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어린 시절 필자는 시골길을 걷다가 ‘미래 언젠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길을 만들 수 있다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상상에 빠지곤 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계단과 길은 에스컬레이터와 오토워크라는 이름으로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1980년대 방영되었던 미국 TV드라마 ‘전격제트작전’에는 주인공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스스로 운전을 하는 자동차인 ‘키트’가 등장했다. 당시에는 꿈의 기술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율주행자동차는 언제부턴가 더 이상 상상 속에서 머물고 있지 않고 현실이 되려고 한다.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문제점들을 되짚어 보기로 하자. 우선 윤리적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누군가를 죽이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논문은 사고를 피해 나갈 수 없는 세 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자율주행자동차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중에 답하기 가장 고약한 질문은 ‘보행자의 목숨과 운전자의 목숨 중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자율주행자동차가 어떤 선택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해야 하느냐?’이다. 해답을 내놓기 힘들다. 타인인 보행자의 목숨을 보호하는 이타적인 결정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한다면, 구매자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도록 운전하는 자동차를 사게 되는 셈이 된다. 그 반대의 경우 자동차는 주어진 상황에서 보행자의 목숨을 노리는 무기로 돌변하므로, 살인 병기들이 도로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용인해야 할지 고민스럽다.이런 딜레마들이 자율주행자동차의 상용화에 큰 걸림돌이지만, 조심스레 예견하면 문제의 핵심을 얼버무리며 자율주행자동차의 도입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만들고 교통사고의 사망자가 급감시킬 것이다’라고 주장하면서. 그리고 이동 중에 여가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설득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적어도 자율주행자동차는 신호 위반, 중앙선 침범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교통사고는 확실히 줄어들 게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은 여전히 핵심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놓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가 자율주행자동차 도입 결정을 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가? 결론은 자동차 산업의 거대 자본들이다. 고약한 질문을 던졌으니, 조금만 더 고약해져 보자.대형자동차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승객의 안전이다. 알아듣기 쉽게(물론 고약하게) 얘기하면, 더 많은 돈으로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하면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확률이 커진다. 돈으로 목숨을 연장하는 쿠폰을 구매하는 꼴이다. 고가의 자율주행자동차도 분명 더 안전한 자동차일 것이다. 어떤 면에서? 혹시나 자동차회사들이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운전프로그램을 심어 놓고, 자기회사 자동차는 승객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안전한 자동차라고 선전하지는 않을지? 아니면 자동차를 구매한 갑부는 튜닝회사에 들러(불법 튜닝이길 바라지만) 프로그램을 변경해,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이기적인 운전 알고리즘을 심어 놓지는 않을지? 돈으로 나의 목숨과 타인의 목숨을 맞바꾸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니, 이쯤 되면 많이 사악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배제하기 힘든 상상이니 끔찍하다.또 다른 문제점으로는 자동차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약 10%에 달한다는 것이다. 택시운전기사, 대중교통 종사자, 택배기사, 자동차정비소 직원, 자동차 보험 업계 종사자들은 단숨에 직장을 잃게 된다.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생산 대기업의 이윤을 극대화시키겠지만, 반대로 생활의 터전을 잃는 다수의 사람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미 고속도로 하이패스의 도입으로 통행료 징수원들의 일자리가 줄어든 사례를 목도하지 않았는가? 하이테크가 우리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인간의 행복까지 따라서 커지는 건 아니다. ‘과학기술과 인간’ 그리고 ‘자본의 지배와 인간의 소외’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다. 드디어 알파고와 이세돌이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기계대표와 인간 대표가 바둑대결을 벌이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신기술이 창출하는 부를 일부 재벌에게만 귀속시키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을 찾자. 발전과 성장으로 포장된 사이비 신앙을 강요하는 과학기술과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지금 인류가 당면해 있는 과제이다.

이형철 교수(자연대 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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