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삼시세끼’가 주는 귀농에 대한 동경과 바른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당장이라도 갑갑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충동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에 치여 귀농은 꿈조차 못 꾸고, 도시의 편리를 버리지 못하며, 다만 도시생활에 작은 위안을 바라는 사람들이 여전히 도시에 남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한 손에 호미를, 두 발 아래로 부드러운 흙을 밟고 선 ‘도시농부’들이 등장해 ‘도시농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과연 그들은 도시 정글을 헤쳐 나갈 신인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빌딩 숲 속 텃밭, 대구도시농업박람회

지난 9월,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제3회 대구도시농업박람회’가 열렸다. ‘행복한 도시, 우리는 도시농부’를 주제로 학교 곳곳에서 텃밭 가꾸기, 도시농부 교육, 시티파머스마켓 등의 행사들이 진행됐다.

학교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한쪽에서는  교실 반 만 한 크기의 텃밭에서 삽질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관람객에게 돈을 받고 모종이 담긴 봉지를 건네는 학생들이 보였다. 가랑비 속에서 우비를 뒤집어쓰고 삽질을 하던 학생들은 한 관람객이 작물을 가리키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고민한 끝에, 삽을 땅에 움푹 박아 그 작물의 모종을 캐냈다. 다른 학생이 일사불란하게 봉지를 들고 와 모종을 조심히 담고, 또 다른 학생은 관람객에게 돈을 받았다. 그 사이 나머지 학생들은 계산대를 지키거나 텃밭에 쭈그려 앉아 작물을 돌보기에 열중했다. 그들은 대구자연과학고 텃밭농사동아리 ‘교복입은 농부들’로, 그동안 학교생활을 하며 가꿔왔던 작물을 소개하고 판매하기 위해 박람회에 참가했다. 이 동아리 회장 3학년 김경진 씨는 “동아리 시간에 당번을 정해서 밭에 물을 주고, 주말에도 나와서 밭을 가꾼다”며 “학교 공부까지 병행하느라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 죽은 것을 살리는 일은 쉽게 해볼 수 없는데, 작물을 키우며 경험해본다. 여기서 활동하는 모든 것이 새롭다”고 말했다.

초보 도시농부 교육 프로그램도 여러 번 진행됐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시민은 “평소 집 베란다에 화초를 많이 키운다”며 “배추모종도 얻을 수 있고 무료로 도시농업 강의도 들을 수 있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학교 건물 옥상마다 놓인 텃밭상자에는 블루베리, 파프리카, 가지, 오크라 등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고 있었고, 학교 뒤편으로 시민참여텃밭이 넓게 조성돼 있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텃밭 사이를 걷던 조원명 씨(28)는 “아이에게 개구리랑 메뚜기 같이 도시에서 접하기 힘든 생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르쳐 줬다”며 “도심 한가운데 텃밭이 있어 방문하기도 좋고,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귀농을 준비 중인 손준몽 씨(50)는 “시골농사와 도시농사가 많이 다른 것 같긴 하다”며 그러나 “도시에서 키울 수 있는 작물들을 참고해서 농촌에도 접목해볼 만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도시농업이 뭐야? 

지난해 11월에 시행된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도시농업법) 제2조에서는 도시농업을 “도시지역에 있는 토지, 건축물 또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하여 농작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주택·공동주택에 위치한 텃밭, 주말농장텃밭, 고층건물에 있는 텃밭, 도시공원 텃밭, 학교 텃밭 등이 그 범위에 속한다. 즉, 도시 내에서 ‘텃밭’을 경작하는 일 대부분을 도시농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도시농업은 2004년 안산에서 시작되었다. 영국, 독일 등지에서는 18세기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으니 늦게 한 걸음 뗀 셈이다. 식생활교육대구네트워크 박선희 집행위원장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며 도시농업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와 2009년 배추 파동, 즉 먹거리가 겪은 위기는 국내에서 도시농업의 중요성이 인식된 계기였다. 이후로 2011년 국회에서 도시농업 육성 법률이 제정되면서 도시농업이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6월에 제1차 도시농업 육성 5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은 2017년까지 도시텃밭 면적 1,500ha와 도시농업 참여자 200만 명 달성을 목표로 한다. 또한 지자체의 ‘공영도시농업농장’ 설치에 대한 자금지원, 전문인력 지원, 도시농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지정·운영하고 이를 도시농업지원센터 및 현장과 연계하여 5년간 1,2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도시농업은 정부기관의 주도보다는 오히려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이하 녹소연)도 하나의 예시다. 대구녹소연 소속 도시농업전문가 현병두(본교 공대 공업화학 76) 강사는 “너무 급속히 도시농업이 보급돼서, 정부 정책이 아직까지도 근본적인 생태, 상부상조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가시적인 결과를 보이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농업 관련 일자리 창출과 전문인력 양성 문제에 대해 “대구에는 도시농업전문가 교육인증기관으로 돼 있는 곳이 없다”며 “앞으로 정부에서 인정한 공식교육기관에서 교육 받은 강사들이 배출되면, 이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입장으로서는 그들과 비교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현 강사는 “부산에 공인교육기관이 있으나 매일 대구와 부산을 오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시농업, 그 사소한 즐거움 

