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그려보세요” 어렸을 때 나에겐 직각삼각형 하나와 크고 작은 사각형 두 개만 있으면 충분했다. 큰 사각형 위에 직각삼각형을 얹고, 작은 사각형은 큰 사각형 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크레파스를 내려놓고는 그 1차원적인 집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이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상상하는 것이다. 그림이 단순한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저 그림을 들여다보며 골똘히 즐거운 나의 집을 생각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마당이 넓은 집이면 좋겠다, 세모난 지붕에는 다락방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빠와 엄마는 1층에 살고 나는 2층에 살아야겠다. 상상 속 집의 온도까지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아늑하고 따뜻한 공기를 꿈꿨다. 내게 집이란 그런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12면 기획 ‘집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져 내린다’ 취재로 간 쪽방촌의 공기는 몹시도 추웠다. 시공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손이 차가워 둔해진 것이 느껴졌다. 문득 고개를 드니 쪽방이 있는 여관 복도는 복도 끝 작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있어도 어둑어둑했다. 발가락 끝까지 으슬으슬한 감각에 손을 비볐다.

70년대에 지어졌다는 여관은 마흔 살의 중후한 모습보다 온갖 산전수고를 다 겪고 으스러져가는 노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7-8개 정도 있는 나무문의 모양도 지금의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양새였다. 문 위에 네모난 나무창이 하나 나 있었는데, 얄팍하기 그지없어 겨울 한기를 막는 창 역할을 하기에는 요원할 듯싶었다. 서춘희 주택에너지 진단사는 나무창이 처음 만들 때는 틀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습기가 마르면 줄어드는 성질이 있어 나중에는 틈이 자꾸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나무창보다 심한 것이 알루미늄 새시(sash)다. U여관 옥상으로 나가면 건너편에 또 다른 쪽방 건물 뒤편이 보였는데 창틀이 모두 알루미늄으로 돼있었다.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육안으로도 창틀 사이에 틈이 벌어져 완전히 닫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겨울이면 저 창은 차갑게 얼어버릴 것이고 여름에는 만지기도 무섭게 뜨거워질 것이었다. 어린 시절 집을 그릴 때, 단 한 번도 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실내 온도는 채 7도를 못 미치고 방 크기는 7걸음이 안 될 거라는 생각 또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도 못해본 곳에, 대구에서도 천 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기술·가정 용어사전(2007)에 따르면 주거의 기능은 가족생활 보호 및 유지기능, 가족양육 및 보호기능, 휴식 및 노동력 재생산 기능을 비롯하여 가사노동의 장소가 되고 지역사회 생활의 기반이 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보호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2평 남짓한 방에서 노동력 재생산을 이루고 지역사회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게 가능한가? 더욱 암울한 사실은 서울에 사는 52만 명의 청년(19~34세)이 1인 가구 최저 주거기준 면적(14㎡)에 미달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시는 올해를 ‘청년대구 건설 원년’으로 정하고 이제 막 청년주거실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는데, 참 늦은 시작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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