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문학과 예술 작품을 통해 희열과 위안을 느끼며, 그 느낌은 우울함과 외로운 기분에서 벗어나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과학을 통해서도 희열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창조의 길로 나아가게 만든다.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옛날 옛적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궁금해 하고 아직까지 풀지 못하는 대표적인 질문이다. 우주의 기원과 모양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이 평생의 시간을 바쳤고, 그 결과 신의 영역이던 창조 신화를 과학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을까?’라는 질문에 리차드 파인만과 같은 환원주의자들은 ‘세상은 원자로 만들어졌다’라고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환원주의 관점에서 보면 단순하게 물질의 기본 구성 요소와 그 사이의 상호작용만 알아내면 나머지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믿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하는 질문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이 어떻게 모든 다양한 현상을 만들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 현상은 전체를 이루는 기본단위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나타난 결과이다. 예를 들어, H₂O 분자들을 모아놓고 온도를 낮추면 100˚C 이하에서 물이 되는데, 이때 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전혀 없다면 물이 될 수 없다. 상호작용하는 물질, 구체적으로 고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체를 구성하는 원자는 다시 전자와 이온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는 질량이 이온에 비해 훨씬 가볍기 때문에 그 움직임이 빨라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온들은 전자가 그 안에서 운동하는 틀의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고체의 성질은 전자의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우리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고체내의 전자들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여 다양하고 흥미로운 물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전자 간 상호작용의 본질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스핀-전하-궤도-격자 자유도” 사이의 결합 관계를 체계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결합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는 물질을 강상관 전자계(strongly correlated electron system)라 명명한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 대한 성격, 성향, 취향 등의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고체의 성질과 상호작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 및 다양한 실험이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화학적 조성, 온도, 자기장, 물리적 압력 등의 외부환경을 다양하게 변화시키면서 고체의 반응을 측정하는 연구는 기초적인 물리현상 이해에 필수적이다. 강상관 전자계 중 대표적인 물질은 전이금속산화물이다. 전이금속산화물은 흔히 주기율표에서 최외각전자가 d각인 전이금속과 이들이 산화된 다양한 형태의 산화 화합물을 말한다. 특히 전이금속의 d전자구조 및 이웃한 전자각 궤도의 파동함수 모양과 상태에 따라 이 물질의 전기적, 자기적 성질이 결정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86년 구리산화물 고온 초전도체의 발견으로 금속산화물에 대한 물리적 현상 연구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쌓은 기술과 전이금속 산화물 물리학의 발전으로 1990년에 망간 산화물에서 초거대자기저항 현상이 발견되었고 2000년 이후 강자성과 강유전성이 공존하는 다중강성물질 (multiferroics)이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스핀-궤도 상호작용이 매우 강한 물질이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대표적인 물질이 5d 궤도를 지닌 이리듐 산화물이다. 이리듐 산화물은 궤도의 강한 상호작용(Mott 부도체 상태, 초전도 가능성, 토폴로지 부도체 스핀 liquid 현상 등)으로 인해 스핀 오비탈 상호작용에 의해 발현되는 여러 물리현상을 공부하는데 적합한 물질이다.고체물리에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 중 하나는 층상구조 복합물질에서 강한 스핀-궤도 상호작용이 전도전자의 기저상태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이다. 전자간의 상호작용의 에너지 크기가 전도 전자의 운동에너지에 비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지는 경우 전자계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유도, 즉 스핀, 오비탈, 격자의 대칭성이 붕괴되면서 특별한 정렬 상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정렬상태는 물질 자체의 자기적 성질에서 이방성을 가지면서 전도전자의 양자상태의 국소적인 특성이 중요해지는 경우에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자기장 하에서 전자의 운동 정보를 알려주는 물리량인 자기저항은 스핀-궤도 상호작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5d 전이금속 산화물은 3d 전이금속 합금이나 산화물보다 훨씬 강한 비등방성을 지닌다. 자기결정 이방성(magnetocrystalline anisotropy) 자유도는 고체 내 전자의 스핀-궤도 상호작용이 강해 한 방향으로 스핀이 정렬하면서 생기는 자유도를 의미한다. 이는 전자 궤도가 결정구조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스핀과의 상호결합으로 특정 결정축으로 정렬하려는 성질이 있다. 이리듐 산화물 단결정과 박막에 대한 자기저항 측정 결과는 전자 수송, 자기 정렬, 궤도 상태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초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방성에 의한 자기저항의 변화량을 하나의 정보로 이용하면 각도의존 센서나 소자 응용을 구현할 수 있다. 현대 문명의 발달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자를 제어하는 과정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동통신 등의 첨단 산업 모두 전자를 우리에게 유용하게 어떻게 더 잘 제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전자의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학문적인 측면뿐 아니라 응용과학 및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오늘날 양자 물성 연구자들은 강상관 전자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양자현상에 대한 연구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이용해 새로운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통합적으로 연구하면 반도체를 대신할 차세대 소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강상관 전자계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조연정 교수 (자연대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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