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라는 유적지                                                                       정하해

공원이 억센 잎들로 불량해지자 그늘은 반죽처럼 늘어나기 바쁘다  말하자면 아무 연고도 없는 여기서      몸을 방목하듯 풀어 놓을 때     절치부심 내 생을 공회전 하는 것 같아         어딘가 우물거리는 늑골이 있다  공백이 뚜렷한 간만의 외도  나를 들여다보는 일, 참 오랜만이다     치밀하게 짜인 생애 속에서 너라는 것의 임무 막무가내 나이를 탔었구나

오래도록 쓰였던 너라는 도구, 닳을수록 더욱 골똘해진 사람아!그러니까 빠짐없이 디디고 왔었다 홀로 적막이 되는 지금 어디론가 내통이 되어 마구 붉어지는 노을 그 소란들마저 도무지 앞으로 또 한 유적 저 행간 빈둥거리다 누군가 흘리고 간 뒤태를 가만히 밟아본다   잠잠하게 차오르는 어느 생애가 꾹 다문 말씀 같아 내 그늘과 닿아 있다

정하해 시인

포항출생, 2003년 시안 등단『살꽃이 피다』『깜빡』『젖은 잎들을 내다버리는 시간』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수료 대구시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낭송위원

 대구를 놓고 말하라면 나는 내 전부를 털어도 다 못하는 태산이라는 말 새삼 느낀다. 결혼을 하면서 신혼을 대구에서 시작했으니까 37년은 쉽게 달려왔다. 효목동에서 신암동으로 내당동에서 상인동으로 그리고 수성구 만촌동으로, 내 인생 절반을 동과 동을 넘나들었던 것이다. 딱히 어떤 이유라기보다는 누구나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었다. 팔공산을 필두로 앞산의 품은 늘 사람을 지그시 누르는 다정이 있어 문학의 길을 걷게 된 것 또한 이런 영산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