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어디냐라고 물으면 대부분 동성로와 그 일대를 떠올릴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하루하루 변화하는 그곳의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는 그곳의 옛 모습을 생각하기 쉽지 않다. 이곳의 옛 모습을 보고 싶다면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을 펼쳐보면 된다. 소설은 작가의 어린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그것도 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의 1년 정도가 배경이다. 가족은 피난을 위해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왔고 주인공인 길남이가 30년 후 당시를 회상하는 식으로 내용이 구성된다. 뻔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20여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책의 마지막 장까지 긴장감을 갖게 한다.  소설은 대구를 배경으로 해 당시 대구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전쟁 후였지만 당시 대구는 육군본부와 군부대에 기댄 공장들이 있어 전쟁경기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약전골목은 당시에 ‘이름만 골목이지만 차가 다니는 훤한 길’로 ‘감초 따위를 작두로 잘게 써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약령시와 비슷한 이곳의 ‘땅이 우묵하게 꺼진 쉰 평 정도의 너른 안마당’이 있는 집이 길남이가 지내는 공간이다. 당시 대구의 경기가 좋았지만 길남이 가족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길남이의 어머니는 ‘어짜든동 애새끼 넷을 믹이고 공부시킬라고 뼈마디가 내려 앉도록’ 일을 했다.책을 다 읽고 ‘마당깊은 집’의 집터를 찾아갔다. 의외로 학교 가까이 있는 곳이었다. 또한 이전에 몇 번 지나갔던 길이었다. 학교에서 잠시 버스를 타고 약령시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마당깊은 집’의 실제 집터를 볼 수 있다. 현재 그 터는 음식점이 되어 있다. 집터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길남이가 신문을 들고 서 있는 석상이 보인다. 이전에는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입구의 동상도 봤었지만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신문을 든 소년의 동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길남이 뒤쪽 길 울타리에는 같은 처지의 피난민들이었던 김천댁, 평양댁, 경기댁, 상이군인 가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주변이 다 길남이가 뛰어다니던 공간이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거리였지만 그곳이 길남이의 어머니가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삯바늘질을 했던 곳이라니 다르게 느껴졌다. 장마철이 되면 물난리 때문에 온 집안 사람들이 물을 퍼내야 했던 집도 길남이가 ‘대구신문’을 들고 확장을 하러다니던 거리도 이산가족 찾기의 장이 됐던 방천도 다 이제 사라졌다. 어머니가 미워 집을 나갔던 길남이가 잠을 잤던 대구역도 깔끔하게 바뀌었다. 60년 전의 거리는 이제 깔끔하게 정리됐고 남아있는 흔적들은 관광 상품이 됐다.동성로에 들렀을 때 대구신문을 들고 동네를 뛰어다니던 길남이가 있던 그곳이라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한다. 매일 보던 공간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슬기 기자/lsg14@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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