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예쁜 사람이 많다. 똑똑한 사람도 많다. 예쁘고 똑똑한 사람도 많다. 심지어 예쁘고 똑똑하며 성품마저 어진 사람도 있다. 내가 이를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진학 후였다. 대학에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는 학교 선생님과 경비아저씨가 전부인 여자고등학교에 있었고, 그곳에서 미적인 요소는 나중의 일이었다. 주변에 나와 다른 성별을 가진 또래가 없다는 생물학적 지각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대학 가면 다 예뻐진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어물쩍 속아 넘어가줘야 만 했던 나 자신과 그런 나를 둘러싼 환경이 범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대학에게 나를 팔기 위해 미적 요소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성실함과 총명함을 대변해 줄 숫자들을 묵묵히 상대했다. 그 결과 나는 꽤 성공적으로 낙찰되었고 대학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많은 사람들을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그러한 상황 속에서 느꼈던 감정은 즐거움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 온갖 영역에서 다재다능함을 뽐내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벌거벗겨진 기분이었다. 새어나가지 않도록 꽁꽁 숨겨둔 부끄러움과 이상하리만큼 또렷한 열등감은 무력함과 패배감으로 바뀌어 나를 덮쳐왔다.그리고 스스로 돌파구를 찾고자 어색한 일들을 시작했다. 살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텔레비전 속 깡마른 연예인들을 보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예전처럼 나를 대변해줄 자격증과 종이들이 필요해 낯설기만 한 분야의 책을 펼쳤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좀 더 나은 자신으로 진화했다는 착각 속에 빠져있다가도 눈앞에 멋진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무기력해졌다. 과욕으로 인한 자존감의 하락은 좁은 우물에서 막 벗어난 나에게 너무나도 벅찬 일이었다.열심히 해도 타고난 사람은 못 따라잡는다는 찌질한 생각의 구렁텅이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내가 본 누구보다도 예쁘고 똑똑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부러워하던 사람들처럼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온갖 스펙들로 무장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수수한 편에 가까웠고 자기 일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의 대화를 계기로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생소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부드러운 말 속에 숨은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확고함은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자극하거나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막연한 부러움이 아닌 동경심과 존경이라는 감정으로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었다.그리고 나는 초점을 바꾸기로 했다. 반짝이고 허울 좋은 껍데기가 아닌, 깊이 있는 생각과 말로써 누군가에게 감명을 주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자 능력인 것이다. 획일화되고 공허한 요소들이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척도가 된 오늘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은 초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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