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은 서럽다. 사람도, 돈도 중심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변방에서의 예술은 더 서럽다. 무관심과 단조로움 속에서 변방의 예술은 쉽게 쇠락하고 갈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여기, 예술이 메마른 도시에서 예술을 지키려는 변방의 시인이 있다. 정훈교 시인(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은 변방의 예술을 지킬 요새,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고 그곳에서 문학 다방을 열었다. 정 시인은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어와 예술가와 자연스레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자, 변방의 젊은 작가들이 꿈꿀 수 있는 공간을 꿈꾼다. 정훈교 시인이 누구인지, 시인보호구역이 무엇인지, 이제 다방 문을 한 번 두드려볼까?●

문학 다방, 문을 열다지난 6일 늦은 5시, 동인동 한 구석에 있는 ‘시인보호구역’에서 문학 다방이 처음 문을 열었다. 언뜻 보기에 동네 작은 카페 같은 이곳은 ‘시인보호구역’이라는 범상치 않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자그마한 공간은 금세 개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20명 남짓의 사람들만으로 충분히 붐볐다. 이날 행사의 사회를 맡은 다방 주인 정훈교 시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시인이거나 화가, 또는 교수, 조각가, 언론인 등으로 다양했다. 축사를 위해 시인이자 영남일보 신문기자 이하석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문학 다방을 하면 돈이 많이 드는데 이래가지고 돈이 벌릴 지” 이 시인의 걱정 어린 농담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정훈교 시인은 욕심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느끼는 게 자기 자신을 선전하는 데 탁월하고, 열정적입니다. 그게 글 쓰는 것과는 크게 관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화기를 끄고 소식을 닫고 혼자 있는 것이나, 모여서 소통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과는 상관이 없거든요. 우리(원로 문인들)가 볼 때는 젊은 친구가 이렇게 열정적이니 낯설면서 겁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대구에서는 젊은 시인들을 보기 힘듭니다. 이곳이 젊은 시인들의 해방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의 젊은 시인들의 바람이 대구 문학을 흔들었으면 좋겠어요. 정훈교 시인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다음에는 김용락 시인이 축사를 했다. 김 시인은 “70년대에는 유경다방에서 대구 시인들이 문화판을 벌였어요”라며 “저랑 저 또래, 원로 예술가들이 와서 차도 마시고, 한 잔도 하고, 후배들이랑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하고…그러다 밖에 나가면 눈이 펑펑 내려서 길이 끊기는, 이런 풍경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했다.

대구 예술을 보호하라, 시인보호구역시인보호구역은 정훈교 시인을 포함한 대구의 젊은 시인 몇 명이 모여 김광석 거리에서 작업실을 연 것이 그 시작이다. 김광석 거리가 관광지화 되며 순수 예술가들이 설 자리를 잃고, 시인보호구역은 동인동으로 이전했다. 이후 정 시인이 혼자 시인독립구역을 운영해 오다, 작업실을 리모델링하고 문학 다방을 열었다. 정 시인에게 시인보호구역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정 시인은 “‘보호’라는 이미지예요. 요즘은 시인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시인보호구역 자체가 공간을 보호한다는 개념도 있고 시 자체를 보호한다는 개념도 있어요. 나아가서 보수적인 도시인 대구에서 예술을 보호한다는 의미도 있는 거죠”라며 “지역적 한계를 두지 않고 전국을 생각하고 이름을 지었어요. 여러 프로젝트, 공연, 문학 다방도 했고, 나중에는 1인 출판사도 열 예정이에요. 그러면서 시인보호구역 1호점, 2호점도 내는 거죠”지금까지 시인보호구역이 진행해왔던 행사는 시 낭독회, 글쓰기 교실, 캘리그라피 교실 등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번개프로젝트’다. 대구의 젊은 시인들과 타 장르 예술가들이 번개처럼 만나 무대를 연출하는 기획성 프로젝트로, 지난 8월 말 시를 노래로 부르는 그룹 ‘트루베르’의 공연으로 첫 번째 프로젝트가 열렸다. 홍보 부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시인이 들려주는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라는 그들의 노래는 새로웠다. 백석의 시에 멜로디를 덧붙인 것이다. 