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뉴스를 튼다. 어떤 현상에 대한 과학자의 이야기와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과학자의 이야기는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거기서 과학이 모든 것에 답을 줄 수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이어 ‘과학적’인 것은 좋고, ‘비과학적’인 것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과학은 우리 삶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삶의 중요한 요소인 과학은 도구로써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기에 심층적 고민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하나의 현상에 대한 과학적 논쟁이 많았다. 그렇지만 현재는 더 이상 논쟁할 거리도 없어 보인다. 학교 수업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부분보다는 기술적 부분에 집중해 가르친다. 그러다보니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고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나 역시 과학을 증명된 것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실험에는 답이 정해져 있었고 문제풀이만 잘하면 과학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흔히 과학적 지식을 관측 또는 실험을 통해 얻은 사실로 증명된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적 지식이 증명된 것이라면 한 번 만들어지면 없어지거나 바뀌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만 확실하다고 평가 받던 이론들도 폐기되기도 한다. 과학은 증명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물이 끓는 온도는 100℃라고 배우지만 100℃가 무엇인지, 온도를 재는 온도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런 것들까지 다 알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몰라도 상관없는 쓸모없는 고민들로 여겨진다.위의 질문들처럼 과학적 질문임에도 과학자들의 관심범위를 벗어난 것들을 영국 케임브릿지대의 장하석 석좌교수는 그의 저서 「온도계의 철학」에서 ‘상보적 과학’이라 했다. 상보적 과학은 과학 연구에서 빠진 부분을 보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상보적 과학의 영역을 알지 못해도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또한 전문적 과학계에서는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그리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 과정에서 답할 수 없는 문제들, 즉 상보적 과학의 문제들은 시간, 인력 등의 제약으로 어쩔 수 없이 생략된다. 쓸모없는 것을 생각하기에 우리는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다. 그렇지만 생략된 문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결핍을 보여준다. 전문과학계에서 상보적 과학까지 연구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우리 같은 학생이나 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상보적 과학에 대해서도 접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과 상보적 과학에 대한 논의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런 고민들은 전문 과학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수 있고 삶 속 깊숙이 들어온 과학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도 정답일까?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한 순간에 ‘잘못된’ 것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쓸모없는 고민, 상보적 과학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다.

이슬기기획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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