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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새 책도 잘 안 보는데 헌책을 볼 리 없다. 두꺼운 문사철 분야를 파고들 시간도 없다. 우리가 헌책방을 가지 않는 이유는 여러모로 명백하다. 그러나 가을, 가끔 책 냄새를 맡으며 책장 넘기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우리학교 옆에 붙은 가까운 합동북을 갈 수 있고, 코스모스나 월계서점 같은 시내의 헌책방, 주택가의 물레책방을 찾아갈 수 있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책장을 들여다보고 당신의 책장을 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헌책과 피아노 선율이 함께하는 그 곳, 월계서점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1954년 창업 이래 3대째 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지기의 미소 섞인 인사가 헌책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오전에는 피아노, 오후에는 기타 연주, 일을 마친 직장인들이 자주 찾는 6시 이후에는 대중가요가 흘러나온다. 책장 한 쪽 편에 탁자가 놓여 있어 차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돼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책보다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책을 사기 위해 대형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이에 대해 책방지기 K 씨는 “요즘 같은 전자책이나 스마트 폰 시대에 와서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점이 아쉽다”며 “책은 사진과 자료, 정보가 남아 있고 서재에 꽂아 두고 두고두고 볼 수 있지만 스마트 폰에서 보는 것들은 스쳐가기 때문에 영속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많은 헌책방들이 대형서점에 밀려 문을 닫게 되었는데 입고량에 비해 출고량이 적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과거 50여 개의 서점이 있던 이곳의 풍경도 지금의 상황이 된 것처럼요”라고 말했다.
이어 “헌책방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책 중에 필요 없는 책을 사서 필요한 사람에게 파는 사회적 기능을 해요. 책이 필요 없는 사람은 경제적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좋고 그 책이 필요한 사람은 싼 값에 그 책을 사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먼지 하나 쌓여 있지 않고 가지런히 정리된 책장에서 그의 헌책방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헌책방에 대한 애착은 100-300년 된 고서들로 전통 한옥 구조로 된 책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꿈으로 이어졌다. 그는 “박물관의 마당에는 고서들로 석가탑과 다보탑을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산동 네거리에서 바로 보이는 그 곳, 코스모스 북

코스모스 북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본 2층 건물과 책방 근처 400평의 창고에 있는 책을 모두 합치면 약 120만권이 된다. 이곳은 온라인에서도 운영되고 있으며 2대째 64년간 이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책방지기 배삼룡 씨는 “헌책은 3차로 검증된 책이라고 할 수 있지요. 1차로 한 소비자가 고민 끝에 정가를 주고 산 것이고 2차로 책방지기를 통해 가게에 전시됩니다. 마지막으로 헌책방에서 다시 그 책을 사는 소비자를 통해 검증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또한 “헌 책에는 줄이 그어져 있고 메모해 놓은 흔적이 있는데, 이것은 그 분야를 공부한 사람의 지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에 이 책을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지식까지 갖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서재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는 20년 전쯤 인간관계에 관해 300권이 넘는 책을 구입했던 한 젊은이를 회상했다. “그 당시 27세의 젊은이는 책 자체를 사간 것이 아니라 검증된 방대한 양의 지식과 정보를 얻은 것이지요. 그 분야에 있어서 그는 아마 거의 최고일 겁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자신이 설계한 <산‘책’길>에 대해 귀띔했다. <산책길>이란 현재 그의 책방 앞에 높이 6m 정도의 책을 쌓고 500m 가량의 터널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길을 산책하며 책을 구경하고 구매할 수 있는 길을 말한다.
이어 그는 “헌책방이 문화의 거리를 만들지 않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죠. 시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아이템을 연구하고 지원해야 가능합니다. 그는 이렇게 되면 그 문화를 누리는 시민들도 좋고, 일자리도 창출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대 고무신 신던 시절, 합동북

