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학생들이 기존에 알던 지식을 바탕으로 전공과목 혹은 기초 교양과목에서 다른 학생들을 제치고 쉽게 학점을 받는 속칭 ‘양민학살’로 불리는 현상이 매 학기 벌어진다. 예를 들어 전공과목을 이미 배운 사람이 재이수해 처음 듣는 사람을 쉽게 제치고 높은 학점을 받거나, 기초 외국어 혹은 기초 사회, 자연과학 수업을 해당 내용을 알고 있는 학생이 수강해 쉽게 점수를 따는 식이다. 이에 본지는 현 수강제도에 대한 당사자들의 찬반 의견을 보고 개선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전공 재이수

처음 듣는 학생들이 피해 받아 

vs 재도전 기회는 있어야

#1. 올해 인문계열에 입학한 새내기 수정이는 처음 듣는 전공 수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배들이 교수님의 질문에 척척 답하는 것을 보고 주눅이 들어 생각했다. ‘대학 물은 다르구나... 가만히 있어야겠다...’

교양과목을 재이수할 경우에는 <경북대학교 교육과정운영 및 이수에 관한 지침> 12조 2항에 따라 재이수 성적은 B+를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전공과목을 재이수할 경우에는 성적을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처음 이수하는 학생이 재이수 학생과 같은 기준으로 성적이 매겨지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김정준(IT대 전자공학 15) 씨는 “같은 수업을 재이수하는 학생에 비해 전공수업을 처음 수강하는 학생들이 불리하다”며 “처음 이수하는 학생과 재이수하는 학생의 성적을 따로 매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규정으로는 처음 수강하는 사람이 피해를 봐서 다시 수강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엽(자연대 수학 10) 씨는 “취업문제가 있어서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점 관리가 중요하다”며 “특히 기업에서 더 중시하는 전공 수업 학점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학점 규정을 두기보다는 재도전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주은 교수(사회대 사회)는 “학생들이 성적만을 위해 재이수를 한다면 성적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비싼 등록금으로 이미 아는 내용을 다시 수강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조 교수는 “이러한 상황은 재이수 학생뿐만 아니라 처음 수강하는 학생이나 교수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처음 배우는 학생은 자기가 다른 학생에 비해 잘 모른다고 생각해 수업에 흥미를 잃기 쉽고 교수는 어느 수준에 강의를 맞춰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사과 김선영 수업팀장은 “교양과목의 경우에는 무분별한 재이수를 방지하고 학점 인플레이션 문제 때문에 성적 제한규정이 있다”며 “전공과목도 성적 제한에 대해 검토했지만 개별 학과와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이 판단할 문제라고 보고 규정짓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외국어 경험자의 기초

외국어 수업 수강

#2. 수정이는 평소 어학에도 관심이 많아,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이번 학기에 기초 외국어 과목을 수강 신청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학생들의 발음이 예사롭지 않다. ‘분명히 강의계획서에는 처음 듣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라고 적혀있었는데...’ 

본교 교양 강좌 중 기초 외국어 강좌도 별도의 수강 제한 규정이 없다. 현 수강 제도가 처음 외국어를 배우는 학생과 기존에 배운 학생의 수준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논란이 있다. 기초 외국어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은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해당 언어를 배워서 알고 있다”며 “배우는 내용은 쉽지만 학점을 잘 받고 싶었고 기존에 아는 내용을 복습할 수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임은서(인문대 철학 15) 씨는 “기초적인 것을 처음부터 복습하고 싶은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걸 규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안운공(인문대 일어일문 08) 씨는 “이미 외국어를 배우고 온 학생들이 확실히 잘 성적을 잘 받는 것을 많이 봐왔다”며 “수업의 수준을 어느 학생의 수준에 맞춰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있기 때문에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어 수업을 담당하는 한 강사는 “따로 평가를 하지 않는 이상 해당 외국어를 배운 사람을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없어서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리 배우고 온 학생과 새로 배우는 학생 간에 격차를 수업으로 메워야 하는데, 시간 관계상 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초교육원 김대식 주무관은 “이미 외국어를 배운 학생과 배운 적이 없는 학생을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규정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주무관은 “외국어 수업은 본인 실력에 맞춰서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성적 문제로 제한을 만들면 강의가 만들어진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이과 간 자기계열

기초 교양과목 원정 수강

#3. 문과 계열의 지식에만 한계를 느꼈던 수정이는 기초 과학 과목을 듣기로 결심했다. 처음 듣는 용어들이 낯설었지만 나름대로 필기를 열심히 해가며 수업을 마쳤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고 몇몇 학생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꿀교양’인데 책은 왜 샀어? 다 아는 내용이잖아.” 그리고 깨달았다. ‘이번 학기 성적은 물 건너갔구나!’

