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문화’라고 하면 흔히들 무엇이 생각나나요? 당신은 현재 어떤 대학가 문화를 누리고 있나요? 자, 우리학교에서 대학가라고 칭할 수 있는 곳을 살펴봅시다. 북적북적 시내 같은 북문, 공원이 있어 봄날엔 핫플레이스(Hot-place)가 되는 정문, 경상대생과 사회대생들의 아지트인 동문. 그곳에서 즐길 수 있는 술, 밥, 친구…. 그에 비해 서문은 그 어떤 문들보다도 적막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문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대학가 문화를 여기 서문에서 즐길 수 있어요. 마술사와 디자이너, 이야기꾼, 인문학도까지…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이 하나의 마을, ‘대학동네’를 이루고 있습니다●

서문의 과거와 현재

서문의 좁은 문을 나서면 한적한 도로 위에 작은 카페, 식당이 드문드문 보인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아주 오래돼 그 쇠락함이 한 눈에 보인다. 큰 길 뒤로는 작은 골목이, 골목 끝에는 주택이나 원룸들이 모여 있다. 이 문이 70년대에는 북문보다 활기찬 대학가였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1970년대 당시 서문은 ‘후문’으로 불렸다. 학교 안으로 버스가 들어와 후문으로 빠져나갔고, 술집·밥집·오락실 등 가게가 무려 140여 개나 있어 크게 상권을 이뤘다. 본교 76학번 황위주 교수(인문대 한문)는 “학과마다 단합대회나 신입생 환영회를 할 수 있는 규모의 큰 식당들이 많았고, 체육관이나 태권도장도 있었다”고 당시 서문을 회상했다. 특히 서문은 신천이나 시내로 통하는 길과 가까워 사실상 정문의 역할을 했고, 데모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했다. 83년도부터 서문에서 장사를 한 식당 ‘언덕아래집’ 조준현 사장(58)은 “신학기만 되면 가방은 우리 가게에 던져놓고 당구 치러가는 학생들, 술을 많이 마시고 누워있는 학생들도 많았다. 삼일 멀다하고 늘 복작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북문은 1980년대에 생겼다. 현재처럼 북문이 번화하고 서문이 쇠퇴를 맞은 것은 2000년도 때부터였다. 조 사장은 “2007년쯤에는 이전보다 매출이 30%나 감소했다. 경기가 나빠져 상가번영회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백호관이 가까이 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동아리를 찾는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폐업이 잇달았고 점포는 텅텅 비어갔다. 식당 ‘왕추찜닭’ 지영조 사장(50)은 서문 상권에 대해 “바닥도 이런 바닥이 없다. 교통 접근성이 낮으니 상인들이 애를 먹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몇몇 청년들이 빈 점포를 채우며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임에도 문화공간이 열리고,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렇게 청년들이 모인 골목 곳곳에는 소소한 벽화가 보이고, 매해 골목축제가 열려 서문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하에 소개할 ‘쇼홀릭컴퍼니’, ‘소통파이브’, ‘내 마음은 콩밭’도 서문에 생기를 불어넣는 청년들이 모인 곳이다.

쇼홀릭컴퍼니

서문은 ‘구름판’, 더욱 높게 도약할 수 있게 만드는 추진력

“무대에 서는 직업이기에 연습을 위한 큰 벽면 거울이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곳이 바로 서문이었다!” ‘쇼홀릭컴퍼니’의 대표, 마술사·변검 배우 구본진 씨(27)의 말이다. ‘쇼홀릭컴퍼니’는 공연 예술인들의 매니지먼트와 공연기획·콘텐츠 제작·배급 업무를 하고 있다. 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마술사와 배우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구 대표는 어릴 적부터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약 10년 동안 1인 기획사를 운영해오다, 군대를 전역하자마자 ‘쇼홀릭컴퍼니’를 열었다. 적막한 서문에 왜 청년들이 모였을까? 그 이유에 대해 묻자 구 대표는 “세입자로서 부담스럽지 않은 월세가 큰 이유인 것 같다”고 답했다. “바로 앞에 신천이 흐르고 북대구 IC도 가깝고, 시내 및 동대구역과도 인접하다”며 “이러다 청년 기업 테마 마을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고 말했다.(구 대표는 “이 글을 보시는 건물주 분들, 월세를 올리진 말아주세요. 그럼 모두 떠날지도 모릅니다!”라고 덧붙였다.)

