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리아는 처음 수입될 때만 해도 포유류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생태계 교란종이 됐다. 이는 마치 식용을 위해 들여온 황소개구리가 뛰어난 번식력과 적응력으로 생태계 교란종이 된 것과 같은 절차를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욕심으로 데려왔지만 박멸의 대상이 된 뉴트리아를 만나봤다● 

수달을 닮은 뉴트리아

‘낙동강 괴물쥐’라고도 불리는 뉴트리아는 몸길이 43~63cm, 꼬리길이가 22~42cm에 달하는 포유류다. 일반 성체의 몸무게만 암컷 6.3kg, 수컷 6.7kg가 될 정도로 수달을 닮은 대형 쥐의 외형을 지녔다. 반수생 설치류 동물답게 코와 입에는 물에 들어갔을 때 닫히는 판막이 있으며 콧구멍은 얼굴 높은 곳에 위치한다. 앞발에는 물칼퀴가 없이 긴 발가락 4개로 굴을 파거나 물건을 움켜쥐는데 유용하지만 뒷발에는 물칼퀴가 있어 수중생활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뒷발의 경우 개체가 성장할수록 크기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뉴트리아는 초식성을 띈 잡식성 동물로 하루 자기 체중의 약 20%를 섭취할 정도로 대식가이다. 수생식물의 뿌리부터 당근, 고구마까지 가리는 게 없다. 번식 측면에서도 다발정 동물로, 산후에도 바로 발정을 보여 출산 1~2일 경과 후에도 재번식이 가능하다. 한 배에서 보통 3~6마리를 출산하나 1~12마리까지 가능하다. 특히 늦겨울과 초여름 및 가을철에 번식이 활발하다. 

남미에서부터 한국까지

뉴트리아는 원래 남아메리카가 원산지로, 1985년 7월 프랑스에서 식용과 모피 이용을 목적으로 100마리가 국내 첫 수입됐지만 사육기술의 미흡으로 전량 폐사했다. 1987년 불가리아로부터 종자용으로 뉴트리아 60여 마리가 수입이 된 후 성공적으로 증식이 이뤄진다.

이에 비용이 적게 드는 기본 시설만으로도 사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2001년에는 470여 농가에서 15만 마리가 사육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 해 축산법상 가축으로 등록됐으나 축산물가공처리법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합법적인 위생도축도 불가능했던 뉴트리아는 경제적 가치가 떨어지자 방사, 유기됐다.

유기된 뉴트리아는 국내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경남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식지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이에 환경부에서는 뉴트리아가 국내 생태계에 가져올 위해성을 고려하여 2009년부터 ‘생물다양성 이용 및 보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뉴트리아를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했다. 환경부는 2023년까지 뉴트리아 완전 박멸을 목표로 내세웠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타 가축 통계’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 뉴트리아 사육 농가 및 사육 뉴트리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육 농가는 없지만 현재 뉴트리아는 부산, 김해, 밀양, 창녕 등 경남 낙동강 중·하류에서 집중 서식하며 경북까지 서식 범위를 늘려가고 있는 상태다.

대구까지 북상한 뉴트리아

현재 뉴트리아는 대구에서도 발견된다. 뉴트리아 집중 서식지인 낙동강 중·하류를 통해 대구로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낙동강 수계와 금오강 일대에서 뉴트리아의 지속적인 유입에 의한 정착과 증식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대구환경청에서는 2014년부터 뉴트리아 퇴치단을 운영해왔다. 뉴트리아 포획은 금호강 수계에서만 2014년 150마리, 2015년 349마리를 기록하면서 일 년 사이에 개체 수가 2배로 증가했다.

대구에서 뉴트리아가 처음 발견된 것은 2008년이다. 뉴트리아는 달성습지생태학교 생태교육연구회 회장 석윤복 씨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당시 발견 된 것은 총 7마리로 잡힌 것은 3마리였다. 발견될 당시 뉴트리아는 이미 수변에 굴을 파고 번식한 상태였다. 현재도 습지에서 종종 목격되고 있으며 열 마리 남짓한 뉴트리아 무리가 목격된 사례도 있다. 발견자 석윤복 씨는 “뉴트리아가 우리나라 기후에 점차 적응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직까지 습지에 피해를 줄만큼 뉴트리아가 많지 않아 피해에 대해서는 염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뉴트리아는 달성습지뿐 아니라 안심습지에서도 나타났다. 금오강의 안심습지는 뉴트리아 서식에 선호되는 먹이자원이 풍부하고 정체수역을 갖추고 있어 더 많은 뉴트리아의 정착이 염려된다. 특히 사람의 발길이 닫기 힘든 하중도(하천 가운데 생긴 퇴적지형)가 발달해 있어 포획틀로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본지가 방문했던 안심습지에서는 당일 3마리의 뉴트리아가 잡혔으며 포획틀에 갇힌 뉴트리아와 이미 사체로 변해버린 뉴트리아를 볼 수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포획틀에서 급하게 나오려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뉴트리아는 발견 전에 죽기도 한다”며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곳이 뉴트리아 서식에 더 적합해 포인트를 찾아 포획틀 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박멸되어야 하는가

뉴트리아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세계 100대 악성 외래생물’로 국내 천적이 거의 없어 추위를 제외하고 번식력을 억제할 수 있는 요건이 없다. 국내 천적으로는 삵과 맹금류가 일부 뉴트리아를 포식하지만 그 개체수가 많지 않아 박멸에 이용할 수 없다. 또한 체중 20%를 먹는 대식가이기 때문에 논밭 작물들과 수생식물을 비롯하여 습지 식물 파괴가 이어지며, 다른 동식물들에게 2차적 피해가 이어지는 생태계 교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뉴트리아 습성상 제방이나 둑에 굴을 파 무너짐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도 박멸의 대상 혹은 개체 수 억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뉴트리아 박멸 해외 사례

영국은 뉴트리아 박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영국 또한 1929년 모피를 목적으로 뉴트리아를 수입한 뒤 경제적 가치 하락으로 자연에 유입되면서 수가 급증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1962년부터 1965년까지 1차 조절 캠페인을 추진했지만, 지속적인 관리가 되지 않아 뉴트리아 증식이 다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뉴트리아 전략그룹(Coypu Strategy Group)’을 설립하여 1981년부터 2차 박멸 캠페인에 들어갔다. 뉴트리아 약 3만 마리의 해부를 뉴트리아 생체특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면서 개체 수 추정과 예측 시뮬레이션을 구상할 수 있었던 영국은 1989년 뉴트리아 서식 근절을 선언했다.

영국의 박멸 캠페인은 생물학자들과 관리 위원회의 효과적인 소통으로 생태계교란종을 성공적으로 퇴치한 사례하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전국 뉴트리아 서식실태조사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 [편] ; 이도훈 [외 연구])

「선진 해외 뉴트리아 관리 사례」 (국립생태원 [편] ; 이도훈, 길지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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