본교 서문에서 나와 경대교로 가는 대로로 걸어가면 87년부터 본교와 함께 해온 헌책방 ‘합동북’이 보인다. 이곳에는 유리문을 열면 와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헌책이 가득 쌓여 있다. 책을 파는 곳은 그 옆 건물의 3층이다. 그곳 또한 책의 미로가 펼쳐진다. 기자의 키만큼 쌓인 책들을 쓰러뜨릴 새라 그 사이를 움직이는 발걸음도 조신하게 만든다. 합동북의 나이 지긋하신 사장은 30여 년을 그 책들 속에 파묻혀 보냈다. 합동북 사장 김창호 씨의 기억에는 과거 본교생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30년 전에는 시골 학생들이 많아서 흰 고무신 신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농사짓는 사람들은 경제적 형편 탓에 공납금 대기 힘들잖아요. 경북대는 공납금이 저렴해서 여기저기서 많이 왔어요. 고무신은 한번 신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잘 안 닳아서 안 바꿔도 돼요. 그때는 학생들이 그만큼 알뜰하게 공부했어요”
합동북이 보유한 책은 약 100만 권으로, 한강이남 최대의 헌책방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약 35년 전에 대구 시청 쪽에서 5년간 서점을 하다 본교 옆에 자리를 옮겨 호황기를 누렸다. “그때는 학생들, 교수들이 책을 많이 봐서 하루에도 3-400명은 몰려왔어요. 하루에 한 트럭씩 가져와서 2-3일이면 다 팔았어요. 안 팔리는 책이 없었어요. 인문대 학생들이 참 많이 왔고, 사회대, 공대 학생들도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봐서 자주 찾아왔어요. 그때는 책이 많이 비쌌잖아요”
그러나 대구지역 대부분의 헌책방이 세월과 함께 하나 둘씩 문을 닫거나 쇠퇴했고, 그 흐름에 합동북도 예외일 수 없었다. “요새는 책을 한 트럭 가져오면 두 달 걸려도 다 못 팔아요. 남은 건 폐지로 주거나 해요”
점점 줄어드는 손님 수에 합동북은 새로운 방안을 찾아 나섰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헌책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헌책 검색 포털사이트에서 방문자 수 1위를 달렸고 실제로 하루 접속자가 2만 명이 넘었다. “사이트 만든 지는 15년 됐어요. 어느 순간 인터넷,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다 사더라고. 오프라인으로만 사람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우리 사이트 판매율이 전국 1위예요. 그런데 전체 독서인구가 자꾸 줄어드니까 사실 많은 편도 아니에요”
지금의 합동북은 책 애호가들의 성지가 됐다. 멀리 서울에서, 여러 지방에서 소문을 듣고 합동북으로 찾아왔다. 김 씨는 “좋은 책은 언제든 팔리게 돼 있어요”라고 말했다. 합동북은 백범 김구 선생이 직접 친필 사인한 백범일지나 이육사 전집 등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좋은 책들을 찾기 위해 멀리서도 합동북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동북은 마니아들의 ‘성지’보다 옆 학교 학생들과 교수들로 활기를 띠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를 원한다. 기자가 머물렀던 3시간 동안 헌책방을 찾은 손님들은 10명 남짓했다. 한 공간에 수십 명의 학생들로 가득했던 과거의 합동북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취향의 공동체를 만들다, 물레책방