구 대표는 서문에서 “한 회사를 운영하고 함께 일하는 ‘또래’들이 많다는 것이 마음의 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 나와 총도 제대로 쏠 줄 모르는 비슷한 동료들을 만나 서로 의지할 수 있어 참 기쁘다. 서문 식구들은 추진력도 좋고, 도전정신이 강해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치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이다. 이곳이 늘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의 대학가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구 대표는 과거에 기획했던 공연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대학가 소극장에서 ‘술자리보다 더 재미있는 공연’이라는 슬로건으로 공연을 기획한 적 있다. 음주문화로 찌든 대학가를 탈바꿈시키고자 만든 공연이었다”며 “음주 문화로 가득한 지금의 대학가를 젊은 에너지가 넘치는 복합 문화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구 대표는 “11월에 열릴 서문골목축제를 위해 9월 말부터 워크숍을 할 예정이다. 많은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마술을 가르쳐서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통파이브

서문은 ‘익숙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곳’, 학생 때의 익숙함과 사회인의 도전으로 만난 서문

파파, 파마, 파오, 파니, 파코. 통통한 몸통과 동글동글한 눈을 가진 손가락 모양 캐릭터들의 이름이다. 이 5명의 손가락 가족, 소통패밀리는 디자인 전문기업 ‘소통파이브’가 창조한 캐릭터다. ‘소통, 면대면, 가정의 달 5월, 골든타임, 손바닥’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닮은 ‘소통파이브’는 단순히 디자인 기업만이 아니라 예비 사회적 기업, 여성기업, 평균 연령 20대 중반의 청년기업이다. 이들 사업의 핵심은 ‘가족 소통’이다. 가훈 만들기, 컬러링 달력·포스터, 용돈봉투, 역할 바꾸기 우드토이, 소원쿠폰 등 가족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총 10명의 사람들 중 5명은 본교 출신이기도 하다. (박소라 (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 09), 황길정(공대 섬유시스템공학 06), 소철환(공대 고분자공학 07), 윤선영(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 09), 이정석(공대 섬유시스템공학과 06))

그래서 박소라 대표이사는 서문에 자리 잡은 이유 중에 “익숙함”을 뽑았다. 다른 문에 대해서는 “북문은 상권이 커서 디자인 사무실을 두기에는 적합하지 않고, 동문은 도로가 좁아 차량접근성이 불편했다”고 대답했다.

박 이사는 “서문에 비어있는 공간들이 많았는데, 몇 년 전부터 한 두 단체들이 모이며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들이 ‘참 좋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기존 상권의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기운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실 때, 그런 기운을 풍길 수 있어 다시금 기분이 좋아진다”며 박 이사는 서문이 “지금의 온기가 남아있는 공간으로 지속되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지금의 대학가는 문화 공간이기보다 대학생층을 고객으로 하는 상권이라는 느낌이 더 든다. 대학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대학가만의 핫플레이스는 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 같다. 서문이 더 발전하는 것도 좋지만 청년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꿈과 도전이 시작되고 만들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소통파이브는 대구 복지관과 연계해 저소득층자녀, 한부모자녀, 다문화자녀들에게 무상으로 교육하고 가족소통콘텐츠 키트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에 있다. 그밖에 일반 카페에 가족소통보드게임들을 보급해 가족소통공간을 형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마음은 콩밭

서문은 ‘도화지’,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채울 수 있는

마음이 영 다른 곳으로 가있을 때,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마을기업 ‘내 마음은 콩밭(이하 콩밭)’은 그렇게 마음 가는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콩밭’은 디자인 사업을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와 비영리 기업인 콩밭학교로 구분된다. 특히 콩밭학교는 자신의 취미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선생님(콩밭지기)’이 되고 콩밭지기의 수업을 듣고 싶은 사람이 ‘학생(콩밭가꾸미)’가 돼, 서문에 있는 ‘콩밭’의 공간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형태다. 수업내용은 독서, 인테리어 소품 만들기, 텃밭 가꾸기, 음악 감상 등 제한이 없어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 있다. 또한 재료비 외의 수강료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학생이 될 수 있다. 마침 지난 24일 콩밭학교에서 네온사인 조명 만들기 수업이 있어 참여했다. 이날의 선생님은 문예지(공대 기계공학 14) 씨로, 조명을 만드는 건 취미일 뿐 전문적인 강사는 아니었다. “처음엔 콩밭학교에서 학생으로 수업을 듣다, 선생님을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방학 때 시도해봤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콩밭지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저도 잘 못 하지만 같이 만들어보자’고 할 수 있는 선생님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콩밭’ 서민정 대표(예술대 미술 04)는 “북문에서도 ‘at’이라는 공간을 운영한 적 있다. 처음엔 ‘경북대 학생들이 보수적이고 잘 참여를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왔다. 청년들도 뭔가 분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기존의 생각이 ‘편견이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문은 너무 소비지향적인 공간으로 변해 비집고 갈 틈이 없었고, 서문으로 와서 ‘콩밭’을 열었다” ‘콩밭’은 2013년에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서문골목축제, 스튜디오, 콩밭학교로 점차 범위를 넓혀갔다. 작년에는 서문의 단체를 소개하는 ‘대학동네찾기’ 프로젝트도 진행하는 등 서문의 청년 및 단체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나리 가지고 와서 같이 삼겹살에 구워먹고…외롭지가 않다. 문이 잠겼는지 안 잠겼는지 봐줄 때, 빔프로젝터 빌릴 때, 2층에 물건 올릴 때. 소소한 일상을 같이하면서, 서문에 단체들이 모여 있는 것이 좋다고 느낀다”

콩밭학교에 대해 서 대표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들을 찾고, 그것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으로, 나중에는 ‘콩밭’ 쪽에서 개입하지 않아도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요구하는 형태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받아온 교육이 주입식 교육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는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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