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mm 태엽식 영화 촬영기(KEY STONE K-8, 더블 16mm필름용, 미국, 1935년)를 들고 있는 김태환 관장

세계에서 제일 작은 박물관. 단 하나밖에 없는 비디오카메라 박물관인 한국영상박물관이 대구 중앙로에 위치해 있다. 북문에서 버스를 타고 경상감영공원에서 내리면 20분도 체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다.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면 김태환 관장이 소탈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카메라에 대해 묻는 순간, 김 관장의 눈은 강렬하게 빛난다. 입으로는 이 기기가 몇 년도 모델인지,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에 대해 망설임 없이 설명하고 손으로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작동시킨다. ‘기록’을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평생 역사를 기록해온 김 관장은 그 스스로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었다●

“돈도 없는 영감이 20년 동안 돈 안 받고 문 열고 있다는 게 희귀한 일이지” 1999년에 설립한 한국영상박물관은 지금까지 각 국가에서 제작된 비디오카메라와 영상관련 기계·사진기·영사기·TV·영화필름·영상물 콘텐츠 자료 등을 수집·보존·전시해 왔다. 25평 정도의 작은 박물관 안에 들어서면 김태환 관장이 수집한 2천여 점의 각종 영상기기들이 렌즈를 통해 방문자를 바라본다. 김 관장의 박물관 철학은 “첫째는 무료 관람. 둘째, 누구나 만져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기들을 도난당하는 일도 있었다. 김 관장은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갖고 갔겠어? 못 찾는 거지, 이제”하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최초의 카메라김태환 관장은 한국비디오작가협회 초대 중앙회장을 역임했고 수십 년 동안 영상기기와 함께했다. 김 관장은 한국 아마추어 복싱 공인 심판으로도 활동했다. 심사판정을 정확히 보려고 8mm 필름 영화를 시작했고, 1979년 서울 세운상가에서 500여만 원의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 바로 이 SONY 1980년 분리형 베타 칼라 비디오카메라다. 비디오카메라의 발전은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래서 더 나은 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카메라맨들은 전에 쓰던 카메라를 두고 새 것을 쓴다. “수집해도 돈이 안 되니까 수집하는 사람이 없었어. 그렇다면 내가 전 세계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겠다 생각한 거지”라며 박물관 설립 이유를 밝혔다.

▲달에서 최초의 발자국을 찍은 카메라핫셀블라드 500CM, 18K 금장, f=80mm, 2.8, 스웨덴, 1957-1987년. 인간이 달에 최초로 발을 내딛었을 때의 그 발자국을 촬영한 기념으로 1400대 한정 제작된 카메라다. 핫셀블라드는 중형 카메라 중 최고로 불리는 브랜드다. 이렇듯 이곳에는 ‘최초’ 또는 ‘1호’라고 이름표를 단 기기가 많이 보인다. 가정용 비디오 세계 1호. 비디오카메라 세계 1호. 김 관장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6mm 카메라를 가지고 1997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대구스타디움 건립 과정을 담아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백남준 작가의 첫 비디오 녹화기이 또한 세계 1호가 붙는 기기다. 비디오 작가 백남준이 최초로 사용한 포터블 흑백 오픈닐 분리형 비디오 녹화기, SONY, DV-2400, 일본, 1967년. 김 관장이 미국까지 가서 수집해온 것이다. 백남준 작가의 35mm 영사기 작품도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영화 필름은 넓이가 8mm되는 것부터 독립영화에 쓰이는 16mm, 일반 영화관에서 쓰이는 35mm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박물관 일부는 물레와 닮은 필름들로 빼곡히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디지털 영화의 등장으로 필름 영화는 그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인력과 기술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수집은 역사의 훼손에 맞서온 유일한 무기”라고 말했다. “역사를 수집해놓고 영구보존하는 게 박물관 역할인 거지. 그렇게 어렵게 모은 가치 있는 것을 나 혼자만 갖고 있으면 어떡해? 힘들어도 문을 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역사를 보여주는 게 아니겠어? 그게 살아 있는 박물관이지”

“내가 처음 취직한 곳이 사진관이었어” 그 시절에는 설날 때 가족사진을 찍고 극장에 가는 것이 최고로 좋은 일이었다. 젊은 김 관장이 직원으로 일하던 사진관에 한 가족이 들어선 설날이었다. 김 관장은 “사진관 주인이 잠깐 나가서 오지를 않는 거야. 손님들이 지겨워서 가려고 하니까 내가 찍겠다고 나섰어. 필름 넣어두고 셔터를 끊는데, 잘못해서 천장에 있는 만국기에 불이 붙은 거야. 손님들은 도망치고, 생각해보니 나도 내빼야겠다 싶어서 잔돈 챙겨들고 나왔지”라며 껄껄 웃었다. 그 이후로 그에게 콤플렉스가 생겼다. “그때 셔터를 최초로 끊은 게 헛촬영이었던 거야. 그 기억이 남아서 지금 디지털 카메라를 쓸 때도 숨을 죽이고 손을 고정시켜. 생각하면 한 번의 실수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일지도 모르지” 그 시절의 조명기기가 위 사진과 같다. 사진용 화약을 넣어 팍, 튀는 순간 사진을 찍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조명으로는 최초지”

홀리데이Ⅱ, 8mm 태엽식 영화 촬영기. 더블16mm필름용, 렌즈 3개, 일본, 1951년. 故 김응윤 기증. 태엽식 카메라는 촬영 전 손잡이를 잡고 돌려 태엽을 감아줘야 한다. “이건 친구가 죽기 3개월 전에 준 거야. 이거 가지고 사진을 찍으면서 사랑하는 사람도 찍었고 애들 커가는 것도 찍고 여행 갔던 것도 찍었겠지. 주면서 ‘모든 걸 파인더 속에 기억해뒀는데, 내가 죽고 나면 이걸 돌려줄 사람이 없다. 김 관장이 이걸 갖고 가 일주일에 한 번씩만 돌려줘도 내가 살아있는 것과 같은 게 아니냐’고 말했지. 처음엔 그 사람 말뜻을 내가 못 헤아렸어.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보고 일주일에 한 번 돌리라는 건,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이 아니겠어?” 김 관장은 렌즈 3개 달린 카메라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며 말했다.

▲한국 1호기 대형 스튜디오 카메라유니버스 안소니, 렌즈(일본)FUJINAR, 1대4.5F=30CM. 김 관장에게 영상기기를 주로 수집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요즘 사진은 다양하게 수정할 수가 있는데 옛날에는 그러지 못했어. 흑백사진 한 장 속에 모든 게 함축돼 있었지. ‘빛을 봐서 몇 시쯤이다’, ‘구름이 낀 걸 보고 날씨는 어떻다’를 다 볼 수 있었지. 옛날에는 속일 수가 없었어. 그게 바로 기록이지. 사진 한 장이 가르쳐주는 역사.”

위치: 대구 중구 화전동 2-7번지(대구극장 앞)연락처: (053)423-4732관람시간: 매일 10-17시 (토, 일요일 휴관)관람료: 무료

김서현 기자/ksh15@knu.ac.kr

김나영 기자/kny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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