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단풍나무들도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단풍을 물들이고 나뭇잎을 대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나무들의 겨울맞이이다. 우리가 쉽게 인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온도가 올라가면 물질의 부피는 팽창한다. 온도가 상승하면 열에너지도 커져 분자들의 운동이 활발해지는데, 분자들은 평형점을 기준으로 서로 가까워지는 방향보다 서로 멀어지는 방향으로 더 먼 거리까지 왕복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열팽창이 일어난다. 일상생활에서도 열팽창 현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반복적인 기온의 변화로 인한 크기 변화를 보정하기 위해 도시가스 배관을 ‘ㄷ’자 모양의 구부러진 형태로 설치하고, 철길과 다리와 같은 구조물에 열팽창 이음매를 추가한다.  대부분의 물질들처럼 물도 섭씨 4℃까지는 온도가 내려갈 때 부피가 줄어들지만 4℃ 아래에서는 부피가 다시 커지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얼음이 얼면 부피가 팽창하고 물병이 터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물의 예외적인 열팽창 특성은 생물 다양성의 보존에 기여한다. 겨울에 찬바람이 불면 호수 표면의 물도 차가워진다. 온도가 내려간 물의 부피는 점차 수축되고 밀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거워지면서 호수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기온이 더 내려가 섭씨 4℃ 이하가 되면 호수 표면의 물은 팽창하기 시작해 밀도가 낮아져 상대적으로 가벼워지기 때문에 표면으로 떠오르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 수면의 수온이 가장 낮아지고, 계속해서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 호수 표면에서 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만약 물이 다른 대부분의 물질들처럼 4℃ 이하에서도 계속 수축한다면, 호수는 바닥부터 얼기 시작해 마침내 호수전체가 꽁꽁 얼어붙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물고기와 수초들은 꼼짝없이 얼음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겨울 동안 모두 동사할 것이다. 또한 물은 상온에서 암모니아를 제외한 어떤 다른 액체들 보다 큰 열용량을 가지고 있어, 지구 생태계를 보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열용량’이란 열을 보관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를 하면 되는데, 열용량이 크면 같은 양의 열을 흡수해도 온도의 변화는 작다. 큰 용량의 물통에 물을 채워 넣으면 물의 높이가 크게 바뀌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지구에는 바다와 호수에 많은 양의 물이 존재한다. 여름 동안에는 물의 온도가 많이 상승하지 않고, 겨울에는 물이 저장하고 있던 열을 방출하여 지구의 온도가 극심하게 변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다른 행성에 비해 지구의 기온변화는 폭이 좁다. 물이 없다면 여름에는 폭염이, 그리고 겨울에는 혹한이 덮쳐 지구 환경은 고등 생명체가 살기에 매우 부적합해진다. 이처럼 물의 차별화된 특성이 즉 다름이 더해질 때 지구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푸른 행성으로 변한다.펭귄들은 남극의 칼바람을 버텨내기 위해 둥글게 무리를 형성한다. 펭귄들이 무리를 이루는 것은 표면적을 줄여 열손실을 최대화하려는 의도이다. 무리 가장자리에 있는 펭귄들은 어쩔 수 없이 찬바람에 노출되지만 그 덕분에 무리 가운데 있는 다른 펭귄들은 한결 수월하게 추위를 견뎌낼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가장자리에서 온 몸으로 칼바람을 막아내던 펭귄들과 무리 가운데서 체력을 비축한 펭귄들이 서로 자리를 바꾼다는 점이다. 만약 펭귄들이 이런 자리바꿈을 하지 않는다면 가장자리의 펭귄들은 오랜 추위를 견디지 못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결국 가장자리의 펭귄들이 희생되고 나면 다음 펭귄들이 또 가장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희생되고, 마침내 펭귄 무리 전체는 겨울을 버텨낼 수 없게 된다. 펭귄들은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추위에 내맡기지만 공동체 또한 추위를 막아낸 펭귄을 따뜻하게 보호하면서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는 지혜를 발휘한다. 우리사회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물의 예외적인 비열과 열팽창 특성이 지구 생태계 보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나와 다름을 포용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 잡혀야 우리 사회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비정규직이 우리 공동체의 가장자리에서 제일 먼저 삭풍에 스러지고 있다. 이제는 귀족노조 운운하면서 다음 차례인 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자리로 내몰려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무리 중앙에서 따뜻함을 즐기는 기득권은 “자리바꿈”이란 지혜를 애써 무시하고 찬바람에 노출되어 있는 이들의 고통을 도외시하고 있다. 이리되면 공동체는 무너진다. 청년실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년은 우리의 미래이다. 사회가 청년들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는 문제의 본질을 호도한다. 청년실업, 빈곤, 자살, 양극화, 인간성 실종 등 우리사회에 산적한 문제들은 자리바꿈을 제도화하여 해결할 수 있음을 겸허한 자세로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

이형철 교수 (자연대 물리)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