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처장과 인터뷰를 하다 할머니 얘기가 나왔다. 같이 지낸 세월이 20년 가까이 돼서 일까. 할머니에 대해 얘기하는 표정이 너무나 정겨워 보였다. 같이 목욕탕도 가고 지지고 볶고 싸우기도 한다는 할머니들과 시민모임이 합쳐 만들어낸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둘러보고자 한다●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인권, 환경, 소박함 그리고 할머니

지난 3월 4일 오후 본교 북문에서 410-1버스를 타고 경상감영공원 정류장에 내렸다. 햇살이 따뜻한 완연한 봄 날씨다. 그대로 무궁화 백화점과 경상감영공원을 지나 5분쯤 걸었다. 중부경찰서가 보였고 바로 그 앞, 아직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를 기리는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있었다.
한산한 거리에 2층으로 이뤄진 일본식 적산가옥 옆에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하 역사관)임을 알리는 조그만 간판이 보였다. 간판 외에 별 다른 꾸밈없는 역사관의 외관은 건축에서 담고자 한 시민단체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얼핏 보면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가옥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정했다. 그러나 처음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서 이 적산가옥을 매입할 당시 가옥은 눈에 보일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옥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건물은 불에 그을린 자국을 간직한 채 1920년대부터 1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역사관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희움 의식 팔찌’들이었다. 역사관 건립에 도움을 준 시민들의 이름과 함께 전시된 팔찌들은 희움 역사관 건립에 대한 시민들의 성원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1층의 <전시실1>은 ‘그날의 기억’이란 주제 아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과 위안부의 역사를 반증하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일본의 전쟁 발발부터 시작하여 아시아 각지의 위안소까지 표시한 지도가 전시돼 있다. 1층 전시실 옆으로 할머니들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의자와 함께 마련돼 있다. 그 영상 속에서 할머니들은 자신들이 보고 겪었던 일들을 증언한다.
전시실 입구 바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계단이 보인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발견한 지하 공간은 전쟁 대피소였다고 한다. 그 계단을 내려가면 왼쪽에 손 하나가 있다. 그 손을 잡으면 중앙에 놓인 새장처럼 생긴 작품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면서 영상이 재생된다. 작품 속에서 빛이 나와 좁은 지하 공간 벽에 일본군과 나비, 꽃의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동시에 쿵, 쾅, 쿵, 쾅 하는 열 맞춘 발소리가 마치 일본군이 다가오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들려온다. 그 뒤 영상에서 울음소리가 나온다. 그 모든 상황이 관람자에게 울림을 주었다.
1층 뒤쪽으로 나가면 라일락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 또한 적산가옥과 같이 세월을 보냈다. 건물이 지어졌을 당시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나이가 90년이 넘은 이 라일락 나무에는 지금까지도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는 고(故) 김순악, 심달연 할머니들의 압화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 ‘평화’를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원예작품활동은 할머니들의 상처받은 정서를 치료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할머니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큰새가 작은새를 채가는 것을 ‘전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등 작품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상황을 표현했다.
계단을 다 올라가면 TV 한 대가 있다. TV에는 할머니들의 간병비가 나오기 전까지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할머니들을 간호하고 쓴 간호일지의 내용이 나온다. 할머니들의 병원에서의 모습, 고속버스를 함께 타고 있는 모습 등 보다 일상적 모습을 볼 수 있다. TV앞 복도에는 시민모임이 만들어진 1997년부터 할머니들과의 함께한 발자취를 볼 수 있다. 그 옆, <전시실2>에서도 할머니들과 시민모임의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태블릿PC를 통해 자료 검색을 할 수 있다.
