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게으른 성격 탓도 있지만, 어릴 적부터 오늘은 의미있는 하루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할 때마다 항상 TV 앞에서 무너지곤 했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밥을 먹으면서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TV 앞에 앉는 순간 하루는 사라지고 만다. TV 앞에서의 나는 그 속에 개입되지 않고 편안히 다른 사람들의 삶을 관조할 수 있어 마냥 달콤했다. 어떻게 보면 잠깐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보지만 그들은 나를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매일 영문독해에 수학풀이에 지쳐가는 나날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건 축복이었다. 그러나 한 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개인 의지의 차이일까? TV라는 미디어의 특성도 작용한다. 특히 TV는 타 미디어에 비해 수용자가 개입할 여지가 적은 핫미디어다. 글을 읽듯이 머릿속으로 글자를 인식하고 상상할 필요 없이 영상을 통해 상을 한 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미디어를 그 특성에 따라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나눠 설명한다. 뜨겁고 차가움은 절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 의미다. 사진과 만화를 예로 들면 사진은 더 촘촘하고 생동감 있게 상을 전달해 만화보다 핫하다. 만화는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실제 모습에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쿨한 미디어는 생략된 부분을 수용자가 받아들이면서 채워나가기 때문에 쉽게 지친다. 글로만 이뤄진 책을 읽는 것보다는 만화가, 그보다는 영상을 보는 것이 훨씬 편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디어의 특성보다는 대부분 미디어의 편안함, 편리성만 바라본다. 미디어 자체의 특성이 나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기숙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끊임없이 영상이 이어지는 TV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해서 영상물을 시청하는 컴퓨터를 애용하게 됐다. 남는 시간엔 책을 보기도 한다. 이제는 오히려 TV의 뜨거움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구경하고, 산책하고, 책을 읽으며 꿈꿀 시간을 투명인간처럼 보내기 싫어진 것이다. 물론 또 다른 방해꾼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녀석이 애인처럼 하루 종일 붙어 다닌다. 앞으로는 이 녀석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TV는 연을 끊는 것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스마트폰은 일상에서 길 찾기부터 음악듣기, 전화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녀석은 상대적으로 TV보다는 덜 뜨겁다. 영상, 글, 그림까지 뜨거움과 차가움이 혼재되어 선택 가능하다. 스마트폰도 이용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플까지 만들어졌다. 어떻게든 미디어를 잘 다뤄보려는 시도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에서 앞으로는 신체와 더 가까이 결합될 미디어들이 쇄도할 것이다. 그에 앞서 새로운 미디어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막연히 받아들이기엔 미디어의 영향은 무시무시하다. 당신은 미디어와 어떻게 밀당할 것인가? TV나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에 편향되어 살았다면 상대적으로 차가운 신문 한 부 매주 가까이 해보는 건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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