편’에 이르고 말 것이다. 우리가 몸과 감각을 통해 서로 직접적으로 만나고,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공감하는, 그래서 상상력의 연대를 이루어낼 때 비로소 ‘추상적 보편’이 가하는 폭력을 극복할 수 있다. 대학의 학문 연구와 교육 역시 이런 방향에서 진행될 때, 비로소 대학은 대학다운 대학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오늘날 글로벌 자본과 인터넷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차별 구조, 이른바 중앙과 주변으로 가르는 폭력적 구조를 극복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수도권의 중심부 대학과 지방의 주변부 대학으로 차별화되고 있으며, 후자의 대학은 무력한 대학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이 주장하듯이, 구체성(개별성)이 없는 보편은 나쁜 보편으로서 보편주의의 폭력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이웃의 개인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오로지 천상의 절대자만을 사랑하는 상태가 전체주의를 불러들이는 경우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대학들이 중앙의 대학들에 지배받지 않기 위해서는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함께 연대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길은 지역의 전통 속에 내장되어 있는 특수성을 살리는 길이자, 이를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화하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이 걸어가야 할 ‘구체적 보편성’의 길이다. 우리는 이 길을 통해서 글로벌 자본이 지역들의 전통과 개성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잘못된 구조를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 길을 통해서 가상세계의 힘과 알파고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개인들을 잘못 지배하는 반인간적 경향도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진리와 정의를 확립하고, 이로부터 인간 자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마련하는 데 있다. 시장과 기업이 대학을 압도하는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고 있는 개인들의 고립과 우울, 그리고 자살 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몸을 가진 개인들이 서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구체적으로 소통하고 보편적으로 공감하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이 소통과 공감의 길은 시장을 무조건 부정하기보다는 이를 인간적 시장으로 전환하는 길이며, 또한 온라인 세계나 알파고를 무조건 거부하기보다는 이들을 인간적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길이다. 21세기 대학은 이 과제를 반드시 수행해내야 한다.

제1세션 : 근대 대학 이념의 원형-훔볼트대학을 중심으로

임상우 교수(서강대 사학)

'베를린 대학’ 또는 ‘훔볼트 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dt-Universitat zu Berlin, 이하 훔볼트 대학)은 19세기 이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 대학의 모델이 돼, “모든 근대 대학의 어머니”로 불리고 있다.

중세시대의 대학은 신학을 가르치려는 목적을 최우선으로 뒀고, 그 도구적 보조수단으로서 인문소양을 함양하기 위해 교육만을 한정적 목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훔볼트 대학은 창립시점부터 의도적으로 대학의 목적과 기능을 교육과 함께 ‘연구’를 병행하는 데 뒀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는 칸트의 관념론점 철학과 신휴머니즘적 이상 아래서 훔볼트 대학의 창립지도자들은 세속주의의 원칙을 대학의 지도이념으로 삼았다. 즉, 훔볼트 대학은 황제나 교황의 후원이나 권위 아래에서 세워지지 않은 유럽 최초의 세속적 대학이었으며, 창립자 훔볼트, 피히테(J.G.Fichte) 등에 의해 결정된 새로운 대학의 이념은 두 개의 지도 원리, ‘학문적 탐구(Wissenschaft)와 교양의 함양(Bildung)’로 요약됐다. 이로써 오늘날 신자유주의 융성으로 대학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축소돼가고 있는 추세 속에서, 아직도 양보할 수 없는 대학의 이상은 ‘학문의 자유’와 ‘연구와 교육의 산실’인 것이다. 이 모든 원리가 훔볼트의 교육 이상에서 비롯됐고, 그 원리가 아직까지는 존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훔볼트의 모토는 라틴어로 ‘Universitas litterarum’인데 영어로는 ‘The Entitity of Sciences’이고 ‘학문의 실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창립자 빌헬름 폰 훔볼트는 인문학, 낭만주의 문학, 민속학 등을 중시해 각 분야별로 당대 최고 학자들을 영입했고, 창립 시 학부 구성은 법학·신학·의학·철학 등 중세 전통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알렉산더(Alexander von Humboldt)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자연과학 분야는 물론, 역사학 등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학문분야들을 파격적으로 신설했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대학 부속 병원, 농업/원예대학, 수의학대학이 등장했다. 또한 이 시기에 베를린에 산재해 있던 각종 직업학교 및 대학 학부들을 편입해 종합대학 시스템을 구축하며 종합대학의 면모를 차근차근 갖춰 나갔다. 훔볼트 대학은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어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며, 그림형제와 헤겔, 마르크스, 랑케, 쇼펜하우어 등 기라성 같은 지성들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학이 가진 부정적 의미도 크다. 훔볼트 대학은 독일의 제국주의적 맥락에서 볼 때 명백히 독일 과학과 함께 국가지상주의를 옹호했던 ‘독일 국가이성의 산실’로서 역할을 했다. 또한 나치 집권 시절, 나치들은 사회통합을 명분으로 대학 도서관의 장서 중 2만여 권을 불태웠다. 이어 250명의 유대인 교수 및 직원들이 축출됐고, 나치 통치에 저항하던 유대인이 아닌 많은 지식인들 또한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험난한 역사를 극복한 훔볼트 대학은 개편을 통해 미래형 대학으로 다시 발돋움하고 있다. 도서관 및 박물관 겸 개방형 대중교육의 장소를 짓는 대규모 혁신적 문화 프로젝트 ‘훔볼트포룸 기획(Humboldtforum Project)’ 등이 국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경제적으로 번성하고 있는 독일인들과 그들을 둘러싼 유럽인들은 또 한 번 유럽과 세계에 새로운 문화적 이상과 과학적 혁신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며 훔볼트 대학을 바라보고 있다.