2018학년도부터 고등학생들은 문·이과 통합 교육을 받지만 현재 본교 학생들은 문·이과 분리 교육을 받았다. 이에 따라 학생들 간에 기초 지식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기초 수리, 과학, 사회 과목에 대한 관련 수강 규정이 없다. 류슬기(공대 건축학과 10) 씨는 “아무래도 고등학교에서 배운 내용의 차이가 있어서 수강할 때 유불리가 있다”며 “일명 ‘꿀교양’이라고 부르면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타과 수업을 듣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봤다”고 말했다. 한 학생은 “솔직히 아는 내용이라 쉬워서 수강한다”며 “고등학교 때 공부하고 학과 전공에서 배운 내용으로 교양과목 학점을 쉽게 얻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반면 이문식(사범대 물리교육 15) 씨는 “기초 지식의 차이가 있더라도 시험은 수업시간에 배운 범위에서 출제된다”며 “수업시간에 좀 더 집중하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말했다. 

기초교육원 김대식 주무관은 “수강신청 공고를 할 때 학생들의 유불리가 있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일부 수강제한교과목을 둔다”고 말했지만 “교양과목이라는 것이 본교의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개 과목마다 수강 제한을 하는 것은 그 취지에도 맞지 않고, 교양과목의 편제 인원이 보통 70명인데 소수 인원 학과는 30명 정도니까 그 학과에서만 학생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주무관은 “규정보다는 수업을 담당하는 교수님과 학생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개개의 과목들에 좀 더 적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응사례

위에 제기된 수강에 대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경우는 없을까? 전공 재이수 문제와 관련하여 IT대학 전자공학부는 많은 교수가 연합하여 재이수 학생들을 처음 수강학생들과 따로 평가하고 있다. 이균경 교수(IT대 전자공학)는 “수년전에 3, 4학년이 졸업을 하지 않고 전공과목을 재이수해서 1, 2학년들이 성적을 손해보는 게 문제로 제기 됐다”며 “당시 학생회와 교수들이 회의를 해서 재이수하는 학생들을 따로 평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정확히 어떻게 할 것인가는 교수의 재량”이라며 “재이수생과 처음 수강하는 학생을 따로 구분해 평가하거나 재이수 학생에게 일정 수준의 점수 패널티를 주는 방법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과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문이과 계열 간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농생대에서 개설된 한 한국사 수업은 개설학과 개설학년은 개설과목 A학점 대상자 중 최소 40%를 보장하고 있고, 사회계열에서 개설된 한 수학 수업은 자연계열 학생의 수강을 불허하고 있다. 경제통상학부 학생의 경우에는 기초 경제과목인 경제의 이해를 수강할 수 없도록 하는 내부적인 규정이 있다. 

타 대학의 경우에는 전공, 교양에 상관없이 재이수를 신청할 수 있는 성적 자격을 정해놓거나 재이수를 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고 성적을 제한해놓은 곳이 있다. 부산대학교는 학점이 C+이하일 경우에만 재이수를 신청할 수 있고 최고 받을 수 있는 학점은 B+이며 서울대와 연세대도 마찬가지로 C+이하일 경우에 재이수를 신청할 수 있고 최고 받을 수 있는 학점은 A0이다. 부산대학교 학사과 김현주 주무관은 “학점 부풀리기가 국정 감사에서 자주 문제가 됐기 때문에 방지 차원에서 학점 제한 규정이 있는 것”이라며 “현재 학생들이 최고 학점 제한에 대해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에는 외국어 수업 수강 제한 규정의 사례가 있다. 서울대학교는 스페인어1, 일어1 등의 기초 외국어 수업에 외국어 고등학교 전공자, 수능에서 해당 외국어 시험을 친 학생을 배제하고 있으며, 외국어2 과목에서 외국어1 과목으로의 역수강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첫 수업 시간에 교수와 학생의 면담을 통해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한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의 한 관계자는 “쉽게 점수를 획득하려는 학생 때문에 피해를 보는 학생들을 위한 규정”이라며 “학생들의 실력 편차를 고려하여 수준별로 강의를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