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프리드리히 에버트 한국재단의 후원으로 한독경상학회(Koreanisch-Deutsche Gesellschaft fur Wirtschaftwissenschaften)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독일의 경제정책: 사회정책으로서의 독일 경제정책(Soziale Marktwirtschaft und Wirtschaftpolitik in Deutschland: Wirtschaftspolitik als Gesellschaftspolitik)’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한독경상학회는 독일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수학한 학자들이 한국에 돌아와 1978년에 설립한 민간 학술단체이다. 필자는 독일의 안정화정책을 한국에 소개하고, 통일 이후 독일 연방은행(Bundesbank)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재정정책의 유효성과 그 평가에 대한 내용을 논의하였다. 실제로 일반 독자들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용어에 대해 모순어법(oxymoron)이라고 의아해 한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에 따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분법적 사고에 사로잡힌 한국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보면 더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용어에서 중점 포인트는 ‘사회’에 놓여있으며, 여기서 사회는 사회주의의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Soziale Gerechtigkeit’)를 지칭한다. 

2차 세계대전의 패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Wirtschaftswunder)’을 이끌었던 독일의 경제적 성공에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원칙이 그 밑바탕에 놓여있다. 경제 행위자들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향하되, 시장실패나 독과점 등 시장의 자동조절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정부의 개입을 정당화시킨다. 특히 전후 재건 과정에서 독일 정부는 폭넓은 사회정책의 집행을 허용하였으며, 이를 통해 형평성과 효율성의 조화와 높은 생산성, 고도 경제성장을 달성하였다. 시장경제의 조정과정은 경제 재건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활용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성공으로 인한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경제적 자유 달성과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명시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이론이며, 그 밑바탕에는 경제 질서의 제도적 추구에 대한 철학적 사고가 깔려 있다. 이 이론의 창시자로는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 알프레드 뮐러-아르막(Alfred Muller-Armack), 루드비히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독일의 신자유주의학파의 학자들로 간주되었고, 이들의 학풍은 미국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의 고전학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후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는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의 합리적 기대가설과 접목되면서 새고전학파 경제학(New Classical Economics)이라는 주류 거시경제학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는 시장경제의 질서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경험해왔지만, 그 이면에는 시장실패, 금융위기, 소득불평등의 확대 등의 부작용이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서 현대의 경제학은 시장규제와 정책개입이라는 정부의 역할을 정당화시키고 있으며, 공공재 공급과 함께 시장경제의 비효율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시장개입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바람직하고 어떠한 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시장경제의 밑바탕에는 자유시장경제에 강조하는 경쟁의 원칙이 깔려 있으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도구의 유연성을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의 자유방임(laissez-faire)과는 다르게 시장실패 등 왜곡이 존재할 경우에는 정부 정책을 통해 시장개입을 적극적으로 허용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중요시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시장경제는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시장경제의 사유재산권과 계약의 자유를 존중한다. 하지만 질서자유주의는 경제활동의 자유만으로는 시장기능의 올바른 작동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견해를 지지하며, 경제영역에서 권력의 사유화에 따른 담합이나 독과점의 통제가 필연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경제정책은 법률적 과정을 통해 원칙에 따라 집행되어야 하며, 이는 정책결정자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사회적 시장경제는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준칙주의에 기초한 경제정책의 집행을 강조하며, 동시에 시장 개입의 최소화를 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경제정책은 자유경쟁을 방지하는 카르텔 설립과 이익집단의 경제지대 추구를 방지하면서 시장실패의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그 목표로 삼고 있다. 특히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서 독립성의 확보는 정책의 성공적 실행을 담보하는 데 중요한 제도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들은 경제성장을 위해 물가안정, 높은 고용수준, 그리고 국제수지의 균형을 대내·외 정책목표로 명시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해집단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정책의사결정 과정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중앙은행은 현실 경제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내생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경제정책은 간접적으로 현실 정치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서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지만,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정책결정자들은 정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임용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특히 정책 결정의 투명성 제고와 공공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어떠한 경제정책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준칙주의(rule)와 재량주의(discretion)라는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경제정책에서 준칙주의는 통화량의 변화가 투자촉진과 자본 이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통화주의자의 관점을 지지한다. 여기서 경제주체들의 합리성은 중앙은행의 정책대응과 경제의 변화에 대해 학습 가능성을 가정하고 있으며, 통화주의자들은 정책 변화에 대해 경제주체가 적극적으로 대처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통화량의 단기적 변화는 결과적으로 물가상승만을 유발시킬 뿐 유효수요 확대에 대한 효과는 미미하다고 파악하였다. 이에 따라 통화량은 국민소득성장률의 일정한 비율로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준칙에 따라서 통화량이 조정될 때 정책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견해를 지지한다(‘k% 준칙’).

반면 경제정책에서 재량주의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시장에 대한 민간의 경제참여자보다 명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특히 유효수요의 축소가 경기 불황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케인즈학파의 견해를 지지하며, 총수요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세밀한 조정을 할 것을 요구한다. 경제정책의 경기안정화 효과는 정책결정자의 합리적인 의사결정뿐 아니라 민간의 경제주체가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에 대해 어떠한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는가에도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민간과 정부가 얼마만큼 정보의 우위를 가지고 경제 변화에 대처하는지가 통화정책 집행에서 성공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세계경제의 불황의 확산으로 통합경제와 세계화에 대한 좋지 않은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 수요측면의 어려움은 영국의 EU 탈퇴(‘BREXIT’), 난민문제, 극우정당의 득세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공급측면에서 ICT 융합기술과 인공지능의 기술발전에 따라 산업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지만, 변화의 시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산업구조의 변화와 비정규직의 확산 등 노동시장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에 대한 정책적 대응방법과 해결책은 경제철학의 문제로까지 귀결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시장경제의 발전이 더딘 주요 원인으로 미약한 사회적 자본과 정부정책의 불투명성, 일관된 철학의 부재 등을 지적해볼 수 있다. 최근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교수가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주창한 공동체주의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었다. 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사회 신뢰자본의 형성은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강조하는 제도적 기반과 원칙의 확립은 현대 시장경제 기능의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해서 뒷받침되어야 할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의 불황과 기술발전의 변혁기에 대비하고, 이에 따른 경제정책과 시장제도의 변화방향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장태석 교수 (경상대 경제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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