또한 도시농업이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환경문제를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와 동시에 도시농부가 농촌의 직업농부들과 경쟁구도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구도시농업박람회에서 ‘나도 도시농업 셰프’를 진행한 ㈜인비트로플랜트 김태현 이사는 “도시 텃밭은 농‘업’이 아니다. 도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아젠다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도시농업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농약이나 화학비료까지 주면서 농사를 짓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인비트로플랜트에서는 수원 일월공원 산책로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텃밭을 가꾸고 있다. 김 이사는 “평생을 공무원으로 일하고 퇴직한 여든 살의 한 부부가 자살충동이 들 만큼 우울해하셨다. 그런데 산책하다 우리 텃밭을 만나고 작은 공간을 얻었는데, 일 년 만에 너무 행복해하셨다”며 “의료보험이나 복지가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을 한 평의 텃밭이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녹소연 현 강사 또한 “직업농부들에게 타격을 입힐 것이란 걱정은 기우”라고 말했다. 현 강사는 “도시농업에 뛰어들면서 슈퍼에 가면 채소나 과일이 포장된 것을 관심을 가지고 본다. 나는 오이를 힘들여 길러서 겨우 2개를 수확하는데, 슈퍼에서는 3개에 900원밖에 하는 걸 보며 ‘정말 싸다’고 느꼈다”며 “도시농업을 해서 농부들이 식품을 얼마나 힘들게 기르는지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조금 비싸도 우리 농산물을 사먹지, 수입 농산물은 안 사먹는다”고 말했다.

정태열 교수(농생대 조경)는 “독일이 세계대전을 두 번 겪고, 피폐해진 정신의 안정을 목적으로 도시 텃밭을 많이 조성했다”며 “이처럼 도시농업이 도시에 인간다움을 되찾아주고 도시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도시형 텃밭은 매일 가서 이웃과 얘기하는 즐거움, 농사 짓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며 “영천 같은 지방 중소도시의 구도심은 거의 공동화 상태로, 노인들밖에 없는데, 빈집에 텃밭을 조성해서 사람들이 공동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본교 희망토 동아리 이장 김민주(농생대 농업경제 12) 씨는 “도시농업이 식량문제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도시농업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흙을 밟고 만지며 생활할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없다”며 “도시농업은 취업 준비나 자격증 공부 등으로 복잡한 머릿속을 호미질, 삽질 한 번을 통해 잠시 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서울 지역에서는 도시농업이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시농업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마포의 ‘상암두레텃밭’, ‘홍대텃밭다리’, 영등포의 ‘문래도시텃밭’ 등, 독특한 공동체 텃밭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청년텃밭 모임도 다양하다. 패스트푸드가 싫어서 모인 1인 가구 청년들의 모임, 도시농업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모임, 임대아파트의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힐링텃밭을 운영하는 모임 등이 해당된다. 혜화동에는 ‘마르쉐@’라는 도시농부장터가 운영되고 있다. 

남아있는 문제들

그러나 대구에는 아직 그러한 콘텐츠들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희망토 동아리 김민주 씨는 “2013년 영남대에서 도시농업을 시도했다가 무산되었다”며 “대구 대학생 도시농부들이 활동하는 곳은 경북대 희망토 마을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 내 텃밭 부지를 마련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본교 학생들로 이루어진 도시농업 관련 단체인 ‘신나는 농장’은 올해 초 부지 문제로 활동을 종료한 상황이다. 현 강사는 “도시의 땅값이 비싸니까 일반인들이 텃밭을 가꾸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도 있었다. 또한 본교 동아리 희망토의 1대 이장 서종효(자연대 생명공학 06) 씨가 설립한 농부학교 ㈜희망토의 공동 이장 강영수 씨는 “50, 60대 분들이 땅은 가지고 계시지만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구시 휴경지만 해도 3만 평이 넘는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도시 텃밭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이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문헌

도시농업의 현황과 새로운 시도 (안철환 외 8명)

▲제3회 대구도시농업박람회 텃밭 및 팜아트의 전경이다. 뒤로는 도심이 보인다.

▲ 베란다나 옥상에 둬 공간을 절약할 수 있는 텃밭 상자다. 

▲대구도시농업박람회 관람객들에게 화훼 모종을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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