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어린 날은 내게 아름다운 시절로 기억된다. 이상화 시인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첫 구절에서 나는 그 옛 시골길을 떠올린다. ‘나는…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식민지 현실에서 쓰인 대표적인 저항시이면서 어찌 이리 아름다울까. 나는 시의 풍경을 묘사한 듯한 들안길 시화거리 이상화 벽화 앞에 섰다.  벽화에 그려진, 애수와 강인함이 느껴지는 이상화의 눈을 보면 아름다운 시가 그로부터 나온 것이 이해가 간다. 부드럽지만 굳게 다문 입은 그의 굴하지 않는 저항의식을 보여주는 듯하다. 벽화에는 이상화의 《비 갠 아침》이 적혀있다. 시 구절 ‘내야 세상이 너무도 밝고 깨끗해서…이 땅은 사랑 뭉텅이 같구나’에서 우리 땅에 대한 진한 애정이 드러난다. 하지만 뒤이어 나는 어두운 당시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구절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에서 시인의 슬픔이 느껴진다. 그는 이 땅을 사랑한 만큼 우리 민족 역시 사랑했을 것이다. 그래서 ‘들을 빼앗긴’ 슬픔을 누구보다 크게 느끼고,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빼앗긴 들을 되찾으려는 것은 가장 순수한 독립의지라고 생각한다.그의 자취를 쫓기에 벽화 하나는 무척 아쉽다. 벽화에서 눈을 떼고 중구 계산동의 이상화 시인 고택으로 갔다. 집은 의롭게 살다간 그의 생만큼 정갈하다. 후에 심어졌는지 모르나, 마당에는 감나무가 심겨 있으며 두 채의 작은 집이 서 있다. 여기서 그는 독서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으며 이 시기에 교남 학교에서 무보수로 영어와 작문을 지도했다. 그는 교남 학교 교가를 작사했는데, 강인한 의지가 담긴 그의 가사를 일제가 문제 삼아 가택수색을 하여 자신의 시 원고를 압수당했다. 교가를 통해 학생들이 저항의식을 새기기를 원한 것이다. 이전에도 독립 운동을 하며 일제에 의해 고문과 탄압을 받았다. 그런데도 뜻을 꺾지 않은 그의 마음은 시 《시인에게》의 ‘촛불로 날아들어 죽어도 아름다운 나비를 보아라’라는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신념은 아름답다.그는 1943년 세상을 떠났다. 광복 2년 전이다. 《역천(逆天)》의 구절이 생각난다. ‘걸림 없이 사는 듯하면서도 걸림뿐인 사람의 세상- 아름다운 때가 오면 아름다운 그때와 어울려 한 뭉텅이가 못 되어지는 이 살이-’사람과, 하늘과 하나 되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 하늘을 흘기니 울음이 터지’던 이상화 시인이 광복을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과연 들을 되찾았는지 의문이다. 들을 되찾았다고 믿지만, 현실은 ‘호미를 손에 쥘’ 기회조차 불평등하며 ‘좋은 땀’을 흘리는데에 대한 땀 역시 보상받지 못한다. 우리는 빼앗긴 들을 진정 되찾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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