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간, 공동체’ 예술 네트워크, 썬데이페이퍼

일요신문(Sunday paper)은 1791년 영국에서 처음 발행됐다. 당시 영국인에게 일요일은 종교적 관습과 영업 금지 법규로 인한 ‘일하지 않는 날’이었다. 때문에 일요신문의 존재는 많은 종교적 저항에 부딪혔다. “일요신문에는 일간지보다 가십, 스포츠, 정치, 경제 등의 많은 내용이 섞여있다. 그룹의 이름 ‘썬데이페이퍼(Sunday paper)’에 그러한 일요신문의 수용력, 기존 체제에 반했던 저항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대구 미술가 그룹 ‘썬데이페이퍼’의 리더 최성규 작가(48)가 말했다.

2010년 최 작가를 포함해 4명의 미술가들은 ‘썬데이페이퍼’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의 주제는 대중화·상업화된 예술에 대한 비판의식이었다. 이후 이를 지속해 나갈 그룹 ‘썬데이퍼이퍼’가 만들어졌고, 대구와 경북지역의 미술가들이 모여 전시와 세미나 등을 열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7년간 활동을 지속해 온 그룹이지만 오는 2017년에는 해체될 예정이다. 최 작가는 “그룹이 권력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8년이라는 한시적인 시간을 정해 놓고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또한 고정멤버를 두지 않고, 전시 주제에 제한이 없다. 작가들이 모여 1년간의 전시 일정을 정하고, 주제를 상의해 출품할 작가를 선정한다.

썬데이페이퍼는 총 세 개의 전시공간을 두고 있다. 대구 삼덕동의 ‘아트클럽 삼덕’과 경산 ‘보물섬’, 영천 ‘거인’이다. ‘아트클럽 삼덕’은 과거 독립운동가 신재모 선생의 집으로, 선생의 증손자 신명준 작가가 썬데이페이퍼에 제의하면서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세 공간의 운영 비용은 후원금이나 기타 제작물에서 나오는 돈으로 충당된다. 이 세 곳의 전시공간에서는 지난 8월 2일~14일 썬데이페이퍼의 주최로, 지역 청년 예술가 33명의 작품을 내건 ‘청년미술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했다. 최 작가는 “젊은 작가들이 대학을 나오면 작업실을 구하기 힘들다. 졸업해서 2, 3년은 어디에 전시를 하기도 어렵다. 썬데이페이퍼는 이런 청년 작가들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전시 기회를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룹 작가들의 연령대는 24세에서 55세까지 폭이 넓고, 청년 작가들이 많은 편이다. 작가들은 자체적으로 전시 팸플릿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작가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고 전시공간을 꾸미기까지 한다. 최 작가는 “그룹에서 작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 많다보니 1년을 버티는 것도 힘들 수 있다”며 “그럼에도 함께 전시를 준비하며 생기는 유대감이 왜 중요한지 이해 못하는 경우에는, 그룹 전시 준비할 기간에 차라리 개인 작업이나 다른 걸 하겠다며 그룹을 나가는 작가도 있다”고 말했다. 

썬데이페이퍼는 ‘유대’와 ‘자립’, 그리고 ‘지역’을 중요하게 여긴다. 최 작가는 “대구의 미술계는 굉장히 크지만 서울이나 부산에 비해 작가 개인의 자립성이 약하다. 이런 자립성이 형성되지 않으면 자발적이고 창조적인 작품 활동이 힘들다”고 했다. “썬데이페이퍼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실험이다. ‘전시공간의 임대료가 백만 원이면, 어떻게 백만 원을 모을 수 있을까, 몇 년 동안 계속 지탱할 수 있을까? 해보는 거지.’ 사람들이 모여서 뜻을 맞추고 같이 일하면 뭔가 찾아지지 않을까?”

썬데이페이퍼는 내년에 활동을 종료할 예정이지만 전시공간은 계속 운영될 것이다. 전시는 매달 진행될 예정이며, 모든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썬데이페이퍼의 청년 미술가들

아래는 썬데이페이퍼의 지역 청년 미술가, 신준민(31세, 이하 ‘신’), 권효정(본교 예술대 미술 10, 이하 ‘권’), 신명준(영남대학원 트랜스아트 16, 이하 ‘명’), 하주은(대구대 현대미술 12, 이하 ‘하’) 작가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에서의 예술, 현실적 문제, 대중과의 거리, 예술가에 대한 얘기를 나눈 내용이다●

