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과 교수연구동 사이 물푸레나무

우리의 식물이름은 직설적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 자라는 중대가리나무는 열매가 스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또 풀 종류인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홀아비꽃대 등은 함부로 이름을 부르기도 민망하다. 하지만 수수꽃다리, 다정큼나무, 실거리나무, 자작나무 등 찾아보면 예쁜 이름도 여럿 있다. 물푸레나무는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란 뜻의 아름다운 우리 이름의 대표주자다. 실제로 어린가지의 껍질을 벗겨 물에 담가보면 파란 물이 우러난다.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진피秦皮’라 하는데,《동의보감》에는 ‘우려내어 눈을 씻으면 정기를 보하고 눈을 밝게 한다.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부으면서 아픈 것과 바람을 맞으면 눈물이 계속 흐르는 것을 낫게 한다’라고 했다. 과연 얼마 만큼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나도 가끔 눈에 핏발이 서는 증상이 있어서 처방대로 직접 물푸레나무가지를 꺾어다 여러 번 실험을 해보았지만 효과는 기대 이하였다. 내 몸이 현대의약품에 찌들어 버린 탓인지, 아니면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조금은 혼란스럽다. 효과야 어쨌든 옛사람들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껍질 벗김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서민의 안약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고마운 나무였다. 물푸레나무의 쓰임은 이렇게 안약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라면서 어린가지는 옛 서당 어린이들의 공포의 대상인 회초리로 변신했다. 낭창낭창하고 질겨서 훈장님이 아무리 살살 매질을 하여도 아픔은 곱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훈장님에게 물푸레나무 회초리를 한 아름 선물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 외에 도리깨 등의 농사용 도구를 비롯하여 산간지방에서는 눈 속에 빠지지 않게 신은 덧신 설피의 재료로 빠질 수 없었다. 물푸레나무는 낭만적인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무시무시한 쓰임이 또 있다. 옛사람들이 죄인을 심문할 때 쓰는 곤장은 대부분 물푸레나무로 만들었다.《고려사》에는 ‘물푸레나무 공문’이란 말이 등장한다. 지배계층의 기강이 흐트러진 고려 말, 관리들이 좋은 토지를 가진 사람들을 출두하라는 공문 한 장으로 불러다 놓고, 물푸레나무 몽둥이로 덮어놓고 곤장질을 했다. 물푸레나무 공문은 이렇게 물푸레나무로 재산을 강탈한 것을 빗댄 말이라 한다. 조선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가죽채찍이 쓰이기도 하였으나, 곧 없어지고 곤장을 만드는 데는 물푸레나무가 쓰였다. 물푸레나무 곤장은 너무 아프기에 죄인을 가엾게 생각한 임금님이 보다 덜 아픈 다른 나무로 바꾸도록 했다. 하지만 죄인들이 자백을 잘 하지 않으므로 다시 물푸레나무 곤장으로 바뀌기도 했다. 안약에서 시작하여 농사에 쓰이는 기구를 만들었고, 영문도 모르고 관청에 불려가 볼기짝 맞을 때까지 애환을 함께한 서민의 나무가 바로 물푸레나무다.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나 산속의 크고 작은 계곡 쪽에 아름드리로 자라는 갈잎의 큰 나무다. 달걀 모양의 잎이 잎자루 하나에 대여섯 개씩 붙어 있는 겹잎이고 가지와 잎은 모두 마주보기로 달려 있다. 꽃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 가지 끝에서 하얗게 핀다. 열매는 납작한 주걱모양의 날개가 붙어 있고 크기는 사인펜 뚜껑만 하다. 한꺼번에 수십 개씩 무더기로 달려 있다가 세찬 겨울바람을 타고 새로운 땅을 찾아 제각기 멀리 날아간다. 본관 뒤와 교수 연구동 사이에 줄맞추어 심겨진 물푸레나무 숲은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많이 잘려 나갔지만 그래도 우리 대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다. 복지관과 박물관 사이, 주차장에 외로이 서있는 물푸레나무 한그루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다만 시멘트 바닥에 갇혀있는 그의 처지가 애처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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