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당선된 느낌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그때의 수 배, 수십 배의 두려움을 느끼지만 이를 잊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이재정(법대 사법 94) 더불어민주당 원내 대변인. 대구출신 국회의원으로 만 41세의 젊은 나이에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사람에 관한 따뜻한 법을 이야기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좋아 민변에서 사무처장(인권변호사)으로 활동했고 ‘나꼼수 선거법 위반 사건’, ‘육군 대위의 이명박 대통령 모욕죄 사건’ 등과 같이 국가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변호하곤 했다. 당선의 두려움을 잊지 않겠다는 이 의원을 만나 전직 인권변호사로서의 삶 그리고 앞으로의 정치 활동에 대한 포부를 들어봤다●


공천 심사를 하다가 정치를 고민하다
저는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4년 전 지금 입당한 더불어민주당에 비례대표 공천 심사에 관여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심사라고만 생각하고 갔는데 심사를 하는 와중에 여러 후보자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이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한 것이 정치 참여의 첫 단추가 되었어요. 어떤 정치인이 정말 필요한지. 정치인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장점을 가질 필요 없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지만 ‘최소한 공통되는 정치인의 자질은 뭘까’ ‘국회의원이 너무 슈퍼맨, 슈퍼우먼이길 바라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했어야 하지 않나’ 등등 굉장히 현실적으로 정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그 와중에 내린  결론은 ‘내 안의 정치혐오증을 제거하자’였어요. 총선이 다가오면 어느 정당에서 누구를 영입하는 개념으로만 생각하는데 낙하산 떨어뜨리듯 정치인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에서 정치를 고민하게 만들고 어떤 정치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기꺼이 할 수 있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정치인이 되고 싶어’라고 하면 권력욕만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공론화하고 견인하고 그런 정치를 키워주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에서부터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라는 생각으로 정치에 대해 벽을 허물고 나니까 정치에 대한 나름의 계획이 생기고 요구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번 20대 총선을 준비하게 된 것은 그런 긴 시간의 고민을 묵혀온 결과입니다.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가 된 이유
법을 공부하게 된 것은 학부 전공을 법학으로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법학을 선택한 이유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법이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룰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 룰을 기본으로 하고 사회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기자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IMF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어요. 대신 사회현상들을 분석하고 부조리를 밝혀내고 나아지도록 하는 일에 차선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일이 변호사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IMF라는 시대적 상황에 타협한 수정된 목표이긴 하지만 그것에 더불어서 제가 원했던 역할을 절반 이상은 한 것 같아요. pd수첩을 들고 다니는 기자들을 보면 여전히 부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온 변호사의 삶과 기자의 삶은 참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단지 한 사건에 국한해서 해결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 사건을 공론화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자들과 함께 노력해서 정보를 전달하고, 기자들은 그것을 알리고, 언론을 통해 얻은 국민의 목소리를 법정에 반영하기도 하면서, 합리적, 상식적 결론이 외압없이 날 수 있게 한 순간들이 많아서 기자를 못했다고 해서 후회하진 않아요.