정 시인은 “대구에 젊은 시인들의 시 한 편씩 해서, 트루베르 ‘대구 젊은 시인편’ 음반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또한 정 시인은 시인독립구역의 운영에 대해 “앞으로 대구 문학예술계 사람들의 후원을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변방의 시인, 정훈교정 시인은 올해 말 회사에서 10년을 근무하다 퇴사하고 전업 시인의 길을 택했다. 어떻게 시를 쓰게 됐는지 묻자 정 시인은 “혼자 좋아서 쓰던 것이었어요. 시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으니까 제대하고 와서는 누구 시를 좋아하기 보다는, 어떤 시를 쓰겠다는 목적이 생겼어요. 취약 계층,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쓰고 싶어졌어요”라고 말했다.정 시인은 스스로를 ‘변방의 작가’라고 칭한다. 정 시인은 “비록 변방에 있지만 나의 작가로서의 자존심은 떳떳하다는 말이에요”라며 “쉽지 않죠. 그러면서 문학 다방도 열고. 별종이에요, 내가.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걸 다 무시하려면 시를 잘 써야 해요. 그런 사명감이 늘 있어요”라고 말했다.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시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시는 일반 글이랑 달라요. 시라고 하면. 좋은 글은 입말처럼 자연스러운 말로 쓴 글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의 말로 쓰는 동시가 제일 좋아요. 가장 따뜻하거든.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말을 쓰는 게 좋다는 게 내 지론이에요. 난 시 이론을 배우지는 않았어도 시 강의를 해요. 예술에 대한 자기 세계가 확실하면 누구라도 예술을 할 수 있는 거예요”오늘날 시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여겨지는 이유를 물었다. 정 시인은 “독자와 시인 모두 잘못이 있어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려워요. 무슨 말인지는 이해가 안 가죠. 독자하고 소통이 안 되는데 그게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통이 안 된다는 것은 보편성이 없는 것, 즉 공감이 안 된다는 것이에요”라며 “다양한 시들이 존중받아야 하는데, 독자들이 권위 있는 교수나 주류 문단에서 호평을 받는 시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예요”라고 말했다. “소통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인이 밤 새면서까지 시를 써서 낸다는 건 결국 독자들이 본다는 거잖아요? 그 자체가 소통이에요. 그런데 시 내고 소통을 하지 않는 건 이율배반적이지 않나요?”  시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이상화, 김재진, 정호승…과거 대구는 시인들의 도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대구 문학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시인들을 보기 힘들다. 정 시인은 “2-30대 시인이 대구·경북을 합쳐서 10명이 안 돼요. 서울 가면 그래도 수십 명은 돼요. 소위 잘나가는 문단이 다 거기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시인이 ‘등단’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인정해 주는 관례가 있다. 등단이란 시인이나 소설가가 잡지에 작품을 발표하거나,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자신의 작품을 출판해서 문학계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젊은 시인들은 일부러 서울에서 등단하고, 대학원까지 서울로 가요. 나는 그런 게 싫어서 대구에서 등단했어요. 내 전공도 문단에 선후배, 선생님들이 많은 국문과, 문창과가 아니잖아요. 독립군이죠. 험난한 길인 걸 알지만, 내가 스스로 중앙이 되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어요. 내가 잘 쓰면 되는 거잖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보호구역을 운영하고 문학 다방까지 연 이유에 대해 정 시인은 “안타깝고 불쌍해요”라고 말했다. “젊은 시인들이 앞으로 더 줄어들 거예요. 그래도 문학 다방이라도 만들면 젊은 시인들이 오잖아요. 모여서 문학을 해볼 수 있고. 서울 올라가는 것도 다 그런 이유잖아요? 내가 역량이 되면 그 친구들을 도와줄 수 있고. 대구에는 젊은 시인들을 위한 인프라가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없으면 끝나는 거예요. 결국 대구 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꾸지람이죠”정 시인은 “이렇게 나서잖아요? 일각에서는 욕할 거예요. 시인이 고상하지 못하다고. 하지만 알면서도 가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서현 기자/ksh15@knu.ac.kr사진: 정수정 기자/jsj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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