지방에서의 예술

권: 고향이기도 하고, 지방대를 나왔기 때문에 지방에서 미술을 시작을 하게 됐다. 대개 예술을 하려면 인서울(In-Seoul)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은 여건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기반을 스스로 더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서울에 간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여기보다 경쟁이 치열하면 치열했지 덜하지는 않다. 명문대에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 지방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서울이든 지역이든 힘든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 미술이 아닌 다른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활동하면서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술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게 이점이 되진 않는다. 분명 지방과 서울은 인프라나 지원에서 차이가 나긴 하지만, 작가로 살아남는 데 장소가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적 문제

신: 30대에 들어서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으면 계속 작품을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작품 판매로는 생활비가 나오지 않는다. 백화점에서 7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름은 일하고 보름은 쉬거나 작업을 했다. 바쁠 때는 밤낮 시간을 쪼개서 일과 작업을 했다. 그렇게 많이 벌어봐야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다. 그 중에는 월세, 생활비, 재료비가 고정적으로 들어간다. 올해는 대학 시간강사로 일한다. 

권: 졸업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박스테이크 식당에서도 일하고 있다. 또 올해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기업 파견 사업에 뽑혀 일하고 있다. 한 달에 30시간 정도 하면 재단에서 월급이 나온다.

시의 지원은 사실 한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대구에 6개 정도 미술대가 있고 배출되는 미술가 수는 많은데, 스튜디오나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그들 중 일부만 수용할 수 있다.

하: 사회적으로 예술가들을 뒷받침할 제도나 지원이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다. 현실이 너무 매서우니까 그만 둔다. 물론 최근 예술가 지원 사업이 차차 늘어가고 있긴 하지만, 실감하지는 못하겠다. 또 여성 작가로서 남는 건 극도로 힘들다. 작가로 남아있는 사람은 남자가 많다

대중과의 거리

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미술계의 문턱을 높게 잡아서 대중들이 들어가기 무섭게 만드는 것도 있다. 사람들이 서점 가듯이 쉽게 전시장에 들락날락 했으면 좋겠다. 작가들이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고 관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

권: 페어 같은 곳을 가면 팔리는 작품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작품을 구매하는 층이 4~50대 여성들인데, 꽃 같은 것을 그리면 팔 수도 있다. 

하: 작가들이 꽃을 못 그려서 안 그리는 게 아니다. 그건 내 작업이 아니니까 선택해서 안 그리는 것이다. 그런데 상업성을 지양하고 작품성만 추구하며, 젊은 작가가 자기 담론이나 생각으로 홀로 서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예술가

신: 작가들마다 그림이 다른 이유가, 각자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그 시선에 따라 똑같은 물감을 쓰는데도 세기, 속도, 물감 양 등 작품이 다 다르게 나온다. 작가만의 언어, 그것을 조형언어라고 하는데, 나만의 조형언어를 계속 찾고 있는 중이다.

하: 미술 없는 인생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만약에 ‘미술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면 나는 그냥 사회의 부적응자고, 아무 능력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나랑 미술이 만났을 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고 나에게 집중한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하면, 초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림을 보는 사람의 심장에 활을 겨냥하고 그 심장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의 늘 일관된 목표였다. 그 사람 머리통을 프라이팬으로 ‘쾅’ 때리는 작가가 되고 싶다.

권: 졸업할 때 생각했다. 좋은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업은 ‘마지막까지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할 수 있는 걸 해도, 언제까지나 꾸준히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작가’다. 꾸준히 마지막까지 했을 때 그 작가의 삶 전체를 보면,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마지막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한다.

명: ‘지금의 작업이 미래를 말해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특별한 물건이 있으면 그걸 생각해놓고 미래에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공간을 맞닥뜨려도 용기를 잃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

③ light of GIANT, 3000x3000x2800mm, 혼합매체, 2016, 권효정 작. 작업 중 사진. 분수는 항상 사람들이 사는 광장 한가운데 있다. 권 작가는 원래 쓰이지 않는 오브제를 결합해서 분수처럼 보이게 만들고, ‘청년미술페스티벌’에선 이것을 등대의 이미지로 재조합했다.

② 신준민 작가와 그의 지하 작업실. 9월 중에 전시가 예정돼 있어 한창 작업 중이었다. 물감 튜브, 캔버스, 붓 등이 바닥부터 벽까지 공간을 가득 메운다.

 Cell_Num1 분노, Mixed media, 현장설치. 2016, 하주은 작. 작업 중 사진. ‘청년미술페스티벌’ 당시 ‘거인’ 마사의 벽에 그대로 작업한 작품이다. ‘Cell_Num2 피부병’도 함께 설치됐다. 하 작가는 “남들과는 다른 나의 개성을 유지하며 여기까지 버텨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픔과 슬픔이 느껴졌으면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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