민변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
법대 입학 당시 변호사가 되겠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1994년 3월 입학을 앞두고 북문을 갔는데 ‘민주사회를 위한 변론’이 있어 그걸 그냥 샀어요. 왠지 전공과 관련된 것 같아서. 그걸 읽어보면서 법률이 딱딱할 줄 알았는데 법률 안에 사람이 있고 법률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민변을 처음 알게 됐어요. 막연히 법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끼다가 제가 변호사가 되기로 하면서 당연히 합격하면 그 모임의 사람들과 같이 고민하고 생활하고 같이 이야기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진짜 변호사가 돼서 민변에 갔을 땐 일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제가 마치 놀이터에 온 듯한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법을 무겁게 느끼지 않고 법의 온도를 느끼는 만큼 그런 법을 이야기할 수 있어 거기만 가면 에너지가 채워져서 올 수 있었어요. 모임을 가고 딱딱한 이야기를 해도 온기 있는 법을 만드는 분들이라 저한테는 민변이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이 딱딱한 법률이 적용되는 법조 세계에서 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저에게 민변은 공기같고 물같은 존재였어요. 대단한 대의를 위해 어떤 일을 한다는 단체이기 이전에 사람과 법률이 혼재되면 따뜻하다고 느끼게 해 준 곳이죠.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때 고충은 없었나
인권변호사들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나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이 많아요. 내가 행복해서 하는 거죠. 그 자체를 희생이라 생각지 않아 어렵다 생각한 적은 없는데 단 하나 있다면 공익을 위해 함께한 재판을 통해 정작 개인의 삶이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제가 맡은 사건 중에는 육군 대위의 상관 모욕죄 사건이 있었죠. 그 분은 잘못을 인정하면 퇴직하지 않고 다른 형을 받을 수 있었지만 공익적 법리를 위해 끝까지 싸웠어요. 원래 그분의 꿈은 훌륭한 군인이 되는 것이었거든요. 제 경력에 상관 모욕죄 사건도 변호했다고 나오면 그 분께 미안해요. 저는 경력이 되었다지만 그 분은 그 사건으로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됐죠. 결과적으로 그분의 삶까지는 책임질 수 없어 공익이란 이유로 혹여 제가 강요했나 하는 빚이 남아 있어요.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이유
제가 상대해 온 권력기관들은 수사기관, 검찰, 국정원이거든요. 저는 참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흔히 정당을 가지고 진보 보수를 나누는데 그게 아니라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헌법 틀 안에서 자꾸 보게 돼요. 그런데 그렇다 보니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참 많았어요. ‘내가 생각할 때는 법에 규정된 게 이건데 왜 수사기관은 법을 지키지 않으려 꼼수를 부리지’이렇게 느꼈던 현장에서의 경험이 너무 컸어요. 이게 변호사 일개인이 싸우는 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특히 처음에 범죄 피의자를 접견하러 가면 형사소송법에는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 라고 돼 있어요. 피의자도 변호의 접견권이 있어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소위 선임계를 안 내도 돼요. 그런데 경찰서에 가면 선임계를 제출하라고 해요. 그럼 저는 늘 형사소송법을 말해요. ‘변호인이 되려는 자’로 왔기에 선임계는 제출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고요. 경찰청에 시정해 달라고 해도 시정이 되지 않아요. 그 정도로 법률의 규정과 실제 집행 현실은 정말 다르거든요. 때론 관행이라는 것에 섣불리 인권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변호사 현실에서 느꼈던 권력체질이 수사 권력이긴 하지만 유사한 권력들, 감사원 등 소위 사찰을 할 수 있고 쉽게 사정의 칼날을 겨눌 수 있는 그런 권력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대구 출신으로서 대구의 지역 문제, 청년문제에 대한 생각은?
저는 지역 문제는 국가적 이익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역이 소외되면 안되는 것은 대구 지역이든 광주 지역이든 다르지 않아요. 특히 대구 지역은 여당의 권력을 배출하는 등 정치사회에 기한 바가 깊은데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이렇게 낙후될 수가 없잖아요.
내 고향이고 내가 특히 관심 있고 나를 배출한 경북대학교의 문제가 결국 전국 지역의 문제인 것 같아요. 청년의 문제도 모든 문제를 복합적으로 함의하고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노동시장의 문제를 포함해 지역 대학의 문제, 지역 경제의 문제 등을 아우르고 있는 청년의 문제에 대해서 제가 만능의원이 아니라 모든 해법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공론화 할 것입니다. 대구 지역에서 배출된 의원 중에서는 제가 제일 젊기 때문에 20대와 터놓고 이야기하기에 제가 유리할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 문제는 앞으로도 제가 노력해서 자리를 마련하고 계속 소통하고 싶어요. 물론 궁극적인 해결은 지역구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도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정치권의 저의 동료들이 계속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요구와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고 봐요.


이번 제20대 총선 당선 소감은?
당선자가 되기 전에 또는 비례대표 순서를 받기 전에 정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당선 후 국회의원이 됐을 때는 두려움이 앞섰어요. 사법시험을 합격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법이라는 것이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참 위험한 물건이에요. 이걸 내가 제대로 활용할 만큼의 실력과 능력이 있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그 수 배, 수십 배의 두려움인 것 같아요. 근데 그 두려움 때문에 감행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두려움을 잊지 않으면서 실수하지 않아야 하죠. 부단히 노력하고 짧은 시간이라도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말고 도움받아 제 능력을 국민들께 부응하게끔 만들어야겠어요. 잘난 체하지 말고 거드름피우지 말고 두려움을 성실함으로 바꿔서 능력에 보태겠습니다.

▲딴지일보 운영 카페 벙커 1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이재정 의원(우)와 ‘세월호 변호사’로 유명한 박주민 의원(좌)


글, 사진: 최지은 기자/cje14@knu.ac.kr
이한솔 기자/lhs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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