제2세션 : 지구적 자본주의와 대학개혁의 이념-하버드대를 중심으로

윤지관 교수(덕성여대 영어영문, 한국대학학회장)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교육학자인 헨리 지루는 현대 미국의 대학들이 “가속화하고 있는 대학의 기업화와 군대조직화, 학문적 자유의 억압, 비정규직 교수의 비중 증가, 배부른 경영계층의 증가, 그리고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소비자이고 교수는 자격증이나 일터의 기술 같은 팔아먹을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부터 대두한 신자유주의와 아울러 지구화가 본격화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대학 또한 효율과 생산성을 기준으로 한 성과중심의 경쟁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을 신자유주의에 종속된 사업체로 단정 짓는 시각은 미국 대학이 가지는 어떤 잠재력이나 역동성을 묵살하는 폐해가 있다. 대개 미국대학이 세계적 대학의 모델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미국 대학들 특유의 ‘경쟁 시스템’이 신자유주의의 에토스(Ethos, 관습적 특성)에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쟁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의 물음에 답하는 일이다.

하버드 대학은 식민지시대에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대학으로, 그 창립에서부터 이후 발전과정까지 미국사의 전개와 긴밀하게 맺어져, 변화의 국면들에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혁신을 거듭해왔다.

1876~1903년 사이 하버드의 찰스 엘리엇 총장은 과거의 전통적인 칼리지(College)를 연구대학(Research University)으로 전환시키며, 과목 선택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또한 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제대군인원호법(퇴역군인들에게 교육, 주택, 보험, 의료 및 직업훈련의 기회를 제공) 정책에 따라 대학이 양적으로 팽창하자 하버드는 ‘능력주의’를 대학의 이념으로 내세우며 개혁에 돌입했다. 196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폭발하는 학생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의 흐름에 따라 평등주의에 대한 당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 인종적·성적·계급적 다양성을 확보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미국 대학들이 과거와 달리 공적인 재원보다 사적 재원에 더 의존하게 되고 영리대학이 확산되는 등 시장중심으로 변모하는 양상도 있지만, 동시에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고 기초학문을 지원하고 인문교육을 강화함으로써 대학 본연의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흐름이 공존한다. 하버드는 보유자산을 통한 재원이 5조에 가까운 전체 예산의 38%에 달할 정도로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다. 동시에 이 대학은 2000년대 학생과 교수가 함께 논의에 참여해 지구시대의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교양교육을 개편했다. 학문을 삶과 연계시켜 이해하고 그것이 실제 삶에 작용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 즉 근대 대학의 이념이라 할 ‘빌둥(Bildung, 교양)’의 기획이 관철된 것이다.

하버드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자율적인 대학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그 막강한 자본력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자본력이 활용되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시장성에 매몰되지 않고 진리 추구의 목적 하에 연구기능을 장려하고 대학 본래의 기능에 기여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일컬어지는 하버드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버드의 성취가, 더 넓게는 미국 연구대학들의 성취가 유럽대학에는 부족한 경쟁시스템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분석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경쟁시스템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려면 대학 내부에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버드는 지구화 시대 패권국가의 대표적인 대학으로서의 위세를 누리고 있고 그만큼 세계체제를 지탱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거기에는 단순히 극복대상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역동성이 있다. 인문적인 전통을 보전하면서 비판적 사유를 훈련시키는 대학 본연의 힘이 이 글로벌한 대학 속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제3세션 : 사회주의 시장경제 속의 북경대학

이영옥 교수(전남대 역사교육)

