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박물관은 여타 국립박물관보다 훨씬 개인적인 분위기가 날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오랜 시간에 들여 모아온 옛 물건들을 집밖으로 꺼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유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며, 그 박물관이 단순히 관장의 개인 창고일 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유물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선보여지는 순간, 그 박물관은 온전히 관장의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것이 되며, 우리가 공유하는 시대의 일부이며, 학습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지역 사립박물관의 역할은 더욱이 중요하다.
사립박물관협회에 등록된 박물관은 전국에 200여 곳. 그중 절반 정도가 제주도에 있으며 남은 절반 대다수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대구에서 사립박물관협회에 등록된 박물관은 단 3곳이다. 이번 기획의 박물관 ‘수’는 그 중 한 곳이다. 또한 등록된 곳 외에도, 시내버스를 타고 몇 분 걸리지 않는 곳에 도란도란 관장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동네 박물관들도 있다. 구석구석, 대구의 사립박물관을 탐방해보자●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얘기
 
예나 지금이나 ‘자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람들은 베개 위에 머리를 눕히며 고단했던 하루를 잠시 뒤로 하고 달콤한 꿈을 꾸기를 바란다. 옛사람들은 달콤한 꿈이 잠에서 깬 현실에서도 일어나기를 기원하며 베개에 자수를 놓았다.
박물관 ‘수(繡)’의 전시실을 가면 벽 한 면에 가득 베개들이 쌓여 있다. 박물관 ‘수’의 이경숙 관장(예술대 미술 84)이 10년 동안 수집한 베개들이다. 그러나 언뜻 베개의 앞면만 봐서는 그것이 베개인지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다. 베개의 양쪽에 모란, 국화, 패랭이 같은 화사한 꽃부터 멋들어진 활자를 올올이 수놓은 것을 쌓아 두니, 마치 작은 그림들이 모여한 폭의 큰 그림을 완성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베갯모는 베개의 양쪽에 수를 놓아 덮어 끼운 천 부분을 말한다. 옛날에는 시집가기 전 처녀가 거스러미 하나 일지 않은 고운 손으로 직접 베개를 만들어 혼수로 들고 갔다. 이 관장은 틈 날 때마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 베갯모를 수집해 왔다. 본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 관장은 “한국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을지 찾아보기 위해, 또한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방편으로” 베개 수집을 했다고 한다. 이 관장이 말했다. “어떻게 색깔을 이렇게 넣을 수 있을까, 어떻게 꽃을 이렇게 넣을 수 있을까, 이분들의 디자인 능력이야 말로 지금 우리가 봐도 놀랄 만한 미술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정신의 뿌리 속에는 문화 원형이 있다고 생각하고 유물을 모으게 됐어요” 그러다 이 관장이 느낀 건 “결국 사람의 이야기였어요” 이 관장은 종갓집을 찾아가 종손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이 유물의 가치가 예술성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종가가 아니더라도 시골에 가면 할머니들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를. 베개를 만들었는데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눈물로 베갯모를 적셨다는. 베개라는 유물에 사람의 얘기가 들어가면 한국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각이 되는 거에요. 베갯모에서 한국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베갯모를 보면 유난히 꽃이 많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실제로 꽃의 종류는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모란은 부귀를 뜻해요. 장미는 장춘화라고 늘 젊음을 유지하라는 뜻이에요. 당초는 영원하다는 뜻인데, 당초와 장미가 함께 수 놓였다면 그건 ‘젊음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기원인 거에요. 붓꽃은 출세, 패랭이는 효도. 딸기는 씨가 많으니까 다산을 기원하는 거지요. 어떤 것도 의미 없이 수놓거나 그려진 것이 아니란 거죠. 양반들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도 베갯머리 맡에 그런 마음가짐을 하고 잤던 거에요. 베개 만든 어머니들이 마음을 비밀 부호처럼 그렇게 숨겨둔 것이죠”
한편 박물관 ‘수’는 자수 전문 박물관으로 베갯모와 같은 자수 작품을 전시하지만, 민화도 동시에 다루고 있다. 실제로 민화와 자수는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모두 우리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담고 있는데, 하나는 자수로 표현됐고 하나는 민화로 그려졌을 뿐이다. 표현의 재료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자수는 여성의 예술이고 민화는 남성의 예술이다, 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장수, 출세, 부부의 화합, 다산 등 기원하는 바의 내용은 동일해요. 옛사람들은 목적이 있을 때만 그리지, 그 이외에는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었어요. 일반 백성들은 현대처럼 미적인 것만 강조하지 않고 기능을 중요시했거든요”
현대의 민화는 굉장히 활성화 돼 있다. 그림의 ‘본’이 있어 누가 그림을 그리든 똑같은 그림이 된다는 점이 현대 민화가 활성화된 이유이다. 이 관장은 “예술이 예술가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일반인들을 예술과 단절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민화는 그러한 예술의 특수성을 무너뜨려요. 똑같이 베껴 그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 민화가 ‘공감’의 키워드를 가지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며 소통할 수 있는 것이에요. 파편화된 사회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죠.”

