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종류를 이야기할 때 시베리아 호랑이와 벵갈 호랑이는 엄연히 구별된다. 인도 코끼리와 아프리카 코끼리가 구별되듯이, 이들도 아종으로 구분되는데 이들을 다르게 만든 것은 자연 환경이다. 서식 지역이 사막이나 산맥으로 가로막혀 오랜 세월 떨어져 살다보니 크기나 성품, 살아가는 방식 등이 달라지며 여기서 아종의 구분이 발생한다. 그러나 야생동물과는 달리 개의 경우는 아종이란 말 대신 품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여기선 자연이 개입하여 다양한 품종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인간의 노력에 의해, 즉 육종이란 과정을 통해 독특한 모양과 성품을 갖춘 순수혈통의 개가 만들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애견문화의 중심에는 애견 전람회와 다양한 개의 품종을 보증하는 혈통서를 발행하는 여러 애견 단체들이 있다. 개를 품종에 따라 구분하고 ‘이 개는 순혈견이다’, ‘이 개는 우수한 혈통의 개다’라고 하는 생각 자체는 근대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도그 쇼’를 통해 만들어진 서양 애견문화의 산물이다. 백년전 우리 선조들의 의식 세계에는 개를 품종으로 구분한다든지 순종을 보증하는 개 족보가 있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독일의 족보 개 쉐파드는 사실 150여 년 전 독일의 시골 지역인 칼스 루에 마을의 양치기 토종개였다. 그 토종개가 쉐파드가 되는 데는 기병장교였던 스테파니쯔라는 애견가의 남다른 노력 덕분이었다. 스테파니쯔는 당시 군마를 평가하고 육종하는 지식에 정통한 사람이었는데 말에서 얻은 경험을 그대로 개에 적용하여 성공적으로 쉐파드를 만들어 내었다. 개가 달릴 때 네 발 중 오직 한발만 땅에 접하고 있는 상태에서 견갑골의 각도가 가지는 효율성 그리고 쉽게 피로하지 않는 골격 조건이 무엇인지 등에 근거한 스테파니쯔 이론의 핵심들은 거의 다 말 심사에서 차용한 것이다.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리노이스란 개 역시 100 여년전 벨기에 시골의 이름 없는 잡종 양치기 개였다. 벨기에의 수의학 교수였던 라울에 의해 벨기언 쉐파드 도그의 네 가지 변종이 혈통적으로 고정되었다. 지금도 벨기엔 쉐파드는 1품종 4변종(one breed, four varieties)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세 종류가 장모종이며 마리노이스 한 종류만 단모인데 국제적으로 4변종 모두 단일 종으로 공인되고 있다. 이처럼 지역의 잡종 토종개가 품종으로 바로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원광석이 강철이든 연철이든 쇠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제련소의 용광로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거의 모든 토종 잡견들이 혈통적으로 고정된 하나의 품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견종 표준을 정하고 유전자 세탁 과정을 거쳐 원종 집단속에 섞여있는 불순물들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래야 후대 자손들의 모습과 색깔이 견종 표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순종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 토종개에서 품종 이름을 갖춘 순혈 품종견이 되기 위해서는, 즉 혈통고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와 과정들이 있다. 첫째로, 우수한 토종개 원종 집단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단체든 개인이든 모종의 육종 주체가 견종명과 견종 표준을 만들어야 하고, 셋째로, 혈통고정을 추진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우리 진돗개의 경우는 조선 총독부가 개입하기 전에는 이름도 없던 진도섬의 일반 토종개였다. 총독부에서 먼저 진돗개라는 이름을 정하고 견종 표준을 일본 기주견의 것을 가져와 진돗개 표준으로 삼았다. 원종 집단은 진도섬에 격리된 채 살아온 전체 개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며 혈통고정을 위한 시스템은 총독부의 행정력과 이후에 우리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진돗개 보호 육성법이다. 진돗개 시험 사업소와 매년 개최되는 진돗개 품평회 역시 시스템의 일부이다. 7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수한 자질을 가진 진돗개의 숫자가 많아지고 이제는 세계 명견들과 겨루어 볼만한 뛰어난 개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조선시대 오백년을 통해 개에게도 족보가 있어야 한다든지 어떻게 생긴 개가 삽살개 순종인지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동물 실학자는 없었다. 막연히 털긴 동네 개를 보고 어떤 사람들은 삽살개라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발발이라 하여도 누구하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덩치 큰 장모 견들은 삽살개로, 작은 소형 견은 발발이로 명명되었다. 250년 전 물건의 이름을 정리한 ‘물명고’라는 책이 있는데 당시 개 이름을 삽살개, 바둑개, 사자개, 발발이로 구분해 놓고 있다. 바둑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개들의 이름이 모두 장모 견들을 지칭하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단모 중형 개들은 특별한 이름 없이 소위 ‘똥개’로 취급되었다.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우리의 애견문화사에 있어서 삽살개 복원 작업만은 행운이 따랐다. 1960년대 말에 추진된 삽살개 탐색 작업의 주역은 경북대 수의대의 탁연빈 교수이다. 탁교수의 개에 대한 안목이 최고 수준이었던 것은 그가 당시 국내 유일한 한국축견협회를 전창수씨와 함께 설립하여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북경대학 축목학과를 졸업하여 선진 동물 육종학을 깊히 이해하고 있었던 하성진교수가 탁교수의 지도교수로서 곁에 있었다는 것 또한 두 번째 행운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토종개들을 널리 관찰하여 진정한 우리 개들의 모습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던 하교수의 안목은 삽살개 육종에 크나큰 버팀목으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학생이었을 때부터 한집에 살던 탁교수를 통해 삽살개와 독일 쉐파드에 대한 안목을 전수 받으며, 축견협회의 전람회 같은 데를 따라다녔다. 이처럼 삽살개의 복원과 육종은 삼대에 걸친 세 사람 경북대학교 교수들의 50년 노력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일이다. 주로 경상북도 오지인 산간벽지에서 어렵게 찾은 30마리 원종집단으로부터 시작된 삽살개 육종과정은 고도의 전문성과 학문적 노력이 쌓임으로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우리 애견계도 세계적 수준의 토종개 여러 품종을 육종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최근에는 삽살개와 함께 ‘동경이’와 ‘제주개’도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우리 토종개들을 통해 우리도 애견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홍 교수(자연대 생명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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