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인터넷 기사 하나를 봤다.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주의보’ 이 증후군은 우울한 기분이 들어도 웃음을 잃어선 안 되는 현대인이 가진 대표적 증상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서핑을 하다 본 기사라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넘어갔지만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건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내 생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각종 언론매체들에서는 정말 다양한 증후군들을 보도하고, 그것을 읽는 우리들은 ‘내가 이런 증후군은 아닐까?’하고 새롭게 생긴 증후군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거기에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려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감정노동을 하며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을 가진 현대인들이 여러 증후군들의 표적이 되는, 흥미로운 내용인 척 다가오지만 결국은 자신을 병자로 만드는 상황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스마일 마스크 증후군도 평소에 가식이라 부르는 단순했던 두 글자가 증후군으로 변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항상 웃어야 하고, 싫어하는 내색을 하면 안 되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가식’이라는 단어. 이것이 어떤 공통성이 있는 일련의 병적 징후라 불리는 증후군으로 돌아왔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모든 것이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타인에 의해 정해지는 삶을 산다고들 하는 현대사회. 내 눈에 지금 사회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느껴졌다. 침대보다 키가 크면 발을 자르고 키가 작으면 늘여서 죽이는 침대. 침대가 현대사회, 그 위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현대인인 것이다.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명목 하에 각종 증후군들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한다.여러 신종증후군은 넘쳐나지만 정말 병이라 생각되는 증후군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신종증후군은 무서운 것이라고 계속 보도되고 화제가 되는 이유는 이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때에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에 문제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올챙이 때는 개구리가 될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하지만 결국 그렇게 자라는 것처럼 신종증후군이라는 귀여운 올챙이가 우울증이라는 개구리로 자란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막상 치료법을 검색해보면 “정신과 진료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의지가 필요합니다”라는 말들밖에 적혀있지 않다. 이런 말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타인에 의해 많은 것들이 바뀌는 자신들의 삶이지만 정확한 자신만의 소신을 가지고, 타인이 건들 수 없는 나만의 내면속의 영역을 만들면 이런 증후군들이 병으로 다가오는 일은 없지 않을까?

송호영(자연대 생명과학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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