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3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51.9 퍼센트의 영국민이 찬성했다. 같은 달 16일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조 콕스 의원이 피살되는 등 투표 과정에서 영국 사회는 이미 심각한 내분과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전조 현상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에 불거졌다.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대다수의 영국민들은 설령 국민투표를 거친다고 할지라도 영국의 EU 탈퇴를 반대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과는 달리 영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브렉시트에 찬성한다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심지어 투표한 지 열흘 만에 4백만 명 이상의 영국민이 브렉시트의 재투표를 호소하는 청원사이트에 서명하였다. 

브렉시트 결과에 대해 프랑스와 독일을 위시한 EU 회원국과 국제사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영국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강한 질타를 가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 비판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유럽지역통합으로 대표되는 보편주의를 거부하고 영국이 국가중심주의로 회귀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 특유의 고립주의 혹은 유럽회의주의가 이번 투표 과정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실 영국은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유로존과 사람의 완전한 자유이동을 보장하는 셍겐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등 유럽의 확대와 심화 과정에서 ‘이단아’ 혹은 ‘반항아’의 모습을 보여 왔다. 이 점에서 보면, 영국의 브렉시트는 무책임하고, 또 그에 대한 비판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영국민이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한다. 이 이유 중 국내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유럽통합의 수혜자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이 문제는, 소위 ‘유럽역내단일시장의 접근권과 통합 효과’의 수혜자가 누구인가에 관한 것이다. ‘유럽통합의 효과’에 대한 수혜의 정도는 EU 회원국별로, 또 세대·빈부·교육의 격차에 따라 달리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노년층과 사회적 약자층은 영국의 EU 탈퇴를 찬성한 반면, 청년층과 장년층, 특히 그 중에서도 지식인과 부유층 등 기득권층은 영국의 EU 잔류를 희망하였다. 후자들은 유럽의 시장통합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의 최대 수혜자였으나 전자들은 유럽통합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통합의 효과는 소수 기득권층에 집중되고, 빈곤은 대물림되고 있는 현실에서 영국의 사회적 약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처한 현실 상황이 개선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그들은 28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거대한 단일유럽보다는 영국이란 단일국가체제가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 그 내면의 의사가 브렉시트로 나타난 것이다. 화려한 미래로 포장된 희망은 어느 사회에서나 약자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고문인 셈이다.  

사실 브렉시트는 캐머런 전 총리의 공약 사항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민은 국민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했다. ‘정치인’ 캐머런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주권자’ 국민은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격언이 있다. ‘약속 준수’는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근간이자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그런데 영국의 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히려 정치인 캐머런이 자신의 공약을 지킴으로써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니 이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약속’에 기반한 실체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이 전제되어야 한다. 먼저, 자신의 공약인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브렉시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설명했어야 한다. 또한 브렉시트의 찬반 결과로 인하여 영국과 EU, 그리고 국제사회에 미칠 긍정적·부정적 영향에 대한 예측을 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비를 해야 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영국 정부의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브렉시트로 인하여 초래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에 대한 합리적 대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EU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국제사회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지위와 위상에 비춰보아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비전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어떠한 구체적 정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우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브렉시트로 인한 사회적 혼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어느 이민자의 말에는 영국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고민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어떤 입장에서 보든, 또 어떤 항변을 하든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은 멍청한 짓을 했다. 영국은 유죄다! 

채형복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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