박물관은 변화하고 있다
 
이경숙 관장의 휴대폰이 인터뷰 내내 울렸다. 이 관장은 “이맘때 학교에서 수업 요청이 와서 제일 바쁘다”고 말했다. 그때 한쪽에서는 누군가 재봉틀을 작동하는 소리가 요란했고, 다른 테이블에서는 대학생들이 바느질을 하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진열장에는 자투리 천으로 만든 작은 봉제 인형과 자수를 놓은 안경 케이스 같은 것들이 있었다. 분명 자수와 민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에 왔다. 그러나 그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공방 같았다.
이 관장은 “옛날의 박물관이 유물 전시 중심이라면 최근의 박물관은 아카데미형, 즉 교육 중심 박물관으로 변하고 있어요”라며 “자유학기제 등 교육 정책이 바뀌면서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 벗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외부 사회교육 기관 중에서도 이상적인 곳이 박물관이고, 각 학교에서도 계속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요청을 해오고 있어요. 지금의 사회는 박물관에게 전시만 하게 놔두지 않아요” 라고 말했다.
박물관 ‘수’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자수와 민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함과 동시에 전통문화 지도사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박물관 부속 ‘까치와 호랑이 문화예술 연구소’를 통해 전통문화교육 연구·전문가 양성·교재 제작을 체계적으로 진행한다. 또한 전통 문화 지도사 프로그램이 무료로 운영된다. “지난 5년 중 약 3년은 전통문화콘텐츠 연구로 보냈고, 지금은 연구된 것을 가지고 강사 양성에 신경 쓰고 있어요. 앞으로의 박물관 ‘수’가 해야 할 일은 전통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인데, 그것을 전달할 인력을 무료로 교육하고 있어요. 대신 1년에 한 번만 엄선해서 진행해요. 박물관 ‘수’가 플랫폼이 돼 한 명이라도 제대로 된 분을 배출해야 전통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잖아요” 이 관장은 이것을 ‘평범한 문화시민 교육’이라고 말했다. “3개월밖에 안 되는 과정이지만 이것만으로도 문화 ‘식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3개월 과정도 안 했다면 나는 나고 박물관은 박물관으로, 서로 영영 관심 밖이었을 거에요” 이 관장이 말했다. “프로그램을 통해 강사가 될 수 있지만 문화를 소비하는 역할도 할 수 있어요. 또 문화에 대한 의식을 가짐으로써 사회를 변화시킬 수도 있어요”

박물관의 사회적 책임

자수는 70년대 한국 산업의 기반이기도 했다. 더 오래 전에는 댕기나 발 등 생활 소품에 수를 놓음으로써 그것이 돋보이게 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었다. 자수는 생활에 꼭 필요했다. 그러나 이 관장은 “수를 예술이 아닌 공예의 수준에서 여성의 하찮은 일로 치부해오기도 했어요. 또 지금은 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생활 문화 공간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나 전통문화를 현재의 일상 공간에서 즐길 줄 알고 지속가능한 문화로 만들어가야 하는 게 우리 책임이에요”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전통문화를 지키는 데 대학생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학가에서 문화 운동을 많이 할 필요가 있어요. 대학생들이 문화에 관심이 없으면 미래가 없는 거에요. 취업에 목숨을 건다, 정말 암담한 거지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의 책임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것부터 문화 즐기기에 관심을 둬야 하는 거에요. 기성세대가 그렇게 하지 못했으니까요. 대학생들이 동아리를 만들거나 박물관을 방문하는 행동부터 시작해보는 거에요. 그 나라만이 가진 고유한 문화를 잘 지켜나가는 민족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민족이 될 수 있어요”
이를 위해서는 박물관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전 되게 우아하게 살 줄 알았어요. 그냥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그림만 가르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혀 그걸 할 수 없다는 사실. 박물관이 태어난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 ‘플랫폼’인 거에요. 그 박물관이 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있어요. 사회, 전통, 미래, 현재의 플랫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플랫폼. 사회 교육의 플랫폼이 되는 거에요. 이건 나의 유물이 아 니다, 내가 샀지만 나에게 온 것일 뿐이지, 내 것이 아닌 거지요. 그 이전에 조상들이 만든 거잖아요. 내가 관리를 할 뿐이지”
전국에는 박물관 간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박물관 협의회가 12곳이 있다. 그러나 대구지역 박물관 협의회는 유일하게 보조금 지원조례가 없다. 이 관장은 “서울의 경우 보조금을 받아 모든 박물관이 ‘뮤지엄 위크’를 진행하고 그 주간에는 무료로 운영해요. 반면 대구는 많은 박물관이 각자 활동하기만 할 것이에요”고 말했다.
이 관장이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의 심장이라면 작은 박물관들이 모세혈관이에요. 모세혈관의 역할을 해야 할 작은 박물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글,사진: 김서현 기자/ksh15@knu.ac.kr
사진: 김나영 기자/kny15@knu.ac.kr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