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존엄하다고 헌법에도, 세계인권선언에도 나와 있지만 현실에서는 빈말이 되어 있다. ‘헬조선’이나 ‘n포 세대’와 같은 신조어가 청년 세대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그 증거다. 경제적 불안은 취업 또는 복지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는 줄어드는 추세다. 고용 없는 성장이 현대 경제의 특징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더구나 앞으로 로봇이 인력을 대체해갈 것이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온 일자리는 자꾸 줄어들게 된다.그렇다면 복지가 점점 더 중요해지게 된다. 취업을 하든 말든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면 세상이 달라진다. 구직자가 취업에 목을 매지 않으므로 기업도 좋은 노동력을 확보하려면 자기네들끼리 경쟁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수요자와 공급자 간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져서 기업이 갑질을 할 수 없는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진다. 일자리의 개념도 달라진다. 일자리는 돈보다 보람을 얻기 위한 방편이 된다.그러나 복지는 ‘개미가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래서 복지가 원만하게 정착하려면 특권이익을 재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특권이란, 노력과 운이 동일한데도 더 많은 이익을 얻거나 더 적은 불이익을 받을 지위 또는 자격이다.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면 당연히 특권과 차별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공익적 관점에서 특권을 공인하는 경우도 있고 현실적으로 특권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공인된 특권으로 토지소유권, 각종 면허 등이 있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특권으로는 남성특권, 정규직특권, 수도권특권, 갑질특권 등이 있다.국민이 평등하게 존엄하다면 특권에서 생기는 이익은 당연히 환수하여야 한다. 또 환수액에 대해서 모든 국민이 동일한 지분을 가지므로 베짱이도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개미가 노력하여 번 소득을 거두어 베짱이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므로 ‘재분배 아닌 복지’가 이루어진다. 특권이익은 예상 외로 엄청난 규모다. 토지특권만 해도 원론적으로 계산하면 연간 1인당 400만 원꼴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보험 제도를 만들고 1인당 연간 100만 원만 보험료로 활용해도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독자 중에는 ‘재분배 아닌 복지? 좋지. 그렇지만 한갓 꿈이 아닌가? 기득권층이 양보하려고 하겠나?’ 하고 의문을 갖는 분도 많을 것이다.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개인의 각성과 시민운동이 필요하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결국 제도는 정치가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청년층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기존의 거대 정당이 청년 몇 명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는 정도로는 안 된다. 청년정당을 결성하여 국회의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석 이상의 당선자를 낼 수 있다면 상당한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그런데 지금처럼 소선구제와 단순다수대표제가 결합된 선거제도에서는 청년정당이 국회의원을 내기 어렵다. 완전한 선거공영제를 실시하여 선거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결과는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1등 당선제는 낙선자가 얻는 모든 표를 사표로 만들고 거대 정당의 정치 독과점을 낳기 때문에 민주적 제도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이런 제도에서는 청년들이 투표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으니 투표율이 낮고 그래서 정치권은 청년을 덜 챙기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그러면 정치개혁의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 답이 나온다. 표의 대표성을 높여야 한다. 흔히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가 대안으로 제시되는데 비례대표제가 물론 더 낫다. 2등이나 3등까지 당선되는 중·대선거구제에서도 낙선자의 표는 사표가 될 뿐 아니라 지금과 같은 지역 구도에서는 한 정당이 여러 후보를 내어 특정 지역의 당선자를 싹쓸이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헬조선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두 이렇게 외쳐야 한다. “내 돈 돌리도!” “내 표도 한 표다!” 그리고 이런 구호가 먹혀들려면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청년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가서, 청년 표가 무섭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김윤상 석좌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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