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제도적·시설적 처우는 날로 개선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 대 사람간의 이야기는 어떨까? 현재 본교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은 대학원을 포함하여 87명이다. 오늘, 강의실 내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장애인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장애학생들의 심리·사회적인 면을 청각장애 2급인 서민지(예술대 시각정보디자인 15) 씨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차별적 인식을 줄여보고자 했다●

부산의 한 여고. “니 혹시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 하는 거 아니가?” 한 여고생이 무심한 얼굴로 툭 내뱉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말로 공격당했던 청각장애 2급인 서민지(예술대 시각디자인학과 15)씨는, 당시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그런 말들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덤덤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두 귀가 들리지 않았다. 소리가 없는 고요한 세상에서 살아온 지 6년이 되었을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간 병원에서 한쪽 귀에 인공와우이식술을 받게 되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소리’라는 개념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그것은 오감(五感)으로 세상을 느껴온 사람이 어느 날 문득 상상치도 못한 ‘제 6의 감각’을 갖게 되는 것만큼이나 대단히 낯선 변화였을 것이지만, 그녀는 다른 모든 친구들도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부모님께서는 당신 자식의 장애 여부에 구별을 둔 채 행동하시지는 않으셨어요. 그래서 저도 다른 친구들과 똑같은,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인 줄 알았죠.” 그녀가 말했다. 그녀가 본인이 청각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을 자각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친구들은 그녀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녀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어요. 저는 다르다는 걸.” 어린 마음에 큰 상처였다. 그녀는 엄마에게 안겨 울었고 엄마는 그녀를 따뜻이 품은 채로 위로했다. “엄마는 그때 제게 ‘너는 틀린 게 아니고 조금 다를 뿐이다. 기죽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녀가 말했다. “중학교 때부터는 별 탈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애들이 크면서 ‘머리도 크니까’ 착한 친구들도 많아지더라고요.” 그녀는 본인이 우스운 말을 했다는 듯 즐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녀가 미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유치원 때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좋아했던 서 씨는,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하며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날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 엄마는 그녀에게 ‘미술 말고 다른 길도 한 번쯤 생각해 봐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민해 봤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미술, 이쪽으로 쭉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고, 앞으로도 하고 싶으니까.” 그렇게 그녀는 본교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다. “스스로가 고등학생 때보다 바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친구들도 그대로고” 그녀가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학교에서 제공되는 장애인 도우미 지원 제도였다. 중고등학생 때는 같은 반인 친구들과 하루 종일 함께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수업시간에는 수업의 흐름을 따라가려 열심히 노력했고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의 필기를 보고 놓친 부분을 채워 넣었다. 대학에 오니 강의 내용을 대필해 주는 장애인 도우미와 강의에 동행할 수 있었다. “남자목소리는 잘 안 들려요. 목소리의 떨림에 따라 잘 들리는 목소리가 있고 잘 안 들리는 목소리가 있어요. 저희 과는 남자 교수님들이 많으셔서 도우미 제도가 저에게 상당히 큰 도움이 돼요.” 디자인 강의는 교수님의 지시대로 바로바로 실습에 임해야 한다. 이 때문에 도우미는 대필뿐 아니라 교수님의 지시를 즉시 그녀에게 전달해 주는 일까지 맡는다. “첨성관에 거주 중인데, 생활관 도우미 제도에도 큰 도움을 받고 있어요.” 잘 때는 인공와우 장치를 벗어두는 그녀에게, 시간이 되면 다정한 손길로 잠든 그녀를 흔들며 아침을 알리던 엄마의 부재를 들리지 않는 알람이 아닌 도우미의 손길로 메꿀 수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었다. 개강총회나 대면식 당시 시끌벅적한 술자리에서 그녀는 혼자 튀는 얼굴을 하고 앉아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정신이 없는 와중 말하는 사람의 입모양을 읽어내려 양미간을 모은 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데는 불편함이 없지만, 세 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한 명이 말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별안간 끼어들어 맞장구를 치거나 얘기를 하게 되기 때문에 주변이 시끄러워서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요. 