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학자들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종들을 박테리아를 포함하는 원핵생물역과 진핵생물역으로 크게 나눈다. 진핵생물을 다시 원생생물류, 동물류, 식물류 등으로 나누어 기록으로 남겼다. 이렇게 하여 지구상의 생물은 약 150만여 종으로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박테리아, 원생생물, 진균류 등까지 감안하면 1억종까지 도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생물은 처음에는 하나의 원시적인 세포에서 시작하여 35-40억년의 시간 축으로 대폭발과 대멸종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증거로 Hox 유전자는 모든 동물에서 발견된다. 가장 단순한 동물인 해면은 하나 이상의 Hox 유전자를 가지며, 곤충은 9개 이상의 Hox 유전자를 복사하여 가진다. 가장 고등한 포유류의 Hox 유전자는 두 번 복사되어 4개의 군으로 되었는데 총 38개의 유전자가 있다. 해면의 몸은 구멍이 나 있는 꽃병처럼 생겼다. 해면은 진정한 조직이 없고 유사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는 세포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는 생물이다. 해면, 선충, 초파리, 생쥐와 같은 동물이 배아발생에 반드시 거치는 패턴행성과 형태형성 과정에는 기본적인 유사성이 관찰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동물은 보편적인 신체체제(Universal body plan)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Hox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매우 유사하다. 6억년 전에 만들어진 이 유전자의 수적증가가 생쥐와 같은 몸 구조가 복잡한 동물로 진화하는 수단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생물계에는 완벽하게 새롭게 창조하여 사용하는 것보다 기존에 존재했던 유전자를 정확히 복사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시험지를 복사하는 도중에 처음 한두 장은 복사가 잘 되지만, 복사기가 오래되어 낡으면 먼지 혹은 얼룩 등의 인위적인 요소에 의하여 원본처럼 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생물계에서도 처음에는 유전자 DNA 복사를 정확하게 하지만, 가끔은 실수로 염기서열이 잘못되기도 한다. 잘못된 염기서열은 재빨리 파악하여 수정 보완을 한다. 또한 심각한 염기서열의 변이를 일으키면 생물체는 대부분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지만 자연계에서는 백만 개의 유전자당 한 개 정도로 일어나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독립적으로 축적되기도 한다. 즉, 복사, 돌연변이, 적응, 지질학적인 시간(수억년 단위)이 관여하여 종분화가 일어나 현재의 생물다양성이 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몸은 몇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가? 약 7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1개의 수정란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하루에 수백억개의 세포가 죽고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진다. 생채기가 생긴 조직과 기관은 정확하게 새로운 세포로 상처가 회복되어야 그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DNA도 마찬가지로 복사할 때는 정말 정확하게 복사되어야만 한다. 가끔 생길 수 있는 염기서열 복제의 실수는 재빨리 수선되어 복구될 수 있다. 그렇지만 실수로 세포분열이 조절되지 않으며 죽지 않는 세포가 생기는데 이를 암이라 부른다. 진화적 개체 세포의 복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생물은 DNA 염기서열 복사의 귀재이다. 복사를 잘못하면 생을 마감하거나 멸종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복사도 생물의 원초적 본능에 해당하지 않을까? 새학기가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리포트가 많아진다. 본능에 충실하게 산다면 DNA에 새겨진 대로 베끼기를 하려고 할 것이다. 논문 표절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진화상 이성이 발달되었고, 교육을 받음으로써 본능을 극복하고, 인간다움이 오늘날의 문화를 번창하게 하였다. DNA에 새겨진 복사 본능은 정확하게 복제하여야 멸종과 사멸을 피할 수 있지만, 논문 표절, 리포트 베끼기는 윤리적 문화적으로 강력하게 금지되어 있다. 12년 이상의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이여! 다른 사람의 창의적 아이디어 혹은 리포트를 베끼고 싶은 본능에 아직도 지고 있는가? 우리는 복사가 아니라 창조 문화의 아이디어 뱅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신학기가 되면 교수님들은 어떻게 하면 리포트의 원본과 복사본을 가려낼 수 있을까? 컴퓨터상에서 컨트롤 C와 컨트롤 V로 복사되는 것을 못하게 할까? 자필로 리포트를 제출하세요(?) 등 쓸데없는 일로 머리를 짠다. 대학생이면 문화인으로서 자발적으로 남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존종해 주는 윤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건전하고 문화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재홍 교수(자연대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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