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배우의 예술이기 때문에 매일 죽어서 다시 살아나는’ 일회성(一回性)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녹화되어 상영되는 영상 매체와는 달리 연극만의 ‘단발성’이 우리를 이끌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한울림 극단의 대표, 정철원 씨에게 대구 연극예술의 현주소를 물어보았다.한울림 극단은 ‘행위함과 가치 그리고 나눔’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97년 대구에서 창단하여 성인극 및 아동극, 마당극에서 뮤지컬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대구, 전국, 국제대회에서의 수상으로 대내외적으로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예술단체이다●

Q. 극단의 슬로건인 ‘행위, 가치, 그리고 나누는 것’에 대해 설명해 달라극단을 창단하며 ‘왜 연극을 해야 하는가?’, ‘왜 극단을 창단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러한 고민 끝에 이런 슬로건이 탄생했다. 연극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여야만 하는 행동 예술이다. 그렇기에 ‘행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가치’는 우리가 상업적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예술적 정신을 가지자는 생각에서부터 나왔다. 연극이 가지는 가치로는 사회적 가치뿐 아닌 인간에 대한 가치도 존재한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이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눔’은 연극이 관객과 나눔으로써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세 가지를 연결하면 우리가 행위하고, 이를 가치 있게 하고, 그것을 통해 나누자는 뜻이 된다.

Q. 연극이라는 매체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연극은 인간의 땀으로 이루어지는, 아주 원시적인 인간 예술이고 본능의 예술이다. 또 사람을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의 예술이다. 같은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와 다르다. 그것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다. 무대와 객석이 직접 마주해야 예술이 성립된다.

Q. 극단 운영뿐 아니라 연출도 직접 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품 연출에 있어서 중점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초창기에는 배우로 활동했으나 지금은 연출가로, 때로는 제작자로도 활동한다. 연출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정서 함양이다. ‘사람들이 왜 연극을 보러 올까’와 ‘연극을 통해 어떤 걸 느낄까’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항상 정서를 가지기에 우리는 연극 속에 그 베이스를 깐다. 표면적으로 만든 정서는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저를 직접적으로 접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다. 정서를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연극에는 신명도, 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Q. 내년이면 창단 20주년을 맞는다. 본인이 창단한 극단의 대표 자리를 20년간 지켜오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한울림의 20년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대구 연극뿐 아닌 한국 연극판 전체에서도 말이다. 우리는 어떤 극단보다도 치열하게 또 왕성하게 활동해왔으며 많은 작품과 배우를 탄생시켰다. 극단의 운영 시스템을 정착시킨 부분에서는 타극단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을 되돌아보면 허무함이 느껴지듯, 연극예술에서도 같은 허무함이 느껴진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된다. 지난 20년이 의지와의 투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달려온 시간이라면, 앞으로는 안락하고 따뜻한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품 또한 사람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약 20년간 극단을 이끌면서 많은 공연들을 꾸려왔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희로애락이 많았다. 한 번은 큰 공연 중 무대가 완전 무너져버린 적이 있었다. 배우가 세트를 운반하다 무대 전체를 연결하고 있는 기둥을 쳐버려서 일어난 상황이었다. 아주 아찔했다. 또 한 번은 노인분들과 함께하는 ‘호야 내 새끼’를 공연할 때 일어난 일이다. 관객석에 앉아 계시던 한 할머니가 갑자기 무대에 올라와 배우에게 “여기 화장실 어디 있는고?”라고 물어본 것이다. 갑작스럽게 무대에 등장한 할머니 때문에 배우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화장실 위치를 가르쳐주며 자연스럽게 연기를 이어가 위기를 넘겼다. 슬픈 일들도 많았다. 인터뷰로 다 전달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도 많았지만, 이런 일들이 모인 덕에 지금의 한울림이 존재할 수 있는 것 같다.

Q. 대구가 서울 다음가는 공연예술도시라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공연예술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어떤 요소가 필요한가?대구는 서서히 공연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도시다. 대구연극협회에 등록되어있는 극단은 22개뿐이지만,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극단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를 떠나 굉장히 많다. 문화거리로 거듭난 대명동이 공연문화도시 대구를 만들었고, 한울림이 그 중심에 있다. 앞으로 50년 후에는 대구가 공연도시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가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존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대구문화재단에서 창작 활동에 드는 비용들을 지원해 주고, 이는 많은 극단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만 지원에만 의존해서는 연극과 극단이 발전할 수 없다. 극단은 이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

Q. 대구 극단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나면 곧장 서울로 진출해버리는 배우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어떻게 보면 이는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저마다 욕망이 있고, 욕망 중 일부는 자신을 확대시키고 싶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문화정책은 중앙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안고 서울로 향하지만, 이는 도래를 위해 큰바위얼굴만을 쫓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분명한 목표가 있으면 공간을 떠나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실력만 쌓으면 전국적으로 통하기 때문에 장소는 예전과 같은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기회의 땅은 사람으로 꽉 차버린 서울이 아닌 대구다. 실제로 역류현상이 일어나 서울의 실력자들이 대구로 내려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대구 배우들은 대구에서 안주할 것만이 아니라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Q. 연극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연극은 영화보다 장르가 많다. 연극을 보고 (특히 실험극이나 전위극 같은 작품을 만났을 때) 의아함을 느껴, 연극을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극이 진지하고 무거운 매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연극 중 한 장르를 봤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관람 전 장르를 구분해 자신의 취향과 맞는 작품을 선택한다. 하지만 연극의 경우 영화만큼의 홍보가 이뤄지기 힘들고,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연극 보러 가자”로 이야기 된다. 앞서 말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관객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연극 작품에 대한 정보를 우선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 또 자신과 맞는 작품을 선택함과 동시에, 쉬운 작품부터 접해야 한다. 즐겁게 볼 수 있는 휴먼 리얼 코미디 같은 작품으로부터 시작해 인간에 대한 고민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미술과 같은 시각예술에서 그런 것처럼, 장르에 대한 깊은 공부를 통해 고차원적인 철학 예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Q. 공연예술문화 발전에 있어 대학생들의 역할은?과거에는 관객들의 대부분이 대학생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연극에 대해 인간적 의미를 가지고 고민하는 아카데미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로맨스 코미디와 같은 가벼운 장르만을 선호하는 것 같다. 관객을 끌기 위해 많은 극단과 연극들이 본류를 잊어버리고 젊은이의 성향으로 찾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관객과 연극 모두 생각이 얕아졌다.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연극을 진지한 부분에서도 바라봐 줬으면 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지성인들이 이를 활성화시킨다면 예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풍요롭게 살찐다. 함께 사회와 문화를 살 찌울 것을 대학생들에게 강력히 바란다.

글, 사진: 이승연 기자/lsy14@knu.ac.kr김나영 기자/kny15@knu.ac.kr                        

<공연사진 출처: 한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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