제일 안쪽의 교육관은 할머니들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돼 있다. 손수 이름 쓰는 것을 연습하신 공책부터 화투, 개인 편지까지 할머니들의 일상을 차지했던 물건들이 있는 곳이다. 2층은 공간 희움을 끝으로 구성이 끝난다. 공간 희움은 야외 활동을 위해 마련된 곳으로 지난 1월 28일 한·일 위안부합의 무효 주장 시민단체 대구행동 발족식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역사관 1, 2층을 통틀어 그리 넓은 전시 공간이 아니었음에도 공간을 할애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마련됐다. 리모델링 중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전동휠체어가 들어가는 화장실을 갖췄다.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처장은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두가 편리하다’는 생각으로 법적 기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했다”며 “리모델링으로 나오는 건축폐기물 또한 되도록 줄이고자 했다. 재능기부로 참여해 준 건축가들의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시민들과 함께한 희움 역사관의 개관
역사관이 개관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2009년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협조를 얻어내려 했지만 협의가 지지부진해졌다. 이 와중 고(故) 김순악 할머니께서 유산 5천 4백여 만원을 남겨주신 것을 건립기금 삼아 역사관 건립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3년 뒤 2012년 말 정부와 대구시에서 지원을 할 수 없다는 공식답변을 받아 추진위원회는 자체추진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이후로 건립기금을 모으기 위해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캠페인 및 모금 활동을 펼쳤다. 개인들의 재능을 발휘한 모금 참여도 이뤄졌다. 대구시립무용단원이었던 송경찬, 김분선 씨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로 구성한 춤으로 거기 공연을 하였고, 고(故)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발간한 그림책 ‘꽃할머니’의 권윤덕 작가의 인세 기부가 있었다.
또한 ‘희움’ 상품구매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많은 관심으로 희움 사업을 통해 역사관 건립 기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고려대학교 ‘블루밍 프로젝트’팀이 NGO의 재정자립을 지원하는 활동목표를 가지고 희움 사업국과 결합하게 되면서 브랜드 ‘희움’이 만들어졌다. 이로부터 희움사업국은 의식 팔찌, 압화작품을 모티브로 한 에코백, 파우치 등을 생산하게 된다. 수익금의 일부는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운동과 역사관 건립에 사용된다는 사실이 홍보되자 많은 사람들이 상품구매를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청소년, 대학생들이 많았다. 공동구매부터 시작해 참여해준 ‘희우머’들은 총 15만 명이 넘으며 이는 역사관 건립기금의 70%를 감당할 수준이었다. 이에 시민모임 이인순 사무처장은 “2013년 진행했던 토요시위에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캠페인에 참여하고 돌아가면서 주최했다. 또한 고려대 학생들 중에는 휴학까지 한 학생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해줬다”고 말했다.
건립기금이 모인 뒤, 역사관 건립을 위한 부지매입에 들어갔다. 1차 매입에서 적산가옥의 반을 확보해 2차 매입에서는 나머지 부분에 대한 매입을 진행했다. 부지매입이 이뤄지자 사업의 형태가 드러나고 있어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이는 곧 정부와 시의 지원에 대한 여론으로 커져 여성가족부와 대구시, 중구청이 지원 결정을 하게 됐다.
시민들의 성금과 희움 사업을 중심으로 정부의 지원이 모여 적산가옥의 리모델링에 들어가게 됐고 시민모임에서 다른 지역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전시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5일, 6년 동안 두 차례의 개관이 미뤄진 끝에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이 개관했다.
그러나 아직 희움’사업이 안정적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 이 처장은 “현재까지는 고려대학교 ‘블루밍 프로젝트’팀과 5년간 함께한 성과라고 보면 된다”며 “프로젝트가 끝나고 1~2년 뒤에도 재정적 자립이 가능하다면 그때는 안정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희움
이인순 사무처장은 “역사관과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보다 적극적인 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오시는 분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고 싶다”며, “정기적으로 꽃배달을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자원봉사를 위해 꾸준히 역사관을 방문하는 고등학생도 있다. 대구시로부터 운영에 있어 자원봉사 센터나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과 시민모임도 함께하여 밀도 있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또한 “고루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실천적이고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역사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고민하는 중이다. 재정적 측면과 관련해서 현재 입장료는 성인 기준 2000원이다. 가격으로 가치를 매기기보단 입장료를 지불함으로써 역사관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희움 사업에 계속 의지하기보다 재정적 자립을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대구행동에 대한 기자회견을 역사관에서 했었다. 기자회견이 역사관과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앞으로 우리가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를 개인의 문제로 대상화시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모두 함께 해결하고 관심 가져야 할 문제”라며 국민의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이한솔 기자/lhs15@knu.ac.kr
사진: 김서현 기자/ksh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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