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다 회사에 먼저 발을 들인 김다한 씨(21, 이하 김)

대학의 틀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온 박인화 씨(22, 이하 박)

입시에서 거부당한 그리고 대학을 거부한 양지혜 씨(19, 이하 양)

안녕하세요. 저는 경북대신문 취재팀 이승연 기자라고 합니다. 이번 경북대신문에서는 '대학의 의미'라는 주제의 기사를 기획 중입니다. 이번 기획은 10대들의 대학 진학률이 80%를 훌쩍 넘은 현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이 진정한 배움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지, 나아가 대학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해 다뤄보는 기획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통념을 깨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거나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을 함께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Q.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대학 진학이 아닌 입사 준비를 했어요. 고3 때 대구은행 고졸채용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죠.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아 대학 입시보다 입사에 더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어요. 입사 생활을 하던 도중 들은 말인데, 나중에 진급을 하기 위해선 대학 졸업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영남대학교 경제학과에 야간 대학생으로 다니고 있어요. 일이 바빠 일반 대학생들처럼 꼬박꼬박 나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박: 고3 때 수시로 대학에 합격했지만,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를 했어요. 재수를 준비하던 중, 우연히 팟캐스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당시 최대 이슈였던 송전탑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밀양으로 떠났어요. 현장에 가 보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고등학생 때도 촛불집회는 가봤지만 수십명의 연대자들이 할머니들을 보호하고, 레미콘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때의 모습이 눈에 밟혀 일을 계속했고, 그러던 중 대책위원회 일을 권유받았을 때 대학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슬프더라고요. 오히려 후련했어요. 재수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알게 됐고, 대학과 그 속의 생활이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렸어요. 그리고 저는 대학에 가지 않았죠.

양: 저는 흔히 말하는 모범생이었어요. 이런 저를 바꾸어 놓은 건 학내 ‘자치법정’이라는 곳에서 학교 규정을 위반한 친구들을 만난 경험이었죠. 교칙을 위반한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들으니 그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가르는 기준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복 위에 크로스 백을 메는 것조차 금지하는 걸 보면서, 다양성을 하나의 획일적 기준으로 묶어두려는 학교가 학생들보다 문제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내가 소위 ‘모범생’으로서 당연히 누려왔던 게 실은 알량한 권력이었고, 입시 체제에 순응하는 데에서 오는 보상이었다는 걸 깨달았죠. 고민 끝에 저는 대학에 가지 않기로 했어요.

Q. 우리사회에서 대학의 보편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김: 향후 자신이 바라는 직업을 위해 거쳐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박: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다 가는 곳이니까요. 평범하려면 당연히 가야하는 곳이에요. 대학에 가지 않으면 공부를 못했다거나, 사고를 많이 쳤다거나… 그런 하자가 있다고 여겨지죠. 출신 대학이라는 게 꼬리표처럼 남아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계급이 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동시에 계급이 토대이기도 하고요.

양: 가장 보편적인 의미는 역시 ‘학문과 연구를 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의 설립 목적, 대학의 존재 이유가 학문을 위한 것이잖아요.

Q. 그렇다면 자신의 눈에 비친 대학은 어떤 곳인가요?

김: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해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뛰어가는 곳이죠. 12년간의 시간을 보낸 초중고등학교 생활보다는 확실히 다른 삶을 즐길 수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도 봐요.

박: 저는 대학을 필요 없는 곳이라 봐요. 대학이 있어야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대학을 다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 시선들, 당연히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들에 떠밀려 가는 게 아니라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학은 배움의 장소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성과 학문을 위한 평등한 장소로요.

양: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다가오는 대학은 학문의 공간이라기 보단 생존을 위한 목적지라고 느껴져요. 대학 아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어서 대학에 가는 사람도 참 많은 것 같아요. 사회 자체가 대학을 꼭 거쳐 갈 관문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요. 제 친구는 물리치료사가 꿈인데, 물리치료사가 되기 위해서는 대학에 꼭 진학해야 한다고 해요. 물리치료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뛰어난 제 친구가 낮은 성적 때문에 대학에 우수수 다 탈락했을 때 느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대학은 장벽이겠구나. 뛰어넘지 않으면 다음을 살아갈 수 없는.

Q. 그렇다면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김: 아마 저와 같이 취업이라든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진학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지 않을까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걸 잡는 게 우선이니까요.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는 부가적인 선택지니까요.

박: 제가 같은 질문을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들에게 한 적이 있어요. 대답을 들어보니 그 친구들은 하고싶은 일이 명확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어요. 한 친구는 흙집을 짓고 싶어했고, 제주도에 가서 그 방법을 배웠어요. 또 다른 친구는 여행을 좋아해 남미로 떠날 예정이에요. 그 친구들의 꿈은 명확하고 선명하고 예뻐요. 대학이라는 틀이 가둘 수 없는 꿈이죠. 

