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아이가 살고 있으니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자제해 달라’라는 글이 붙었고 거기에는 볼펜으로 ‘5년 동안 끊은 담배를 아이가 뛸 때마다 스트레스로 피우게 됐다’ 라고 답변이 달렸다. 딱 보았을 때 ‘아이가 잘못했군’ 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층간소음의 해결방안으로 담배를 피운 것이 적절해보이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에 대한 한 댓글은 나의 개념을 와장창 깨뜨렸다. 애초에 저런 일들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집을 지은 건설사, 그런 집을 짓도록 만든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집안에서 뛰어다니거나 피아노를 친다. 담배를 피우거나 늦은 시간 빨래를 돌린다. 위의 행동들은 언뜻 보면 이웃을 배려하지 못 하는 무개념인 것처럼 느껴진다. 집이란 한 사람의 생활공간, 삶의 터전이다. 사람이 음악을 즐기고, 뛰고, 빨래를 하는 게 왜 문제인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집이란 곳에서는 문제이고 민폐가 된다. 우리는 당연히 이웃을 위해서 배려해서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려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정도의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집 자체의 문제다. 집을 짓는 이들은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요즘에는 다 그렇게 짓고 그런 식으로 지어도 집이라고 불리는 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짓다가는 기간에 맞추지 못할 수도, 예산에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이란 것을 짓는데 그 집이 집의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사람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행동을 제약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정작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건설사의 문제로 잘 보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배려를 내세우곤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1차적 문제에 집중해 이웃을 배려하지 않고 소음을 내는 사람에게 문제를 집중한다. 또 집 자체의 문제를 알게 되더라도 집의 문제가 되면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뜻 집의 문제로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배려라는 단어로 집에서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포기하고 있을 수도 있다.집에서 자신의 기본적인 자유를 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본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는 집이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웃의 문제가 아니라 집을 지은 이들, 건축 규제에 시선을 돌리고 소리를 내야 한다. 건축사들도 문제가 있는 집을 당연하게 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도 그러한 사회문제가 있음을 알고 제대로 된 집을 지을 수 있는 법적 체제와 규제들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층간 소음과 같은 문제가 단순 배려의 부족이나 이웃 간의 문제로만 좁혀질 것이 아니다. 집이 정말 한 사람의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도록, 집이 ‘집’이 될 수 있도록 시각을 더 넓히는 것이 필요하다.

김성화(예술대 미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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