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서 날씨가 많이 쌀쌀해지고 있다. 그 때문일까 ‘과잠’이라고 불리는 각양각색의 학과 점퍼가 두드러지게 많아졌다. 과잠은 강제로 입던 교복과는 달리 시키지 않아도 입는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대학생들은 왜 ‘과잠’을 입게 된 것일까? 과잠의 유래와 과잠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를 알아봤다● ‘과잠’은 어디에서 왔을까?

1865년 하버드 대학교 야구부에서 유래한 야구 점퍼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야구팀, 미식 축구팀 등 각종 운동부에서 쓰이는데,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고 그들의 능력을 자랑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과에서 ‘과잠’이라고 불리는 단체복을 맞춰 입는 현상이 90년대 후반부터 서울 지역의 명문대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과잠’ 문화는 대학생 사이에서 유행되었고, 현재 과잠을 교복처럼 입는 모습을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됐다.본교에 학부생으로 재학했던 이강형 교수(사회대 신문방송)는 “85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과잠과 비슷한 개념의 단체복은 없었다”며 “그 당시의 단체복은 경북대학교 학생들이 학과와 상관없이 체육 시간에 입었던 연보라색 체육복이 전부였다”고 말했다. 이어 “본교에 과잠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으로, 10년 정도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특이한 ‘과잠’을 찾아서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안진산(인문대 국어국문 13)대부분의 과잠은 학과 고유의 옷임에도 불구하고 학과와 전공이 영문 필기체로 새겨지는 정형화된 디자인으로 제작된다. 하지만 똑같은 디자인으로는 소속감을 제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어국문학과라는 전공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독특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과잠을 제작하기 위해 김춘수 시인의 '꽃'의 일부 시구를 등에 새겼다.

Cogito ergo sum 이관엽(인문대 철학 11)영어로 philosophy를 새기는 것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문구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철학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명제인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 'cogito ergo sum'이라는 표현을 새기게 됐다.

 

매년 다른 디자인으로 자율성 추구박재성(수의대 수의예 15)학번마다 디자인이 다른 이유는 단일된 것을 추구하기보다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14학번의 경우 과잠이 2가지인데, 13학번 선배들이 디자인해준 것에 더해 자율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서 과잠의 종류가 2가지가 됐다. 수의대라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수의대를 상징하는 마크인 칼이랑 뱀이 새겨진 문양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남성용, 여성용으로 디자인이 나뉜 학과신준기(생과대 의류 11)기존의 과잠은 호피 무늬였는데, 여성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남학생들이 잘 구매하지 않았다. 학과 내 남학생끼리 의논한 결과 지금과 같은 항공점퍼의 디자인을 참고한 과잠을 만들게 되었다. 과잠 디자인의 기본은 팔 부분의 학교마크와 앞부분의 스냅 단추 등의 학교 및 학과 레터링이지만 이 부분을 바꿔 독창적으로 새롭게 만들어 봤다.

 

‘과잠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학생들이 과잠을 입는 이유로 제시한 것은 ‘따뜻하고 편하다’는 것과 ‘디자인이 예쁘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표현석(사범대 수학교육 08) 씨는 “편해서 입은 것도 있지만, 날씨가 추워져서 입었다”고 말했다. 배준호(경상대 경제통상 12) 씨는 “우리 과의 과잠이 다른 과보다 디자인이 예뻐서 입는다”며 “매일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데, 과잠을 입으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유학생이 과잠을 입는 경우도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유학생 Suvonova Ugiloy(사회대 신문방송 15) 씨는 “학교와 학과를 좋아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서 입는다”며 “웬만한 외투보다 따뜻한 것 같다”고 말했다.한편 과잠이 학벌주의를 조장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승우(농생대 임학 14) 씨는 “품질에 비해 비싼 것 같다”며 “학교 마크가 있기 때문에 과잠을 많이 입는 것이지, 기능이나 디자인이 좋아서 입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배준호 씨는 “열심히 노력해서 입학한 학교나 학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지 않으냐”며 “과잠을 학벌주의나 폐쇄성에 연결 짓는 것은 쓸데없는 열등감을 가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재윤(사회대 지리 15) 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남을 무시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고 남들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교복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개성을 해치는 측면에 대해서 표현석 씨는 “교복과는 다르게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입는 것”이라며 “개성을 해치는 측면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과잠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

과잠을 입는 현상에 대해 김지호 교수(사회대 심리)는 “중·고등학생 때 강제로 똑같은 옷을 입었던 것을 넘어 자신의 소속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심리가 표현된 것”이라며 “과잠을 입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이고, 디자인을 차별화하여 내부적으로는 자신들끼리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소속 집단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위치와 우월성을 드러내려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내집단이 생기면 외집단이 생기는데, 유니폼이라는 게 다 그렇듯 내집단을 형성해 남들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면서도 “대학 생활을 하면서 소속감을 느끼고 학교와 학과에 대해 애정을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과거 중·고등학생들의 ‘패딩 문화’와의 차이에 대해서는 “중·고등학생의 패딩 문화는 자신이 이 정도 가격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주위에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며 “과잠의 경우 패딩보다 싸다는 점에서 경제력을 과시하려는 현상과는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과잠을 봄가을 환절기에 많이 입는데, 적당한 가격대에 디자인도 괜찮으면서 따뜻하다는 실용적인 동기가 있다”며 “‘과잠 현상’은 앞서 말한 소속감, 정체성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이런 실용적인 면 때문에 생긴 현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smj15@knu.ac.kr정수정 기자/jsj15@knu.ac.kr사진: 특별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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