양: 저는 대학을 안 간 사람도 있지만 못간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등록금을 내기엔 형편이 부족하다든가, 공부를 잘 못한다든가. 아니면 제 주위에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도 있어요.

Q.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김: 설계, 건축, 의학 등 굉장히 많은 전문 분야와 관련해서는 대학에서의 학습이, 또 대학 진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학습 역량을 쌓기 위해서나 적성을 살리기 위해서 대학에 가진 않죠. 자신과 맞지 않는 과에 점수를 맞춰 진학해요. 거리가 먼 전공을 가지고 취업을 해 퇴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박: 자기의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려요. 대학은 그 종착점이죠. 성인이 됐으면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선택할 것인지를 찾아야 하는데, 남들을 따라 똑같은 곳으로 흘러가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대학에 간 사람들은 대학 밖에 있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져 버려요.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왜냐고요? 나는 아직까지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니까요. 외부로부터의 모든 감각을 차단시켜 버리는 곳이 대학이 아닐까요.

양: 저는 ‘기득권’으로서의 대학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대학이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학력과 학벌을 취득하기 위한 공간이 되어 버렸잖아요. 대학은 ‘기득권’이 아니라 ‘공공성’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배우는 데에는 조건이 필요하지 않아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만약 다시 ‘대학’이라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 같나요?

김: 사실 지금도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로망은 가지고 있어요. 또 대학에서의 경험도 무시 못할 만큼 크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제가 선택한 길에서 얻은 게 더 많아요. 대학 대신 선택한 것에서 또 다른 경험들을 얻었죠. 

박: 국내든 외국이든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는 대학에 갔을 것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아마 안 그랬을 것 같네요. 저는 글쓰기를 배웠기 때문이에요. 한글만큼 예쁜 말은 없잖아요. 만약 대학에 진학했더라면 그 공부를 계속했을 것 같아 만약 외국의 대학에 나갈 기회가 있더라도 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양: 저는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입시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신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대학을 거부한 가장 큰 이유는 대학이 저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런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대학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입시를 하기 싫은 사람. 이런 사람들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모두가 대학에 가야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Q.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김: 대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에요. 대학이 필수적인 요소라는 고정관념에 얽혀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 뿐 아닌 사회의 모든 부분이요.

박: 저는 아직 하고 싶은 것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여행에서 선택이라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요. 청소년들이 이런 여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자신이 바뀔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대학, 전공 그리고 학년이라는 틀에만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선택지를 좁히는 건 안타까운 일이에요. 

양: 저의 대학 거부는 영웅적인 선택이 아니에요. 오히려 나약한 개인으로서 제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입시를 치르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어요.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 저는 잘 몰라요. 그럼에도 제가 대학 거부를 한 건, 대학이 필연적으로 입시 경쟁의 정점이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학을 거부함으로써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살아남는 경쟁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어요. 

제1회 EBS 시청자상 수상작

EBS 다큐프라임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채라다 PD

대학은  필수적인 요소가 돼 버렸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고등학교 졸업장만 들고 사회에 뛰어들긴 힘들어요.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의 편견이 존재하죠. 그래서 다들 대학에 가잖아요. 저도 그래서 대학에 진학했어요. 이미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은 그런 요소에요. 다른 사람에게 대학에 간 이유를 물으면 ‘남들 다 가니까’라고 대답하며 부끄러워해요. 하지만 이건 부끄러워 할 게 아니에요. 공부에 큰 뜻을 품고, 자기 스스로를 찾기 위해 대학을 진학하는 고등학생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대학에 안 갈 순 없어요. 대학 진학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무작정 박수만을 쳐줄 수는 없고요. 우리는 대학에 이미 와 버렸고, 이미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하나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건 ‘나’에 대한 것이에요. 내가 누군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말이에요. 그 범위가 학문적인 요소로만 한정되진 않아요. 음식이든 음악이든 드라마든 책이든 무엇이든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이죠. 그것이 대학에서의 공부이고, 공부여야만 해요. 사람이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데 투자해요. 그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죠.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 고통스러워도 행복해요. 결국 그걸 찾기 위해 우리는 공부하는 것이고, 그 공부의 마무리를 하는 곳이 대학이에요. 물론 그 방법과 과정은 사람마다 달라요. 똑같으면 문제가 있겠죠.

대학은 취업을 위한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대학이 지성의 상아탑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다고, 취업양성소라고 비판해요.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왜 대학에만 지식과 지성을 논한다는 잣대를 대는 건가요? 너무 고리타분한 말이지 않나요? 제가 말하는 취업은, 자기 적성을 찾아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걸 말하는 것이에요. 대학은 그를 도와야 하죠. 하지만 취업양성소인 대학을 나와도 바라던 취업이 안되는 게 문제죠.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