범어동 수성경찰서 사이에 난 주택가 골목으로 죽 걸어가면 물레책방이란 초록색 간판이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면, 사방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구석에는 스크린과 조그마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고 책방 한 가운데는 책방지기가 직접 제작한 원목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다. 동네 카페나 누군가의 비밀 서재와 같은 공간이다. 물레책방의 대표이자 대구에서 가장 어린 책방지기, 독립영화 감독인 장우석 씨는 5년 5개월 전 이 책방을 열었다. 물레책방의 ‘물레’는 비폭력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간디의 물레에서, 그리고 장 씨가 영화감독이니 동그란 영화 필름통 모양에서 가져온 말이다.
“책을 읽기도 많이 읽었지만 책에 대한 수집욕 같은 게 있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헌책방을 접했다가, 대학생 때 책방을 다니면서 읽고 싶은 책을 모았어요. 그러다 대구 지역으로는 성에 안 차니까 다른 지역에 있는 책방에 가기 시작했어요. 제주도까지도 가 봤죠. 헌책방은 새책방과 달리 특색이 있어요. 주인의 성향에 따라 배치도 다르고, 취급하는 책도 다르고, 지역별로도 달라요. 인천이나 부산 같은 경우는 지자체의 지원이 있으니까 책방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반면, 대구는 그런 게 없어서 노쇠하신 책방 주인 분들이 문을 닫고 인수할 사람도 없더라고요. ‘그 헌책방들에 있던 수천 권의 책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제가 헌책방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전쟁 때 지식인이나 출판업자들이 보따리에 책을 싸매서 대구나 부산 지역에 피난을 왔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부산에는 보수동 책방골목을 이뤘고, 대구에는 시청 주변과 대구역에 헌책방의 문을 열었으나 점점 쇠퇴해 갔다. “사양사업이 되니까 지자체에서 내버려 두고 있으면 20년 안에 다 사라지지 않을까, 내 아이들이 헌책방이 어떤 공간인지 모르고 자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물레책방에는 일반 헌책방과는 다른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경영 원칙부터 다르다. 장 씨는 “절대 기존 책방의 경쟁 상대가 되면 안 됩니다”고 말했다. “물레책방이 생김으로써 기존 책방 경영이 어려워지면 안 됩니다. 저는 헌책방에서 제값을 주고 책을 사와요. 그렇게 제가 10년 가까이 모아온 1만 권의 책으로 책방을 시작한 겁니다” 또한 “물레책방에서 행사를 할 때, 그 행사 입장료로 책을 받습니다. 제 취지를 아시는 분들은 책을 기증해주시죠. 헌책방의 주수입인 참고서나 교과서는 절대 팔지 않고요, 인문학 단행본 중심으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물레책방은 책을 판매하는 곳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문화공간이다. 극장에서 보기 힘든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매달 상영하고 있다. 토크콘서트, 월간 작은 책 대구 글쓰기 모임, 문화 관련 행사 대관도 이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손님들이 책을 안 좋아하더라도 영화를 한다고 하면 영화보러 오시면서 ‘어, 책이 있네’라는 식으로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들의 목적이에요.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한 명이라도 그런 사람들을 발굴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물레책방의 팬이 되어, 문화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물레책방이 계속 운영될 수 있도록 지탱한다.
또한 물레책방에는 대구지역의 출판사와 지역 작가들의 책, 작가들의 서명이 담긴 책만 모아둔 책장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영남3현(권정생, 이오덕, 전우익)의 작품을 따로 수집한 책장도 있다. 작가들의 서명이 있는 책을 모아둔 책장에는 본교 교수들의 서명도 볼 수 있었다. 한 책장에는 법정 스님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책방을 오픈할 무렵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어요. 유언이 본인의 출판물을 모두 출간하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사람들이 스님의 책을 사기 위해서 혈안이 된 것이죠. 무소유란 책이 옥션에 80만 원으로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죠. 이건 스님의 의도와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책방에서 셰어링 개념으로 스님의 책을 빌려드리고 있어요”
장 씨에게 헌책방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인터넷 서점이 융성하면서 인터넷 서점들이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을 흡수하는 형태가 됐잖아요. 옛날에는 서점 매대에서 신간들을 접하게 되는데, 지금은 인터넷 서점 메인화면을 봐야 ‘요즘 이런 책이 나왔구나’라고 아는 것이죠. 그것도 출판사에서 돈을 지불해야 화면에 나올 수 있으니까 소자본의 작은 출판사 책들은 독자들을 만나기 힘들어요. 읽히지 않으니 빨리 절판 되는 것이죠. 그런 책들이 헌책방으로 모여요. 또한 헌책 수집가들은 저자들의 사인이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어요. 돌아가신 분들의 친필서명이 된 책이 흘러들어 와 헌책방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에요”
장 씨는 동네 책방이 유행이 되고 있다는 선뜻 체감하기 어려운 말을 꺼냈다. “최근 서울을 시작으로 색깔 있는 동네책방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어떤 서점은 인디출판물만 모아두기 하고, 어떤 서점은 사진첩만 모아두기도 하죠. 전 그걸 ‘취향의 공동체’라고 표현해요. 각자의 취향을 위한 공간들이 늘어나는 거예요. 일부러 멀리 올 필요 없이 자기 동네에서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책방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동네 동네마다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죠”
지금 생겨나고 있는 젊은 헌책방들은 책을 구매하는 곳임과 동시에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서 역할을 한다. 장 씨는 옛 헌책방과 현재의 헌책방에 대해 “무엇이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어요”라고 말했다. “비가 막 내리는데 우산을 편 것이에요. 대형 파라솔이 아니라 아주 작은 우산 속으로 ‘헌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여!’라고 말한 거죠. 사업이 성공하리라는 기대가 크게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제 방식을 찾은 것입니다”



문화산업으로 자리 잡은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


부산역에서 내려 네 정거장만 거치면 헌책방 골목이 나온다. 서울 청계천 헌책방 골목과 더불어 유일하게 남아 있는 헌책방 골목이 바로 이곳이다. 책방 골목의 시작점 앞에 ‘보수동 헌책방 골목’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으로 약 200m길이에 아동서적 전문, 고서적 전문 등의 다양한 종류의 책방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다. 각각의 책방 안의 책장으로는 모자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밖에까지 많은 책들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양 옆으로 책을 높다랗게 쌓아 둔 책방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길게 가로로 나 있는 통로를 지난다. 바닥의 보도블록에는 유명 작가의 이름과 작품 이름이 적혀 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의 역사는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6·25 전쟁 이후 헌책방이 생기기 시작했고 1960~1970년대에 70개의 점포가 들어서면서 헌책방 골목이 형성됐다. 현재는 50여개의 헌책방뿐만 아니라 카페, 공방 등이 들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 8층 건물의 보수동 책방 골목 문화관에서는 이 골목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부산 중구청 주최로 2004년부터 매년 진행되어 온 보수동 책방 골목 문화 행사는 이곳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장영희 수필을 좋아한다고 밝힌 서울에서 온 한 여대생은 “현재나 미래도 과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옛것을 잃지 말자는 정신에서 헌책방은 그 의미가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글: 김서현 기자/ksh15@knu.ac.kr
글,사진: 정수정 기자/jsj15@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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