그래서 친구들이 대화하고 있으면 끼어들기가 힘들어 옆사람에게 자꾸 흐름을 물어보게 되고…” 그녀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본인의 장애를 드러내는 데 두 가지 방법을 시도해 봤다. 첫 번째 방법은 처음 만났을 때 말해주는 것이었고, 두 번째 방법은 서로 익숙하고 친근한 사이가 된 이후 말해주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서 청각장애를 밝히면 사람들이 장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나를 대하는 게 보통이에요. ‘아 청각장애가 있다고 했지. 그러면 다시 한 번 말해줄게’하는 편이죠. 근데 초면에 이를 밝히지 않고 얘기를 나누면 ‘너는 왜 그렇게 말을 못 알아듣나. 귀지 좀 파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하. 그러면 그냥 얘기를 해줘요. 제가 귀가 좀 안 좋아서 잘 안 들린다고.” 그런데 장애 여부를 알게 된 후, 본인들은 호의와 배려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나 그녀가 받아들이기에 달갑지 않고 부담스럽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 앞에서 대놓고 ‘얘 청각장애인이니까 잘 챙겨줘’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과한 분들은 ‘얘 청각장애인이니까 너 그렇게 하면 안돼!’ 하시기도 해요. 기분이 좋지는 않아요. 내가 직접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고, 또 배려를 해주고 싶다면 제가 없을 때 귀띔을 해 줘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 땐 굳이 내 앞에서 얘기를 해야 하나 싶어요. 너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식시키는 게 싫은 거죠. 저도 제 장애를 인정하지만 굳이 구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은데, 저렇게 말해버리면 먼저 선을 그어버리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오히려 위축되고 소심해지고…”그녀는 본교 진학 후 ‘경북대 내 장애학생을 위해서 제도화를 추진하는 장애학생자치회’인 크누프리(KNUFree)에 가입했다. 지금은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취업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고, 장애학생들끼리 친목 도모도 해요. 자주자주 만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김영성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현재 본교 재학 중인 장애학생은 대학원을 포함하여 87명이다. “크누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학생은 20여 명이에요. 아직 크누프리에 가입하지 않은 학생들이 더 가입해 장애를 인정하고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정보를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그녀의 장래희망은 디자이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중에 콕 찝어 어떤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공부를 하면서 차차 마음을 굳힐 예정이다. “앞으로 장애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미술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고 싶어요. 보청기를 착용해도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인들도 있는데, 그런 분들에게 미술을 가르쳐 드리고 싶어요. 저도 도움을 받아 미술을 배운지라” 그녀가 말했다. “만약 주변에 장애인이 있다면 그 장애에 대해 스스로 잠깐이라도 검색을 하거나 해서 공부를 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애인은 이런 일을 못할 거다. 이런 행동을 못할 거다, 이렇게 미리 단정 짓는 일 없이 장애 그 자체로만 봐 줬으면 좋겠어요. 장애 각각의 특성만 고려해 주고 다른 부분은 편견없이 봐 줬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그녀가 한 말이다. 인터뷰가 끝났음을 알리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동갑인데 말을 그만 높이고 편하게 얘기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평일 오전 한적한 카페에서 다음 강의까지 시간이 남은 그녀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렸다. 마지막 그녀의 말 그대로 그녀는 그냥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21세 여대생’이었다.

* 청각장애 2급: 두 귀의 청력 손실이 각각 90데시빌(dB) 이상인 경우(장애인복지법 제2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2조제2항의 규정에 의한 「장애등급판정기준」(보건복지부고시 제2013-56호))

* 인공와우: 인공와우는 달팽이관 내에 남아 있는 나선신경절세포나 말초 청신경을 직접 전기적으로 자극하여 대뇌 청각중추에서 소리를 인지하도록 한다. 와우이식은 일반적으로 양측 귀에 고도의 감각신경성 난청이 있지만 보청기를 착용해도 청력에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경우 이식 받을 수 있다.(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김나영 기자/kny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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