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의 ‘상’을 나타내고 조선 세종 때 경상도 감영이 세워질 만큼 상주는 옛날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고을이었다. 그 기반에는 너른 농지가 있었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상주에 들어서니 가장 먼저 추수를 앞둔 황금빛 논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중충했던 날씨에도 돋보였던 그 황금빛은 이제 가을에 들어섰음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 논들의 젖줄인 낙동강 최고의 절경을 보기 위해 한두 시간에 한 대 꼴인 경천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때의 경천대, 지금의 경천대경천대의 옛 이름 자천대의 의미가 ‘하늘이 스스로 만든 아름다운 곳’일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경천대의 이미지는 낙동강의 아름다운 경치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추억 속 경천대는 조금 다른 곳이다. 경천대의 입구에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그것은 인공폭포와 그 옆의 작은 놀이기구로 이루어진 경천랜드였다. 이곳은 내가 첫 걸음마를 뗐던 곳이고 어린이날마다 들렀던 우리 가족의 명소였다. 그 추억의 증거는 인공폭포 앞에서 찍은 어린 나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놀이기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떠오르는 옛날 기억에 문득문득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의 필름을 돌려봐도 경천대의 경치는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경천대의 급한 산길을 오르기에, 경치를 즐기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젠 충분히 즐길 만한 나이가 되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경천대 어린 시절의 경천대가 ‘봄, 활기참’이었다면 그날 경천대는 ‘가을, 한적함’이었다. 경천대에 있는 내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단 한 명의 사람만 보았을 뿐 다른 관광객을 전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한적함은 경천대를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전망대를 오르기 위한 산행에서 온갖 새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도토리나 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하나하나가 다 들릴 만큼 산이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등산길은 눈치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해주었고 맘껏 뛰놀게 해주었다. 마침내 전망대에 도착하자 멋진 풍광이 보였다. 멋진 기암절벽과 땅을 휘감는 강줄기는 정신없이 올라온 산행을 쉬게 해주려는 듯 경치를 찬찬히 둘러보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더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상주에 들어올 때 보았던 황금빛 논과 강물의 조화였다. 휘어지는 강물 양쪽으로 펼쳐진 논들은 인간의 생산물과 자연이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어렵게 상주캠으로경치를 즐기고 난 후 발빠르게 드라마 ‘상도’ 세트장으로 향했다.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카누를 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생해서 도착한 장소에는 오늘은 운영을 안 한다는 팻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저녁을 먹기 위해 경천대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실망을 하게 됐다. 식당 할머니의 “평일에는 단체 손님 없으면 반찬을 안 만들어요”라며 “물이나 한 잔 마시고 가소”라는 얘기에 목만 축인 채 돌아서야 했다. 해가 뉘역뉘역 질 때 경천대의 출구로 다시 올 수 있었지만 이미 버스가 끊인 상태였고 2만원이라는 거금을 택시에 지불하고서야 상주캠퍼스로 갈 수 있었다. 상주캠퍼스 친구를 만나 늦은 저녁을 먹고 학생회관의 신문사 방에 들어가서야 고된 상주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 경천대에서 내려다 본 낙동강의 전경

 ▲ 카누를 코 앞에 두고, 애석한 출입금지 팻말

글·사진: 김민호 기자/kmh16@knu.ac.kr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