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분류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말라리아 매개 모기 연구다. 1999년경 38선 철책에서 보초를 서는 국군 장병들이 말라리아에 걸리는 일이 잦아지자 보건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말라리아 연구의 필요성이 절실하던 때고, 필자도 이 분위기에 편승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 연구를 시작했다. 모기 채집을 위해 38선 인근 민간인통제구역에 자리한 숲 속에 들어가 팬티만 입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모기들에게 내 피를 한 끼 식사로 선물(?)하며, 인체를 공격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습성을 연구했다. 3년 동안 여름마다 이 짓을 했으니, 여름철마다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숲 속에서 인체를 공격하는 모기들을 시간 대 별로 구분하여 채집해서 실험실로 돌아오면, 이제 이 모기들이 알을 낳아 다음 자손을 번식하도록 추가적인 피를 제공해야만 한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기호가 독특하다. 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의 피는 즐겨 먹지 않고, 소나 사람쯤 되는 대형 동물의 피를 무척 좋아한다. 모기에게 밥줄 요량으로 시내 한 복판에 소를 끌고 오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사람의 피가 돈도 안 들고 얻기 간편하다. 그게 내 피여야만 해서 문제지만... 이 놈의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성질도 무척 예민하다. 너무 건조하거나, 너무 밝거나, 소음이 심하거나 하면 먹지 않고 죽어버린다. 그럼 나는 모기 채집을 위해 팬티만 걸친 채 다시 산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어떻게든 잡아온 모기를 잘 살리는 일이 나에겐 중요했다. 팔을 채집한 모기를 모아놓은 케이지에 집어넣고, 모기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젖은 수건을 여러 장 케이지에 올려 암실 환경을 갖추어 주고 습도를 맞추어 주면 모기는 내 팔에서 피를 빨아 먹는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모기의 배...모기가 흡혈하고 나면 소화하는 데 3일여가 걸린다. 피가 소화되어 단백질로 모기 체내에 흡수되고 나면, 모기의 암컷은 이제 알 낳을 준비가 된 것이다. 케이지 안에 물 담긴 접시 하나를 놓아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위에 모기 한 마리당 약 200~250개의 알을 낳아 접시물 위가 알로 수북해진다. 알들이 부화하고, 유충 단계와 번데기 단계를 거치고 나면, 새로운 모기들이 탄생하게 된다. 독자 중에 막 태어난 모기를 현미경에서 관찰해 본 적이 있는 분이 있을 리 만무하겠지만, 모기의 날개는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투명하고 하늘하늘한 날개 위에 화룡점정으로 찍어놓은 까만색 점들과 시맥들, 날개의 둘레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레이스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로 손색이 없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살아계셨다면 한번 꼭 보여 드리고 싶을 만큼 아름답다. 혐오스러운 해충으로 한낱 미물(?)인 모기에게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던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 작고 보잘 것 없다 여기며 문득 스쳐 보내는 소소한 많은 것들 속에,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소중한 아름다움이 종합선물 세트로 한 가득 들어 있음을 알게 된 날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쉽고도 명쾌하게 행복에 대한 정의를 내린 이가 있었다. 우리가 늘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스쳐지나가는 소소함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말일 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어 단어가 어머니(Mother)라는 사실을 얼마 전 인터넷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아가페 사랑을 전 세계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가 보다 싶어 가슴이 뭉클하고, 새삼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온 가족이 함께 하는 추석 명절이 코앞이다. 우리 주변의 일상 속에서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평소에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이 느꼈던 그 속에 우리가 미처 깨달아 알지 못했던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있음을 곱씹어보는 한가위가 되면 좋겠다.

황의욱 교수 (사범대 생물교육)



저작권자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