중국의 대학은 100여 년 동안 세계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양적 성장을 이뤘다. 1909년의 인구를 4억, 2015년의 인구를 15억으로 본다면, 인구 1만여 명에 한 명도 안 되던 대학생 수가 약 24명에 한 명꼴로 늘어났다. 한편 한국의 지역 국립대는 위상의 하락, 학생들의 변화, 재정여건의 악화 등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대학들이 변화하고 발전해온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지역 국립대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과 중국의 대학이 짧은 시간에 급속하게 변모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 혹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대학의 변화는 급속한 성장과 해결과제를 남겼다.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중앙정부의 지원은 줄어들었고, 대학은 스스로 재정의 일부를 마련하기 위해 직접 기업을 설립했다. 북경대학은 북대방정(北大方正) 등의 기업지분을 통해 대학의 정부지원 연구비의 비중을 감소시켰고, 매년 4.4억 위안(약791억 원)의 재정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1980년대 이후 중국정부는 대학의 질적 수준 향상을 목표로 211공정·985공정·2011계획 등을 입안했다. 최종적으로 북경대학의 경우 학과의 통폐합을 단행하고 연구력을 향상시켰다. 교원 사이에도 성과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성과급을 지급하고 승진연한을 둠으로써 연차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다르게 대우하는 경쟁방식이 도입됐다. 이러한 변화는 현실에 안주했던 과거 북경대학의 분위기를 바꿨고 활력을 줬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세계적인 대학 육성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재정적 지원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측면이 있다. 대학의 책임자들은 부족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중국의 대학에서 자율은 국가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북경대학에는 기층위원회인 ‘중국공산당 북경대학위원회’가 존재하는데, 총장 이하 행정기구의 구성원들은 당위원회 서기의 지휘와 감독 아래 일을 처리해야만 한다. 결국 북경대학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것은 행정기구의 구성원이 아니라 당위원회의 서기를 중심으로 한 당 조직의 구성원인 것이다. 과거에 비해 정부의 지원은 줄었지만 정부가 여전히 대학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형태다. 북경대학의 운영에서 자율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대학의 형식적인 대표와 실질적인 대표 사이의 불일치가 해소돼야 한다.

외부자의 입장에서 북경대학의 방향에 특정한 방향제시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북경대학이 대학의 규모나 연구·교육 수준뿐만 아니라 중국의 중심 대학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청나라 말과 중화민국 초기 북경대학은 관직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곳이었다. 신문화 운동과 5·4운동을 거치면서 북경대학은 시대를 선도하는 곳이 됐다. 대학의 가치는 사회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나가는 데 있다. 대학이 사회·시대에 끌려가기 시작하면 그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제4세션 : 대학의 기능 전환과 ‘도쿄대학 비전 2020’

조관자 교수(서울대 일본연구소)

한국만큼 급속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대학도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도해 왔다. 소자고령화사회와 재정적자에 대응한 고이즈미 정권의 개혁정책 하에서 일본의 국립대학 수는 2002년 101개 대학의 통합을 추진해 현재 86개 대학으로 줄었다. 민주당 정권에서도 대학에 대한 예산 삭감이 이뤄졌지만 아베 정권 하에서 교육개혁은 제도적으로 한층 가속화되고 있다.

2014년 ‘학교 교육법 및 국립대학 법인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은 학장(총장)의 권한 강화를 명문화했다. 대학개혁을 저지할 수 있는 ‘교육위원회’의 기능을 축소시키고, 학장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을 추진한 것이다. 이어 2015년 6월 문부과학성의 통지 ‘국립대학법인 등의 조직 및 업무 전반의 재검토에 대하여’에는 “문학부나 경제학부 등 인문사회과학계 학부나 대학원에, 폐지 또는 사회 적용성이 높은 분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이로써 지방국공립대학의 인문학부 폐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대학 및 인문학의 위기론을 도쿄대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문부과학성의 국립대학 보조금 지원이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도쿄대학의 리버럴 아트=교양 교육의 전통은 견고하며, 법인화라는 대학의 변화 압박에 직면해 도쿄대학 구성원 스스로가 합리적 대응을 모색했다. 제27대 도쿄대학 사사키 다케시 총장(2001.04~2004.03) 시기, 대학 구성원이 법인화 이후에도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율적 혁신을 추구할 수 있도록 대학의 이념을 재확립하고 자치를 위한 운영지침을 상세하게 제시한 ‘도쿄대학헌장’이 제정됐다. 사사키는 “법인화는 틀 짜기의 문제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수단의 문제”라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법인화를 ‘잘 쓰는 것’에 필요한 냉정한 현실주의입니다. 물론, 법인화를 ‘잘 쓰는 것’은 학문연구와 교육의 충실이란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총장으로서 법인화의 의미, 동향, 문제점을 교직원·학생·시민들에게 공개하고 그 해결과 운영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조직적 결의를 수렴, 확산시켰다. 또한 법인화 이후 도쿄대학의 역대 총장들은 변화하는 일본의 현실을 직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학내외의 소통에 애쓴 흔적을 남기고 있는데, 그 성과와 평가는 총장의 개혁 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제29대 총장 하마다 준이치는 취임사에서 ‘세계를 짊어질 지의 거점’을 기본 정책이념으로 제시하면서 학생들에게 개인적 성취나 글로벌 차원의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보다 “터프”해지기를 권했다. ‘강한 조직’과 ‘강한 개인’을 요구하는 총장의 발언은, ‘사토리 세대’나 ‘초식남’이 유행어로 통하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2015년에 취임한 현 총장 고노카미 마코토는 “도쿄대학의 기능 전환의 이념과 구체적 방침”을 제시한 ‘도쿄대학 비전 2020’을 발표했다. 2020의 기본이념은 ‘탁월성(수월성)과 다양성의 상호 연환’에 있다. 모든 학문분야 간 연계를 강조해 서로 자극하고 존중하도록 ‘탁월성’과 ‘다양성’이란 개념을 특화시키고, 그 결과 지식의 협력과 창조를 통한 새로운 학술의 세계적 창출을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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